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받은 상처는 인생을 쉽게 뒤틀어 놓는다.
그땐 나도 어렸다.
나는 왜 그 어린 나이에 그런 일을 겪어야 했을까?
어리다고 모두가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
너는 그냥 못되고 나쁜 거였다.
어렸다는 말로 그 모든 악행들을 포장하는 것이 정말 싫다.
"우리 다 어리고 미성숙한 10대였는데
왜 성인이 된 지금의 잣대로 그때의 행동을 판단하려고 해?"
힘들고 힘겨웠던 내 고등학교 시기를 다 봐온 어떤 이가 이런 말을 했다.
대학에 들어간 직후에도 교복 입은 아이들만 지나가면
나를 비웃으며 수군거릴 것만 같은 불안감에 시달렸던 내게
쉽게 이런 얘기를 던진다.
트라우마였다.
사람들이 무서워 대학 OT도 참여하지 못했다.
누군가 나와 친해지려 다가오는 것조차 회피했다.
고등학생 때 나를 괴롭게 했던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모습이 보이면 불안해졌다.
누군가 나의 고등학교 동창을 안다고 하면
겁부터 났다.
그 어렸던 내가 눈물로 밤을 지새운 수많은 날들,
여린 감성에 금이 가고 위축되던 감정들,
공부도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은 채 꾹 눌렀던 억울함과 서러움은
인생을 쉽게 뒤흔든다.
나도 언제나 밝고 건강한 사람이고 싶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보아도
어딘가 불안정한 모습은 숨겨지지도 않은 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동안
그들은 천진난만하게 누군가의 앞길을 가로막으며
보통의 성인이 된다.
노력을 안 해본 것이 아니다.
더 이상 그 시절에 머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20살이 되고 대학을 가며
나는 이제 다른 내가 될 거고 다른 삶을 살 거라고
더 이상 그들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도록
나는 더 단단한 사람이 될 거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들과의 이러한 관계는 20대가 넘어서까지 지속됐다.
나에 대한 소문은 대학까지 나를 따라왔다.
앓고 앓아 더 이상 추락할 곳도 없어진 지금에 와서
미안하다기보다는 없던 일로 하고 싶을 뿐이다.
그들의 잘못을 다른 누군가가 아는 게 창피할 뿐이다.
그때는 어려서 그런 거고
지금은 그때는 어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면,
그렇다면 그들의 잘못은 언제 잘못이 되는 걸까?
나도 안다.
상처를 받았던 나는 어렸고
나는 이제 그들을 판단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나는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건 그들이 아닌 내가 해야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