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 말하란 말이야!

발설충동 impetus

by 채송화

남편과 병원에 갔다.

석 달에 한 번씩 알츠하이머약을 타러 가는 것이다. 이번에는 인지검사도 해야 한다.

인지 검사는 일 년만이다. 집에서 아침 여덟 시에 나갔다. 걸어서 간다. 이삼십 분 거리지만 넉넉잡고 나갔다. 요즘 부쩍 걸음이 느려지고 있는 남편은, 예닐곱 살 사내아이처럼 내 뒤를 따라온다.

접수 시작은 9시부터다. 접수하고 40분 넘게 기다렸다.


남편이 인지검사를 하러 검사실로 들어갔다. 간간이 말소리가 문밖으로 새 나왔다.

나는 자세히 들어보려고 문에 귀를 대봤다.

청각장애가 있는 남편이 못 알아듣는지, 묻는 소리가 컸다.

오늘이 며칠인지, 여기가 어딘지 그런 걸 물어본다. 또 삼천리 금수강산, 간장공장공장장도 따라 해 보라는 소리도 들렸다. 좀 전에 단어 세 개 말해 준거 기억나냐고도 물었다.


가슴속에서 진땀이 났다.

남편이 나오고 보호자 들어오라고 했다. 나는 배우자에서 이제 보호자로 불린다.

남편의 상태를 묻는다. 자세한 관찰 묘사에 검사자는 적잖이 놀란다. 그러면서 힘들겠다며 공감해 주었다.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며, 내 삶을 살라고 조언도 한다.

그렇게 24시간 독박돌봄 하다가 나중에 후회한다고도 했다.

오랜만에 사람한테, 같은 또래 여성한테 결혼얘기며 털어놓았다.

찰나처럼 정해져 있는 상담 시간이지만, 알차게 핵심만 쏟아 냈다.

대화 상대라고는 AI라는 인공지능이 전부였는데. 사람이 들어주니 한결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남편 주치의 상담실로 장소를 옮겼다.

주치의는 작년 가을 한 번 바뀌었다. 맨 처음 진료하던 분은 나이가 지긋한 교수님이었는데 퇴직하셨다.

이 젊은 의사도 나한테 주의를 줬다.

그렇게 진이 빠지게 하면 너무 힘드니까 본인 삶을 살라고 한다.


도대체 내 삶을 살라는 게 뭔가.

물론 모르는 바 아니다. 내 시간을 갖고, 나를 가꾸고, 외출도 하고 그러라는 거다.

그렇게 할 형편이면 뭐가 고민이겠는가. 부부라는 게, 결혼이라는 게, 하고 보니 그렇다.

나만의 삶, 나만의 세계에서 둘의 삶. 둘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둘이면서 하나인. 공통의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진정한 내 삶도 살 수 있었다.


나는 결혼생활 내내 내 삶을 잘 살았다.

내 삶을 살 수 있도록 남편은 힘껏 애써주었다. 활짝 꽃필수 있는 건 꽃받침이 밀어 올려 주기 때문이라지.

남편은 내가 꽃 필수 있게 전방위로 노력했다. 뿌리, 이파리, 지지대 역할 다 해 준 사람이었다.

내가 우아한 백조라면, 그것은 물밑에서 정신없이 발장구를 쳤던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내 삶을 살던 때도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남편한테 독박돌봄으로 올인하는지도 모른다.

의도 한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내 삶을 살았다지만 남편이 내 세계이기도 했다.

남편의 초로기 알츠하이머 진단. 내 세계가 무너졌다. 나는 평생 모은 책을 다 내다 버렸다.

책으로 가득 찼던 거실이 빈 집처럼 휑했다. 책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 말을 잃었는데. 남의 말 모음들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우리의 세계가 무너져 가는데, 또 다른 내 세계인들 멀쩡할 수 있을까?

희미해져 가는 남편의 세계. 더 이상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다. 그 앞에서 내 생활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시인 김수영은, 생활이 모든 것을 제압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애정처럼 솟아오른 놈을 찾으라고 한다. 하지만, 남편의 치매.

그것이야말로 결혼 생활 모든 것을 제압했다.


겨우. 내 속의 얘기를 꺼내는 게, 그나마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나는 억지로 말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 이것이 나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금으로서는 그렇다.

칼럼도 르포도 아니다.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극복 수기도 아니다. 그저 내 생활글이다.


이 생활글이 나를 살릴지, 살기 위해 웃음을 찾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젊은 시절.

실연당해 굶고 있는 친구한테 "먹어! 먹으란 말이야!"

화를 냈듯이.

이번에는.

나도 나한테 권하는 것이다.

억지로라도 떠먹이듯, 강제로 입을 벌리는 것이다.


말해! 말하란 말이얏! 그래야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