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살았던 곳

혼란의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들

by 이정

'82년생 김지영' 이라는 책을 처음 읽었을 때에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게는

그닥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었다.

나는 심지어 더 일찍 태어난 70년대생이지만,

(운 좋게도)자라면서 아들선호사상을 그닥 접해보지 못했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좌절이 당연시되며 살아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와 비슷한 환경과 시간에 자라난 주변의 이들과 그 책에 대하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지영이' 같은 삶을 살아온 이들이 제법 된다는 사실에

나는 많이 놀라기도, 동시에

내가 누려온 환경에 새삼 감사하기도 하였다.


그랬다.

나는 서울 한복판, 제법 생각이 트인 부모님 아래에서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표어를 충실히 누리며 산 것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처럼 자라온 사람조차

순식간에 변해가는 세대의 흐름이

늘 버겁고도 벅찼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느새 억울하기도 하였다.


어디선가

이집트의 피라미드에도

요즘 아이들에 대한 탄식이 쓰여있다고 하는 말을 읽었다.

그리고 나 또한

한중록을 뒤적이다 '요즘아이들 같잖게' 라는 혜경궁 홍씨의 글을 읽으며

세대간의 괴리는

우리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세대차이란

전세계 역사상 누구보다도 벅차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위로는 6.25세대. 일제압박의 설움과 폐허에서 생존한,

그리고 그 틈마다 유교사상이 빼곡이 들어차 있는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고,

아래로는 소위 MZ세대. 심지어

세상의 트랜드를 가장 빨리 접하고 이끈다는 K문화의 아이들을 키우며 산다.

나라의 괄목할만한 발전과 그로 인해 따라오는 급격한 변화는

우리에게 행운이자 동시에,

그 어느 나라의, 그 어느 세대보다도 큰 괴리를

양쪽으로 견뎌내어야 하는 버거움이기도 했다.


우리는 수시로

상하의 극점 사이에서 휘청이기도 하고

좌우의 대립 사이에서 중심을 잃어가기도 해야 했다.

때로는 배워 온 것들이 손가락질 받는 것을 겪기도 했고,

종종 믿어온 가치들이 부정당하는 것을 체험해야 했으며,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들임에도

능히 해내지 못함에 질타를 받아야 하기도 했다.


타고나기를 유연하지 못한 성격이라,

쉽사리 생각을 바꾸지 못함을 스스로 탓하는 날들도 많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내가 살아온 그 곳과 시간을 그리워하는 날들도 많다.

그런 이유로 어쩌면 내가 써나갈 이 글은

욕먹을 각오로 쓰는, 누군가에게는 꼰대의 하소연을 들릴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이 글을 시작한다는 것은 내게

용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해 보기로 한다.

버겁도록 급하게 변해가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는 비교적 쉽게 적응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주춤대며 뚝딱대더라도,

생각의 축과 가치관의 방향이 어디에 서 있든

우리는 세상 어느 세대보다도 혼란한 변화를 견뎌내고 있는

응원받고

위로받아

마땅한 존재들이라 믿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때로는 비판보다 공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아마도

7-80년대생 엄마들의 항변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