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의 정당화 & 왕따의 이유
너 원래 왕따였잖아.
"나는 쟤한테만 그래."
"쟤한테 그러는 건데 뭐."
"나 너네한텐 절대 안 그래. 다른 사람들한텐 안 그래."
"쟤가 이상한 거야."
"쟨 원래 저렇게 살던 애잖아."
"쟤한테 문제가 있는 거야."
"다 성인인데 왕따 당하는 건 걔가 이상한 거야."
"왕따였던 애들은 다 이유가 있어."
"저러니까 왕따지."
"나는 아무 문제 없이 살아왔어.
쟨 옛날부터 왕따였다며. 쟤 문제지."
"나만 쟤 싫어하는 거 아니야."
"나만 걔한테 그런 거 아니야. 그냥 학교 애들 다 그랬어."
"어딜 가나 문제만 일으키잖아 또."
"왜 저런 애랑 엮여서 내가 욕먹어야 돼?"
"쟨 왜 자꾸 이런저런 활동 참여하는 거야?
계속 왕따만 당하면서."
"어차피 인생 망했는데 ㅋㅋ"
내게 어떤 못된 짓을 하더라도
"쟤가 이상한 애야"라는 그들의 한 마디면
모든 잘못된 행동들이 정당화되었다.
그들의 어떤 나쁜 짓도
"그거 걔한테 한 거야. 나는 걔한테만 그래."라는 말이면
모든 상황이 무마되고 납득되었다.
나는 그냥 그래도 되는 존재였다.
나는 맹세코 타인에게 무언가 잘못된 행동을 한 적도 없고
그렇게 하지도 못하는데
사람들은 왕따의 이유를 피해자에게서 찾으려 한다.
왕따의 이유라면, 그저 방어력이 없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이다.
단점 없는 사람들은 없고
의도치 않게 거슬리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는 사람도 없다.
자격지심과 열등감이 있는 사람에게는 사소한 한마디도 더욱 거슬렸을 것이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을
문젯거리 만들어서 사람을 매장하는 데에는
'그래도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라서'가 가장 큰 이유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분위기에 편승해 남의 추락을 즐거워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집단이라면
너도 하고 나도하는 무시와 괴롭힘에
죄책감도 무뎌진다.
그런 집단에서 '선'은 전투태세를 갖춘 '악'을 이기기 힘들다.
야생 같은 집단에선 누가 얼마나 더 잔인할 수 있느냐가 승패를 좌우한다.
위축된 성격은 도처에 은근히 널린 사이코패스들에게 좋은 타깃이 된다.
한번 왕따를 당했었다는 사실은,
그로 인해 변한 성격 때문에 또 왕따가 되기 쉽기도 하고
무엇보다 괴롭힘을 정당화하는 데 쓰인다.
내가 아니어도 다른 누군가가 어차피 괴롭혔을 거라는 정당화.
얘는 이런 인생에 익숙할 것이고
이렇게 살았으니까 또 그래도 될 거라는 정당화.
내가 얼마나 많은 헛된 희망을 품고 악착같이 버티며 살았는지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도 되고 싶은 모습이 있었고 꿈꾸던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른다.
오늘도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는 이들이
그 정당화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라며,
괴로운 순간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문제의 원인을 본인에게서 찾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