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와의 천일약속으로 매일 산을 오른다. 오늘로 860일째 오르고 있다. 5.2킬로미터의 가파른 산길을 땀으로 목욕하며 오르는 동안,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이것이 바로 대주천이구나. 정충기장신명의 실제적 순환이구나.
정충기장신명. 이 세 글자로 압축된 인간 존재의 근본적 에너지 순환을 이해하게 된 것은, 산을 오르며 내 몸과 마음이 겪는 변화를 관찰하면서부터였다.
정충(精衝) 상태란 무엇인가. 이는 정력이 충만해지는 상태, 더 정확히 말하면 원초적 욕망이 생명의 근원에서 솟구쳐 오르는 순간이다. 우리는 흔히 이를 성욕으로만 국한해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식욕, 성욕, 명예욕, 재물욕, 그리고 창작욕까지. 인간을 살아가게 만드는 모든 원초적 욕망이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상태가 바로 정충이다.
산길 초입에서 느끼는 그 설렘이 그렇다. 오늘도 정상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동시에, 반드시 올라가겠다는 강렬한 충동이 하단전에서 솟구친다. 이것이 정충이다.
기장(氣壯) 상태는 그 욕망이 실현 가능한 에너지로 전환되는 단계다. 기가 장대해진다는 것은 단순히 기분이 좋아진다는 뜻이 아니다. 기필코 그것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철주야 노력하게 만드는 상태, 그것이 기장이다.
산을 오르며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릴 때, 여기서 그만 내려갈까 하는 유혹이 수없이 찾아온다. 거미줄에 걸리고, 벌레에 물리고, 땀이 눈에 들어가 따가울 때마다 포기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목소리가 있다. “끝까지 가야 한다.” 이것이 기장 상태다.
예술가들이 창작의 고통 속에서도 계속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 조선의 선비들이 기생에게 잘 보이려고 밤새 시를 쓰며 문장력을 키운 것, 이 모든 것이 기장 상태의 발현이다. 욕망이 단순한 충동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실천력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기장 상태에서는 실패조차 연료가 된다. 어제 중간에 포기했다면 오늘은 더 멀리 가려 하고, 지난번에 숨이 차서 쉬었던 그 지점을 넘어서려 한다. 욕망이 단순한 욕구가 아니라 자기 초월의 동력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신명(神明) 상태가 온다. 신이 밝아진다는 이 말은, 정신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며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는 순간을 가리킨다.
산 정상에 다다를 때마다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다.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군대에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식당으로 향할 때 부르던 그 노래다. 억지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서 저절로 울려 나온다. 이것이 신명이다.
올라오는 과정에서 겪었던 모든 고통과 피로가 한순간에 순수한 기쁨으로 전환된다. 아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승화된다. 그 모든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 이 기쁨이 가능했다는 깨달음과 함께, 존재 전체가 환희로 충만해진다.
이때의 기쁨은 단순한 쾌락이나 만족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계를 돌파했다는 성취감, 어제의 나를 넘어섰다는 확신, 그리고 내일 또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는 용기까지 모두 포함된 총체적 환희다.
정충기장신명의 순환은 꼭 산행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이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쓸 때도 그렇다. 처음엔 막막하고 손가락이 굼뜬다(정충).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점점 몰입하게 되고, 더 좋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 집중한다(기장). 그리고 마침내 만족스러운 문단을 완성했을 때 느끼는 그 기쁨(신명).
사랑할 때도, 일할 때도,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다. 원초적 욕망이 일어나고(정충),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기장), 마침내 성취의 기쁨을 맛본다(신명). 이 순환이 반복되면서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존재로 성장해간다.
나는 이제 안다. 정충기장신명이야말로 일상을 살아가는 가장 충실한 방법이라는 것을. 큰 깨달음이나 특별한 경험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매일매일의 작은 도전과 성취 속에서도 충분히 대주천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허벅지 근육이 탄탄해지고, 체력이 좋아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신체적 변화와 정신적 성장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몸과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에너지가 다른 차원에서 발현되는 것뿐이다.
매일 산을 오르며 정충기장신명을 순환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찾은 대주천의 실제적 수행법이다. 복잡한 이론이나 형이상학적 사변이 아니라, 땀과 숨과 근육과 의지로 체득하는 살아있는 철학이다.
정충기장신명의 순환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나를 살아낸다는 것은 특별하고 거창한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주어진 삶의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욕망을 부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욕망에 매몰되지도 않는다. 욕망을 연료로 삼아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는 것. 고통을 피하지 않고 그것을 성장의 동력으로 전환하는 것. 그리고 작은 성취라도 온전히 기뻐하며 다음 도전의 용기로 삼는 것.
이것이 내가 60년을 넘게 살아오며 체득한 대주천의 지혜다. 거창한 종교적 체험이나 신비한 깨달음이 아니라, 일상의 땀과 노력 속에서 발견한 삶의 원리다.
보람찬 하루를 끝마치고서, 내일 또 새로운 도전을 꿈꾸며 잠자리에 든다. 정춘기장신명의 순환은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조금씩, 확실히, 더 나은 나로 살아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끝내 나를 살아내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