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습니까?
저에게는 철학을 사랑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노자와 공자를 비롯한 현자들의 책을 항상 지니고 다니며, 관련 교양 수업을 찾아 듣기도 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 이 친구의 철학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저는 내심 기대를 했습니다. 곁에 두면 많은 걸 배우고 좋은 영감을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 기대는 얼마 가지 않아 거품이 터지듯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루는 급한 개인 사정이 있어 그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는 저를 도와주기로 약속했고, 그 약속에 맞춰 제 개인 사정을 조정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그는 이상하게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저와의 약속을 조금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급한 일이란 것도 신경 쓰지 않았으며, 터무니 없는 거짓말들과 함께 모든 일을 제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어린 아이 같은 태도에서 저는 큰 실망을 느꼈습니다. 그리곤 방에 돌아와 생각했습니다. “이게 정말 배운 사람의 모습인가? 그가 읽었던 철학책의 구절들은 왜 조금도 그를 깊이 있게 만들지 못했는가? 머릿속의 쌓은 지식과 실제 삶에 왜 이런 괴리가 생겼는가?”
저는 얼마전에 인상깊게 읽었던 최진석 교수님의 책 중 한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철학이란 철학자들이 남긴 내용을 숙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 삶의 격을 철학적인 시선의 높이에서 결정하고 행위하는 것, 그 실천적 영역을 의미한다.
제 친구는 '철학 알기'에는 능했지만, 실제로 '철학 하기'를 실천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책을 읽고 대학 강의를 들으며 철학자들이 남긴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 넣었지만, 살아있는 사유의 활동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단 그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저는 항상 제 전공 교수님들의 사고 방식과 수업에 불만을 품어왔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수업에서 교수님들이 시키는 것은 대충 이러합니다. 중국어 명사의 종류 외우기, 갑골문의 의의 외우기, 춘추시대에 어떤 나라가 어떤 나라를 몇년도에 침략했는지 외우기. 외우고 외우고 또 외웁니다. 어떤 교수님은 제가 질문하는 것과 실수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수업 중 오답을 말하면 한숨을 푹, 쉬면서 저를 경멸의 눈빛으로 쳐다보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방에 처박혀서 교과서만 달달 보면 되는 공부를 꽤 잘해내고 있습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학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외우고 있는 것들이 죽은 지식의 나열이라는 믿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교수님들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박제된 지식을 주입하는 데 열을 올립니다. 예상컨대 이것은 많은 대학생분들이 공감하실 것입니다.
제 친구가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제 신뢰를 깨버린 것은 그의 머릿속에 든 철학적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교수님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지식의 주입을 가치있는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한 공부의 깊이가 얕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식이 살아있는 지혜로 체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수백권의 철학책보다 한 번의 상대에 대한 진실한 태도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수백편의 논문보다 학생과 서로 배우는 대화 한 시간이 더 많은 걸 깨우치게 합니다. 그들은 지식이라는 섬에 갇혀 실제 삶이라는 육지로 발을 내딛기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게 전부인 대학, 그 교육현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남의 생각과 정답을 외워야 하는 학생. 이 구조가 바로 20대의 독창성과 도전정신을 획일화하는 공장의 모습입니다.
가장 무식하게 실험하고 도전을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을 모아둔 곳이 대학입니다. 그런 꿈같은 공간에서 시험 성적 잘받기, 유식한 척 하기 등의 껍데기만 두르고 나온다면 우리의 시간과 노력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자신과 제 또래들에게 이렇게 주장하고 싶습니다.
-인생은 한 번이고, 애매하게 살지 말자.
-남이 만들어 놓은 걸 가장 잘 따라하는 사람이 되려 하지 말고, 나만의 무언가를 창조하고 직접 길을 트는 사람이 되자.
-독립적으로 사유하고 실패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가치중립적인 지식을 머릿속에 쌓아두는 걸 학습이라 생각하지 말고 그걸 실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자신만의 언어와 시스템으로 탈바꿈하는 습관을 들이자.
이런 주장들이 상당히 추상적으로 들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금 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메모'입니다. 수업을 들으면서, 공부를 하면서, 친구를 만나거나 혼자서 유튜브를 보면서 얻는 인풋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풋에는 아웃풋으로 변환될 수 있는 잠재성이 들어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업을 듣다가 어느 인물의 사상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 왜 그 사상이 마음에 들었는지 내 언어로 정리를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내 비전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나만의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인풋은 외부에서 오지만 그에 대한 내면의 견해, 나의 새로운 해석이 더해지면 우리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런 주관적인 메모들이 몇백개, 몇천개 쌓이면 그것은 분명 한 사람의 새로운 세계를 형성할 것입니다. 견고한 기존의 틀을 부술 수 없더라도, 그 안에서 주체성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그것은 본인의 선택과 노력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질문을 드리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합니다.
당신 머리는 실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연장'으로서의 지식을 담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남의 생각을 처박아두는 '창고'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