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도약을 읽고

도야마 시게히코

by 친절한 손원장

도야마 시게히코의 “생각의 도약”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2020년 돌아가신 일본의 한 영문학자가 1983년에 쓴, 오래된 책이다. 일본 한 서점의 점원이 “이 책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이라는 팻말을 붙여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난 뒤로, 일본 전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우리나라에도 번역이 된 책이다. 요새 표현으로 하면, 제대로 역주행을 한 셈이다. 읽기 어렵지 않으면서도 정말로 ‘생각의 도약’에 도움을 주어 신들린 듯이 두 번을 연속으로 읽었는데,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정리한다.



1. 글라이더가 아닌 비행기가 되자.


누가 끌어주면 글라이더고, 혼자 날면 비행기다. 학교의 우등생은 훌륭한 글라이더일 뿐 혼자 날 수 없다. 열심히 가르치고 열심히 공부할수록 글라이더만 만들어낼 뿐이다. 능동적인 비행기를 만들려면, 너무 친절하게 가르쳐서도, 너무 많은 걸 가르쳐서도 안된다. 알고 싶게 만들어야 하고, 왜 알려고 하는지 스스로 찾게 만들어야 한다. 이미 많은 스케쥴을 소화하고 있는 아이에게 뭘 더 채워 넣을지 생각하던 나는 책의 첫 장부터 얼굴이 빨개졌다.


2. 생각이 머리 속에서 숙성 되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갈비를 양념에 재우듯이 생각에게도 시간을 줘야 한다. 한 가지만 너무 골똘히 생각하지 말고 다른 주제를 기웃거려야 하고, 무의식 속에서 생각이 자라나는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우연히 얻어걸리는 행운은 덤이다.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양념이 다 재진 갈비처럼, 숙성이 된 생각이 나에게 다가온다. 유튜브의 원고를 떠올릴 때도 그렇다. “망막의 줄기세포 치료”처럼 어렵고 막막한 주제도, 몇 달 전에 생각해두고 덮어놓고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어느 샌가 나에게 ‘다가오는’ 순간이 온다. 그러니 좋은 생각이나 해결책이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고 조급할 필요가 없다.



3. 망각은 중요한 생각의 정리 과정이다.


말이 길수록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 만큼 생각이 정리가 되어있지 않다는 반증이다. 저자는 생각이 잘 정리되면 명사 (noun) 만 남는다고 했다. 정말 탁월한 통찰이다. 집 정리는 안 쓰는 짐을 버리는 것이고, 생각의 정리는 안 중요한 지식을 버리는 것이다. 자꾸 채워 넣으려고 하지 말고,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버리는 것이 먼저다. 막히면 잠을 자고, 환경을 바꾸고, 다른 생각을 해야 한다.


망각의 가장 특효약은 ‘시간’이다. 고전과 속담이 위대한 건 시간이라는 가장 강력한 망각 작용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덜 중요한 지식을 의식적으로 버리는 것은 효율적인 생각에도 도움이 되고, 망각에 필요한 시간을 버는 방법이기도 하다.



4. 많이 써야 한다.


글쓴이는 책 전체에 걸쳐 글쓰기의 3가지 이점을 강조한다.


A. 독서를 통해 얻은 평면적인 지식이 자신만의 입체적인 세계가 되는 것.

B. 중요한 주제를 잊지 않게 하는 것.

C. 중요하지 않은 주제를 잊게 만드는 것.


놀랍게도 A의 과정 중, B와 C는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글을 쓰면 책을 읽었을 때 머리속에서 여기저기 시끄럽던 내던 생각들이 정리가 된다. 두서없이 널려있던 생각들에 앞/뒤, 위/아래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럼 생각의 사다리에 꼭 있어야 하는 것들 (B)과 필요 없는 것들 (C)이 보이고 줄글에 펼쳐졌던 생각들은 나 만의 입체적인 모양으로 머리 속에 남게 된다. 그래서 읽고 좋았던 책들은 반드시 글로 기록해야 한다.



5. 생각의 뿌리는 1차적 현실에 두어야 한다.


저자는 1차적 현실과 2차적인 현실이 있다고 한다. 매일 살로 부딪히는 현실은 1차적인 현실이고 책이나 TV를 통해 한 번 사고를 거친 현실은 2차적인 현실이다. 저자는 진정한 창조적 사고는 결국 1차적인 현실에서 온다고 했다. (일론 머스크도 몇 년간 공장에서 잠을 잤다!) 도서관에 파 묻혀 골똘히 생각한다고 해서 비행기형 인간이 될 수 없다. 일을 하면서, 평범한 행동을 하면서 생각한 것을 정리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바로 비행기형 인간이라 저자는 말한다.


매일 아픈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야 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고상하게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면 얼마나 행복할까하는 생각은 하루에도 몇 번씩 한다. 하지만 매일 진료를 봐야 한다는 건 어쩌면 고통이 아닌 축복일 수도 있다. 임상 의사들이 결국 힘을 쥐고 있는 것은 모두가 언젠가는 아플 수밖에 없는 육체라는 1차적 현실에 갇혀 살기 때문이고, 의료 AI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창조적 생각의 시작은 1차 현실 속에 사는 임상 의사의 머리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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