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고 집안 분위기가 흡사 <어셔가의 몰락> 느낌이 날 때가 있다.
물이 새는 소리. 화장실에서 난다. 양치하고 다 잠그지 않고 나온 것일 테지.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남편의 저지레를 뒷설거지하고 다녀야 한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치매의 결과는 교묘하다.
뒷 손이 없는 남편은 나와 살림 질서가 맞지 않는다.
이 세상에 나와 맞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이라지만,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
영화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에서 메릴 스트립은, 남편이 부엌 뒷 문을 여닫을 때마다 '쾅' 소리에 움찔한다.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는 남편과 취향도 생활 습관도 맞는 게 없어 보인다.
그러다 남편과 아이들이 사흘 집을 비운다. 그 사흘동안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만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인 로버트 킨케이드(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 집 부엌문을 소리 나지 않게 여닫았다. 사흘 후, 남편이 돌아왔다. 비 오는 날. 프란체스카는 남편의 차에서 내릴까 말까, 차 문 손잡이를 잡고 갈등했다.
전도연과 공유가 주연한 영화 <남과 여>에서 공유도 그랬다. 차 키를 손에 쥐고 갈등한다.
어린 딸이 공유의 손을 잡는다. 공유는 포기한다.
긴긴 결혼 생활. 오래 산 내 짝은 안 맞는데 잠깐 스친 남의 짝과 맞을 때가 있다. 그 순간, 왜 흔들릴까?
흔들리는 집에서 '잠깐' 나가고 싶어서 일 것이다. 그렇다고 살 던 집을 버릴 수는 없다.
제 둥지를 제 발로 찰 수는 없다. 층간소음이 괴로워도 어지간하면 그냥 사는 것이다.
층간소음처럼 교묘한 것도 없다. 교묘한 소음이 있다. 한동안 아침 7시만 되면 진동이 울렸다.
누구네 집인지는 모른다. 윗집은 비어 있었다.
옛날 유머 중에 아래층 사는 예민한 사람이 잠을 설쳤다. 왜냐, 윗 층 사는 남자가 장화를 한 짝만 벗었기 때문이다. 다른 쪽은 언제 벗나 기다리다 밤을 새웠다는 것이다.
사람은 시력보다 청력이 우선한다고 한다. 남편이 청각장애가 있다. 같이 살아 보니 과연 그랬다.
나이 들 수록 손가락에 힘이 없어진다. 말초신경까지 혈액순환이 안 돼서 그렇다나. 그러다 보니 뚜껑을 딸 때 자주 놓친다. 보통은 떨어진 물건보다는 굴러가는 소리를 따라간다. 귀가 눈이 되는 순간이 있다.
소리를 따라가다 멈춘 곳에 뚜껑이 있다. 길을 걸을 때도 뒤에서 자전거 오는 소리가 나면 몸이 알아서 비켜선다. 그런데 남편은 그걸 못한다. 소리가 안 들리니까 행동이 굼뜰 수밖에 없다. 그래서 치매에는 청력손실이 가장 '쥐약'이라고 한다.
결혼생활이 점점 살얼음판 같을 때가 있다. 남편의 치매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한다.
자다가 중얼거리고, 잠꼬대를 하고, 손짓 발짓을 하고, 일어났다 다시 눕고, 화장실을 두세 번 간다.
렘수면 행동장애가 심해지는 건 아닐까. 저러다 파킨슨으로 진행되면 어떡하지? 저렇게 척추가 뒤틀린 자세로 자면 혈액이 뇌로 원활하게 못 올라간다는데. 다리를 펴 줘야 하나? 그러다 깨면 아니한 만 못하겠지.
남편은 잘 때 가장 고단해 보인다. 자는 게 저렇게 힘이 들어서야... 가장 편안할 때가 잘 때일 텐데. 저래서 치매가 무서운 거구나..
죽느냐 사느냐 고민한 <햄릿>은 내 고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밥 먹다 사레가 들리면 또 그렇다. 치매는 뇌인지 능력이 약화되고 운동신경이 꼬인다고 한다. 기도와 식도가 분리되어야 하는데 그 박자를 놓치면 먹을 때 사레가 들린다고 한다. 식도로 넘어가야 할 음식이 기도로 넘어가면 폐질환이 된단다. 치매 노인 대부분이 저작 장애, 연하 장애 즉 씹고 삼키는 문제로 인한 폐질환으로 돌아가신 다고 한다.
새벽녘, 남편의 기침에 나는 깬다. 남편 입에 스트렙실 한 개를 넣는다. 지켜본다. 녹는다 해도 잠결에 삼키면 안 되니까. 레몬사탕 같은 약이 작아졌는지 잠결에 깨물어 먹는다.
잠귀가 밝기도 하지만 치매 환경에 적응 됐는지 안 그래도 민감한데 나는 더 예민해졌다. 동굴에 사는 생물이 눈이 없어진다더니. 내 귀는 점점 소머즈가 되어 가는 것 같다.
거실에 나와서 자는 남편을 보는 내가 마치, 에드가 엘렌 포의 소설 <어셔가의 몰락>에 나오는 신경증 환자 같은 것이다. 반대로 만약 남편이 깨서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나를 본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싶다.
치매 환자와 같이 산다는 건,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항상 깨어서 살펴야 한다. 최근에 달라진 건 없는지, 나빠진 건 없는지, 새로운 증상이 시작되는 건지. 늘 의심의 눈초리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은 제2의 환자가 되는 것이다.
선셋증후군. 치매환자만 앓는 것은 아니다. 노을마저 다 지고, 어둑해지는 저녁 무렵. 가슴이 그냥 철렁 내려앉는다. 가을 묻은 바람이 차게 느껴지기 시작할 즈음. <어셔가의 몰락> 분위기를 잘 살린, 영화 <디테치먼트> 마지막 장면 같은, 그런 스산함이 내 기분을 점령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깜깜한 우주에서 길을 잃고 유영하는 <그래비티>의 산드라 블록이 된 것 같다. 나를 연결하고 있던 줄이 툭 끊어지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아침에 일어나도 그렇다. 선셋에서 선라이징까지 그럴 때가 있다. 그런 날은 그저, 그렇구나 하고 만다. 마음도 해 질 녘에서 해 뜰 무렵까지 어둠과 빛을 지나가는구나. 바라 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