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는 허풍선이 초인으로, 겨드랑이에서 나도 날개가 나올지도 모른다.
남편이 찐계란을 먹는다. 옴박옴박 두 입 먹는다. 에이칫. 사레들린다. 숨 쉬라고 말해준다. 천천히 숨 쉬면서 먹으라고 말해준다. 등을 두드리고, 쓸어내려준다. 사레는 치매환자한테 치명적일 수도 있다. 기도와 식도가 제 기능을 못하는 기준. 그 시작일까 봐 눈여겨봐야 한다. 지금부터 이러면 안 된다. 요즘 부쩍 자고 일어나면 다리가 아프다는 말도 자주 한다. 초로기 치매, 마의 3년 차 진입. 약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일까. 의사 면담은 두 달이나 남았다.
미운날이 있다. 미운 감정도 순간순간 다르다. 끔찍하고 징그럽다. 말 그대로 찰나. 그 찰나의 감정이 포착되다니. 얼마나 강렬했기에. 화가 치밀 때가 있다. 화는 찰나의 순간은 아니다. 화는 조금 더 지속적이다. 통상 사람의 화는 15분을 지속하지는 않는다고 어디선가 들었다. 그런 것 같다. 한몇 분 정도 화가 나는 것 같다.
절대 음감이 있듯이, 나는 절대 감정을 본의 아니게 느껴가고 있다.
문득 영화 <위플래쉬> 드러머는 뭘 배웠을까 궁금하다. 절대 음감인가? 아니면 혹독한 선생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절대 감정일까.
내가 하루 편하다는 것은 남편도 편히 지냈다는 반증이다. 내가 힘든 하루는 남편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국은 내가 편하려고 하는 짓이다. 내가 편하려고 남편의 상태를 지금처럼 유지시키려 하는 것이다. 남편의 상태가 지금처럼 유지되어야 내가 고단 하지 않다. <이기적 유전자>는 이럴 때 쓰는 말인가? 그런데 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불편해져야 한다. 내가 불편할수록 남편 상태가 유지가 된다. 나 원 참. 그러다 생각한다. 헤어지면 그만이잖아. 왜 붙잡혀서 이 고생이지? 그러면 또 다른 내가 받아친다. 사람이잖아. 의리없이. 저 사람이라면 어떻겠니?
남편이라면, 아마 괴로워 미칠 것이다. 안쓰러워 죽을 것이다. 나는 그런가? 남편이 치매라서 괴로운가? 안쓰러운가? 그렇다. 괴롭다. 안쓰럽다. 돌봄은 거울이다. 남편이 밉다면 내 마음의 미움이 비쳐서 그런 것이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밉고 싫을 때가 있다. 왜냐, 내가 괴로우니까. 땅에 떨어진 선녀처럼 내가 더 안쓰러우니까.
늙을수록 멋이 넘치는 남자도 많던데. 동안의 대명사였던 남편이, 어째서 저렇게 미워질까. 추해지고. 흉해질까. 기침하고 사레들리고 다리 아프고. 미운짓만 한다. 도대체 땡감은 왜 주워오나. 청설모가 먹다 버린 솔방울은 왜 주워오나. 벌레 먹은 알밤까지 모아 온다. 미운 눈으로 보니 별게 다 미워진다. 예전 같으면 다정하다 했을 것들. 순수하다 했을 것들.
동네 한 바퀴 돌면 다 풀리면서. 들깻잎 한 장 따서 이것이 가을이다. 깊이 들이마시면 다 풀리면서. 그런데도 순간, 흘긴 눈으로 보면 전부 비틀린다. 그런 날이 있다. 가끔 그렇다. 알면서도, 소문이 불어나듯 과장되며 마치 날마다 그런냥, 하루가 통째로 틀어지는. 그런 날이 있다. 그런 날은 그냥, 풀기 날아간 포스트잇이다.
붙여 놓으면 언제 떨어져 나갔는지 모르게 저절로 떨어져 나가는. 적는 순간 중요했지만, 떨어져 나갔어도 찾지 않는. 그런 메모와 같은. 그런, 미운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