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이 절대 법칙이 될 수 없는 이유

우주는 판단하지 않는다

by 하봉길


우주는 판단하지 않는다



양심이 절대 법칙이 될 수 없는 이유




봄에 피는 꽃이 옳고, 가을에 지는 잎이 그른 걸까.

비가 내리는 데 도덕이 있고, 별이 폭발하는 데 윤리가 있을까.

우주는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움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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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보다가 한 철학 강의를 만났다. 꽤 유명한 강의였다. "양심이 우주의 절대 법칙"이라는 주장이었다. 자명하면 양심적이고, 찜찜하면 양심에 어긋난다는 것. 명쾌해 보였다. 그런데 나는 그 명쾌함이 불편했다.

왜 불편했는지 한참을 생각했다.



결국 이런 거였다. "내 양심이 이렇게 말한다. 양심은 우주 법칙이다. 그러므로 내 판단이 곧 우주의 판단이다." 이 논리 구조가 위험하다고 느꼈다. 아무리 선한 의도를 포장해도, 결국 자기 기준을 우주의 이름으로 절대화하는 거니까.



자연을 보면 답이 나온다.



태양은 선한 사람에게만 빛을 비추지 않는다. 비는 착한 사람의 논밭에만 내리지 않는다.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는 건 악이 아니고, 사슴이 풀을 뜯는 건 선이 아니다. 자연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에너지의 흐름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은 왜 자꾸 옳고 그름을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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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하냐, 찜찜하냐."



이 기준이 양심의 잣대라고 한다. 그런데 한 번만 더 들여다보자. 자명함과 찜찜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 온다. 부모에게 배운 것, 학교에서 들은 것, 종교에서 익힌 것, 사회에서 체득한 것. 그 모든 게 쌓여서 "자명함"이라는 느낌을 만든다.


전쟁터에서 자란 아이의 자명함과 평화로운 마을에서 자란 아이의 자명함이 같을 수 있을까. 조선시대 양반의 양심과 2025년 청년의 양심이 같은 잣대일 수 있을까.


양심은 우주의 절대 법칙이 아니다.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든 심리 기제다. 소중하고 필요하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 그걸 절대라고 말하는 순간, 자유가 속박이 되고, 깨달음이 교리가 된다.


부처가 "일체유심조"라 했을 때, 예수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했을 때, 그 순간에는 살아있는 체험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받아 적은 사람들이 체계를 만들고, 체계가 제도가 되고, 제도가 권력이 되면서 원래의 숨결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았다. 그 껍데기를 "우주적 진리"라고 포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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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일수련을 하면서 이걸 온몸으로 깨달았다.


지리산에서 천 일을 걸었다. 매일 같은 길을 걸었는데, 같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 어떤 날은 나뭇잎 하나에 온 우주가 담겨 보였고, 어떤 날은 진드기가 무서워서 대성통곡했다. 어떤 날은 "나는 인류의 구원자다"라는 거창한 생각에 빠졌고, 어떤 날은 "배고프다, 라면 먹고 싶다"가 전부였다.


그 모든 날이 다 나였다.


구원자인 내가 옳고 라면 먹고 싶은 내가 그른 게 아니었다. 대성통곡하는 내가 약하고 우주를 느끼는 내가 강한 게 아니었다. 매 순간의 내가 그 순간의 전부였고, 그 전부가 완전했다.


이걸 나는 "제철생기"라고 부른다.


봄에는 봄의 에너지가, 여름에는 여름의 에너지가, 가을에는 가을의 에너지가 흐른다. 거기에 옳고 그름을 붙이는 순간, 살아있는 에너지를 죽은 규범으로 가두는 거다. "범사에 인정하라"가 "범사에 판단하라"가 아닌 이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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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무엇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관찰한다.

철학은 "그 움직임 속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자각한다.

판단이 아니라 자각. 통제가 아니라 수용.


누군가의 양심이 우주의 법칙이 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철학이 아니다. 겸손의 탈을 쓴 오만이다. 우주는 누구의 윤리도 승인한 적이 없다.


지진이 일어나는 데 윤리가 있는가. 별이 폭발하는 데 도덕이 있는가.


우주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오직 "지금 여기, 살아있음"만 있다. 그리고 그 살아있음 자체가, 이미 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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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천일수련 이후의 일상 묵상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답은 제가 아니라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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