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 만주 체험과 남대문시장 비누장수 경험

by 변우현의 인물당

#1 만주

이순재는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고향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과 만주에서 살았다.

4살부터는 조부모님과 서울에서 살았다.


이순재의 부친은 장남이 아니었다.

회령을 떠나 만주 노두구 역에서 역원으로 근무했다.


장남만 고향에 남아 가업을 잇던 관습이 있던 때였다.


공교롭게도 현대 정주영 회장은 고향에 남아 가업인 농사를 하기 싫어 가출한다.

같은 이유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만주가 기회의 땅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김지운 감독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을 보면 만주가 미국 서부개척시대처럼 그려진다.

신한은행 창업주 이희건은 어릴 적 고향 경산의 어른들이 모여 앉아 만주 가면 재미 본다며 떠날지 고민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했다.


이순재의 형제로는 1937년생 남동생 한 명이 있다.

단출한 가족 구성엔 아픔이 있다.


이순재가 만주를 떠난 뒤 남동생과 여동생이 태어났다.

하지만 둘 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지금보다 죽음이 일상과 맞닿던 시절 얘기다.


머리가 좋은 집안이다.

아들 둘 다 서울대를 졸업했다.


요즘처럼 서울대 합격해도 그게 뭐 대수냐 하는 시절이 아니다.

남동생은 서울대 상대 졸업 후 기업은행 부행장까지 지내다 1994년 사망했다.


이순재는 장수의 아이콘이었다.

외탁이리라 짐작된다.


이순재 모친은 95세에 별세하셨다.

이순재가 74세이던 2008년이었다.


2019년 방송된 <인간극장>에서 이순재는 아침식사로 시리얼을 즐긴다.

장수 식단과는 거리가 멀다.


술 담배는 안 하지만 음식도 안 가린다.

차량 이동 중 국도변 식당에 들어가 매니저랑 냉면도 먹고,

대학 구내식당에서 학생들이랑 볶음밥도 먹는다.


긍정적이고 털털한 성품이라 짐작되는 면모다.


# 서울

이순재 조모는 계조모였다.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


적적했던 조모는 이순재를 데리고 명동에서 신파극을 종종 봤다.

이순재와 조부모의 세 식구 서울살이가 시작됐다.


이순재 조부는 자수성가의 전형이었다.


일제 시대 함경도 해안은 어획량이 많았다.

남는 생선 기름으로 비누를 만들었다.


그 기술로 생업을 일군 조부는 이순재를 데리고 남대문에서 비누 장사를 했다.


지금의 남대문시장이 있기까지 사정이 조금 복잡하다.

남대문시장은 조선 후기 규모를 키워오다 한일합방으로 일본인 상거래 지역으로 넘어갔다.

청계천을 기준으로 북쪽은 한국인들이, 남쪽은 일본인들이 주로 살았던 이유기도 하다.


해방이 되고 일본인들은 남대문을 떠났다.

빈 공간을 38따라지라 불리던 이북 사람들이 장사로 채워냈다.

지금의 남대문시장이다.


조부는 생활력 있고 이재에 밝았다.

평소 사서를 읽으며 학식도 밝았다.


조모는 이순재에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한다.

덕분에 이순재는 유치원을 다녔다.


그 시절 유치원을 다닌 경우란 극히 드물다.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했다.


유치원 자체가 귀했고 종교시설 부설이 다수였다.


7살이면 누구나 유치원을 다닌다는 건 1980년대에야 가능해진 얘기다.


이순재와 비슷한 연배 권노갑 의원은 목포 룸비니 유치원을 다녔다.

부친은 안동 권씨였다.


사업상 이유로 목포에 정착했다.

권노갑은 유복하게 자랐다.


모친은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흔히들 권노갑을 동국대 출신이라 불교계 인사로 꼽지만 그 인연은 유치원 때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