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이빨-리야드, 유라시아의 심장을 물다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 새로운 전략확장 나서

by Hoon

사막의 바람이 새로운 야망의 냄새를 실어 리야드를 스쳤다.
킹 압둘라 금융지구의 대리석 기둥 아래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중앙아시아 각국의 장관들이 손을 맞잡았다. 그 장면은 당국자들이 ‘신(新) 중동–중앙아시아 정책(New Middle East–Central Asia Policy)’이라 부르는 새로운 외교 비전을 상징했다.


‘비전 2030’이 발표된 지 10년, 사우디아라비아는 더 이상 단순한 산유국이 아니다. 이제는 페르시아만, 중앙아시아, 유럽을 잇는 지정학적 중개자(geoeconomic broker)로 자신을 새롭게 규정하고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정상 간의 최근 회담은 그 전환점을 알렸다.
회담의 결과로 재생에너지, 물류, 디지털 인프라 등 수십억 달러 규모의 협약이 체결되며, 리야드는 유라시아의 경제지도를 새롭게 그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수십 년간 사우디의 영향력은 원유와 성지순례를 통해 확산돼 왔다. 이제 그 영향력은 태양광 발전망, 수소 운송 회랑, 그리고 광케이블의 길이로 측정된다. 또한 사우디 국부펀드는 조용히 중앙아시아의 주요 신흥 투자자로 부상해, 카자흐스탄 초원에 풍력단지를 세우고 우즈베키스탄 시르다리야 강변에 녹색 수소 플랜트를 건설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이를 ‘에너지 전환 외교(energy transition diplomacy)’라고 부른다. 이제 사우디는 석유가 아닌 자본을 수출하는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그러나 악수의 이면에는 냉정한 계산이 숨어 있다.
미·중 경쟁이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는 가운데, 걸프국가들은 어느 한 축에 종속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그렇기에 중앙아시아는 사우디에 ‘전략적 숨통’을 제공한다.
희토류와 농지,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과 수에즈 운하를 우회할 수 있는 새로운 통로들 때문이다. 리야드는 지금 자신만의 ‘실크로드’를 구축하고 있다. 한 줄의 파이프라인과 한 가닥의 데이터 케이블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하지만 권력 이동은 결코 순탄치 않다.
이란과 터키는 사우디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자신들의 전통적 영향권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있고, 러시아는 여전히 유라시아경제연합을 통해 경제적 지배력을 유지하려 한다.
중앙아시아 내부에서도 중국의 일대일로 자금과 사우디 자본 사이의 균형은 미묘하다. 알마티의 한 카자흐 외교관은 “이 자금 유입은 환영하지만 신중히 지켜보고 있다. 모든 달러에는 국기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국내적으로 이 정책은 왕세자가 내세우는 ‘국가 재탄생 서사’와 맞닿아 있다. 사회 개방과 탈석유 다각화 속에서, 먼 이국 초원에서 벌어지는 대형 투자 프로젝트는 자신감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근대화를 수출하는 왕국’이라는 이미지다.
하지만 비판자들은 이러한 대외적 행보가 청년 실업률 20%를 웃도는 현실과 권력 집중에 대한 불만 등 내부 불균형을 가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행보는 멈추지 않는다.
리야드는 확대된 브릭스(BRICS)에 가입했고, 비(非) 달러 통화로의 교역 결제를 늘리고 있다. 또한 바쿠와 타슈켄트에서 공동 투자 포럼을 개최하며, 1970년대 석유 외교의 야망을 ‘녹색 에너지’와 ‘디지털 무역’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재해석하고 있다.


결국 드러나는 것은 이 시대의 익숙한 역설이다. 한때 석유로 정의되던 국가가 이제는 지리와 알고리즘에 미래를 걸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우디가 이 전략에 성공한다면, 사우디는 중동의 패권국에서 유라시아의 연결자로 거듭날 것이다.
그때는 파이프라인과 데이터라인이 나란히 작동하는 새로운 다극 질서가 형성될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지만, 사막과 초원 위에는 늘 리듬이 남는다. 리야드에서 타슈켄트로 번져가는 지금의 소리는 엔진의 굉음이 아니라 재창조의 진동이다. 물질의 시대를 지배하던 권력은 이제 데이터와 방향성의 시대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