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단약후기➂ | 으에어우어우오우어우에?

by 김헤니

‘1일 1회 취침 전 복용’


하얀색, 노란색, 분홍색의 알갱이들이 한 알씩 들어있던 나의 약봉지는 특별할 것도 없이 전자레인지 옆 찬장에 꽤 오랜 시간 자리했다. 중간에 노란색 약이 하얀색 약으로 바뀌고 분홍색 약의 크기가 미세하게 커지는 변화가 있었지만, 자기 전에 미지근한 물과 함께 약을 삼키는 행위는 원래 있 던 습관처럼 매일 똑같이 반복됐다.


나는 마음의 병이 생기고 네 명의 정신과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았지만, 그 어느 의사도 약의 부작용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분홍색 약은 복용 시에 몸무게가 불어나는 부작용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고, 나도 그것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약을 먹기 전 50kg 초반으로 건강했던 나는 1년 만에 15kg 이상 몸무게가 늘었다. (체중계가 65kg을 찍는 순간 차마 더 큰 숫자는 볼 수가 없어서 측정을 중단했기에 몇 kg이 최고치인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하필 신혼 기간과 겹치는 바람에 약물 부작용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깨가 쏟아져서 살이 쪘다고만 생각했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마다 웃으며 ‘아이고~ 신랑이 잘해주나 보다.’ 하고 건네주던 말들이, 그 생각을 강화시켰더랬다.


조금 커다랗고 행복해진 상태로 직장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두통이 시작되어 꽤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애먼 내과와 신경과만 전전하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질 때쯤, 기존에 다니던 곳과는 다른 정신과를 찾게 되었다. 사무적인 말투는 비슷했지만 내 상태를 대강 들은 이번 의사 선생님은 앉은 자리에서 질문을 쏟아부었다. 단순한 우울증이 아닐 수도 있으니 좀 더 면밀한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병원 대기실에서 너무 오래 기다리고 계신 부모님께 죄송해서 등에 땀이 날 때쯤, 기나긴 검사가 끝이났고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환자분은 우울증이 아닙니다. 제2형 양극성 장애, 알기 쉽게는 조울증이라고 하지요.”


“으에어우어우오우어우에…?”



새 진단 결과를 들었을때 실제로 내가 뱉은 소리였다.


옆에계신 부모님의 눈치를 살피며 희한한 소리가 쏟아져 나온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어느정도 짐작하고 들었던 우울증 때 와는 달리 전혀 생소한 병명에 충격의 크기는 몇배로 돌아왔다. 애석하게도 경악스러운 내용은 이제 시작이었다.



“조울증은 우울증과 비슷한 것 같지만 완전히 다릅니다. 환자분의 경우에는 기분이 들뜨는 증상인 ‘조증’의 정도가 심하지 않고, 그로 인한 피해도 미미했기 때문에 우울증이라고 오진할 수 있었겠네요. 평생 약 먹는다고 생각하시고 관리 잘하시면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으실 겁니다.”


조증? 피해? 오진? 평생? 지장?


드라마의 극적인 장면에서만 들어본듯한 단어들이 물밀듯이 뇌리로 쏟아지는 가운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울증에 걸렸지만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내 존재가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 충격에 멍해진 머리가 굳어진 몸에게 아무 명령도 내리지 못한 채, 하염없이 하염없이 의사가운에 적힌 병원이름만 바라보았다.




조울증 단약후기: 큰일 날 줄 알았는데 잘 살아있습니다

03_으에어우어우오우어우에 (해석: 네? 우울증이 아니라구요?)

작가의 이전글조울증 단약후기➁ | 참을 수 없는 진단의 가벼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