지혜열(知恵熱)ー와세다대학교 대학원 현대문예코스 졸업문집 기고
왜 남기려 하는 걸까. 이 질문으로 부터 사진을 찍고, 사진 이론을 연구하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줄곧 아주 좁은 영역을 연구하고 있다. 시각예술이라는 큰 틀 속에서 사진을 다루는 것일까, 아니면 회화와 나란히 선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 사진을 깊게 파고드는 것일까. 사진은 어떤 숭고로 승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말하기 어려움, 다루기 난감한 면을 가진다. 창문을 하나 사이에 두고 세계와 접속하는 듯한, 묘한 거리감을 지닌 매체다. 창은 바깥 풍경을 비추지만 동시에 거울처럼 나 자신의 모습도 반사한다. 사진은 어디에 있는가. 창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순간인가, 창 너머 움직이는 풍경을 고정시킨 정지화상인가, 아니면 바깥 풍경과 반사된 내 모습이 겹쳐지는 유리판 위의 그 어딘가인가. 주관도, 객관도 아닌 그 사이. 그래서일까, 사진은 종종 어중간하고 애매한 인상을 준다.
나는 그런 사소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생각들을 계속 굴린다. 사물은 사라져간다. “무언가를 보고 싶다면 서둘러야 한다.” ― 세잔이 남긴 말이다. 붙잡고 싶다고 해도, 사라지는 찰나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덧없다고 말하지만,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 끝의 낙엽을 보며 정말 덧없다고 느낄까. 아니다. 낙엽은 아직 거기 있다. 덧없음은 환영이다. 낙엽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저 변화의 예고일 뿐이다. 그것이 우리 마음을 흔들고, 붙잡아 괴롭히며, 때로는 허무주의로 이끄는 마법처럼 작용한다.
아마도 그 예고, 그 징후가 이미지로 나타날 때 우리는 “뭔가 남겨야 한다”는 충동에 사로잡히는 게 아닐까. 바람에 흔들리며 금방이라도 날아가 버릴 듯한 낙엽을 보며 서둘러 셔터를 누른다. 낙엽의 모습은 창을 통과해, 유리에 반사된 내 모습과 겹친다. 그 순간 우리는 “남겼다”는 안도감을 얻는다. 하지만 그것이 JPEG인지 네거티브 필름인지, 어떻게 저장되고 남게 될지는 또 다른 문제다. 결국 남기려 하지만, 대부분의 이미지는 남지 않는다. 역사가 선택하는 이미지는 사회적 맥락을 띠는 보도사진처럼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쪽이다. 무의식적인 스냅이든, 미술작품으로서의 사진이든 역사 속에 남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왜 사진인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그것은 ‘사진’이라는 단어의 내구성에 관한 물음이다. AI가 등장했다. 실체 없는 이미지를 무한히 학습하고 생성하는 시대다. 이미지, 그림, 비주얼 같은 대체어가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사진’이라 부른다. 이유가 명문화되지 않으면, 언어는 금세 사라진다. 100년 뒤에도 ‘사진’이라는 단어가 남을 수 있을까. 그건 지금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사진을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진에 대한 끊임없는 담론이야말로 그 단어의 내구성을 높인다.
‘사진’의 기원을 더듬으면, 처음부터 카메라라는 도구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 ― 태양광으로 금속판에 상을 고정하는 방식 ― 에서 비롯되었고, 이후 다게레오타입이 나타났다. 이들은 지금의 카메라의 원형 같지만, 순간 포착이 아니라 빛을 받아들이는 장치였다. 벤야민은 초기 사진에 깃든 의례성, 아우라를 말하며 사진행위 그 자체가 특별한 시간의식이었음을 기록했다. 포토그램이나 사이아노타입 같은 인화법들은 아예 렌즈 없이, 빛과 그림자의 흔적을 남기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나는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린다. 새 집으로 이사 왔을 때, 한동안 커튼이 없어 남향 창으로 강한 빛이 들어왔다. 옷이 한쪽만 변색된 적이 있었다. 태양광의 힘을 그때 배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장시간 노출에 의한 ‘사진적 현상’이었다. 빛과 그림자가 오래 머무르면 자국을 남긴다.
심지어 어떤 연구자는 동굴벽화가 카메라 오브스쿠라에서 비롯되었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작은 구멍으로 들어온 빛이 동굴 벽에 동물의 상을 투사했고, 원시인은 그것을 베껴 그렸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일식 때 나뭇잎 사이 작은 구멍을 통해 투사되는 초승달 모양의 그림자를 기록한 것도, 같은 원리의 증거로 읽힌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도, 실제와 그림자의 관계를 묻는다는 점에서 ‘자연의 카메라 오브스쿠라’적이지 않은가.
결국 인간은 늘 어두운 방 속에서 빛과 그림자를 바라봐 왔다. 동굴에서, 혹은 콘크리트 방에서. 오늘날 창을 통해 바깥을 보는 것은, 어쩌면 카메라 오브스쿠라 속에서 외부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과 같다. 그리고 그 감광판은 우리 자신이다. 사진을 찍느냐 찍지 않느냐 이전에, 사물과 현상에 어떻게 응시하는지가 이미 ‘사진적 감각’이다. 어쩌면 셔터를 누르지 않아도 사진적인 태도는 가능하다.
사진은 찍는 일보다, 보는 일이 더 어려운지도 모른다. ‘바라본다’는 것은 순간의 시선이 아니라, 오래 응시하는 태도다. 그렇게 할 때, 사진은 이미지나 그림과 구분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사진으로 남는다. 끝없이 광고 이미지가 생성되는 시대에조차, 아무도 그것을 ‘생성사진’이라 부르지 않는다. 아직 ‘사진’이라는 말은 살아 있다. 그렇기에 나는 사진 담론을 계속 이어가며 그 내구성을 높이고 싶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왜 남기려 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대상의 기록을 넘어, 사진가로서의 의지를 확인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정말로 ‘덧없음’을 남기고 싶은 걸까. 아니면 덧없음의 환영이 주는 감정에 끌리는 걸까. 사물은 사라지지만, 나는 ‘남아 있는 것들’을 안다. 동굴 벽화처럼 보이는 흔적,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기운으로 남는 자취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진가는 찍는 자가 아니라, 바라보는 자다.
Ἥλιος
기원전 2세기, 비잔티움의 필론은 『세계 7대 불가사의』에서 로도스 섬의 거상을 태양신 헬리오스를 형상화한 조각으로 기록했다. 5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진으로 무너져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언젠가 나는 그곳에 가서, 햇빛이 비출 때 카메라 오브스쿠라를 통해 헬리오스의 흔적을 더듬는 꿈을 꾼다. 사라져버린 조각상은 사진에 담기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한때 그곳에 태양신의 동상이 있었다는 사실을 믿으며 바다를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