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는 환경에 맞게 진화하는 개체의 돌연변이가 그 원동력이다. 그런데 돌연 변이는 흔한 사건이 아니다. 돌연변이가 흔하게 발생하면 그 종족은 살아 남을 수 없다. 돌연변이가 흔하지 않다는 건, 개체의 입장에서는 집단 내에 다른 개체와는 다른 성질을 갖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와 같다.
슈뢰딩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 에서 X 선에 의한 “문턱 에너지” 의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어떠한 문턱을 넘기 위한 에너지가 가해져야 하는데, 돌연 변이가 생기기 위해서는 유전 정보를 갖고 있는 구조가 변할 만큼 큰 에너지가 가해져야 한다.
전자의 궤도도 마찬가지다. 일정한 에너지의 변화가 없으면, 전자는 정해진 궤도를 돈다. 전자가 도는 궤도를 전자껍질이라고 하는데, 전자에 에너지를 가하게 되면 전자는 “들 뜬 상태”가 되어 원자핵에서 멀어지는 궤도로 이동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바닥 상태”로 내려가며 에너지를 내놓게 된다. 하지만 원자에 전자 껍질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 차이 이상의 변화를 가하지 않으면 전자는 특정한 궤도에만 위치하게 된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들이 나고 자란 곳에서 비슷한 궤도를 돌다가 생을 마친다. 대단한 결단과 비범한 노력이 없다면 대부분은 비슷한 사회적 환경, 비슷한 사회적 계층에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다가 죽는다. 삶이라는 ‘상태’는 많은 요소들의 동적 평형이라, 더 높은 에너지를 갖는 궤도로 갈아타기 위해서는 죽을 노력을 끊임 없이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다이어트가 어려운 이유는 그게 단순히 하루라면 안 먹어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의 의지 외에도 식습관, 운동 환경, 가족들의 식사 환경,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공급되는 식량 등 수 많은 것들이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균형은 잘 깨지 않는다. 마운자로나 삭센다 같은 묘술로 뇌를 잠시 속일 수는 있겠지만, 주사를 끊으면 원상 복구되는 몸무게는 균형의 무게추가 얼마나 무거운지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꼭 궤도를 갈아타 올라서야 하나? 돌연변이는 그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돌연’히 나타나는 흔하지 않은 개체다. 모두가 성공 신화를 향해 달려야 한다는 강박은, 트로피를 쥔 소수의 불안 장애자와 다수의 패배자를 낳는다. 많은 걸 가졌지만 늘 괴로운 나는 더 가져야 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