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함에 대한 이해

때로는 찍어 먹어 봐야 안다.

by 채송화

남편은 치매다. 치매는 과정이 있다. 그 과정은 밟는 수순도 따로 있다. 다양하게 있다. 한 사람을 아는 건 우주를 아는 것이라 했던가. 치매를 겪는 것도 다를 바 없다 싶다. 한 사람의 치매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병의 특징이 그렇기 때문이다. 원인이 수십 일지 수백일지 수만일지 아니면 원인이 있기나 한 건지 원인이 너무 많아 알 수 없다고 말해야 할지, 그런 질병. 알츠하이머병. 인간의 막다른 길. 치매.


치매가 진행되며 할 일 가운데 하나가 지문을 등록하는 일이다. 남편의 지문을 등록하던 날, 소위 말하는 정서적 탈진이 왔다. 치매안심센터 건물에 정신건강복지센터도 같이 있다.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내 안의 답답함을 토로하고 싶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한테 털어놓듯 그렇게 내 얘기를 하고 싶었다.


갓난아기 피부처럼 솜털이 보송보송한 여학생 같은 사람이 내 앞에 앉았다. 배가 고파 허겁지겁 일단 먹고 보는 사람처럼 나는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냈다. 허기가 달래졌는지 울다가 주변을 봤다. 그 상황이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게 어울리는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상담실 공간이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창고로 쓰고 있는 공간인 것 같았다.


그렇게 허름한 공간에서 내 고통까지 허름하게 취급되는 것 같았다. 후회스러웠다. 공간이 주는 아늑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극적인 깨달음이라니. 그때 비로소 알았다. 왜 상담할 때 소파에 반쯤 누워 얘기하는 장면이 영화에 나오는지 알 것 같았다.


천만다행. 아직까지 우리는 노숙자는 아니다. 돌아갈 누울 곳이 있다는 게 새삼 기적 같다.

지친 몸과 마음을 눕힌다. 소파에 누워 보던 드라마를 튼다.

보고 또 보는 내 애착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배경음악처럼 틀어 놓는다.


기훈의 꼬장 부리는 장면이 그제서야 십분 이해가 되는 것이다.

형수가 바람이 났고, 그런 형의 처지를 식당에서, 하필 술안주 메뉴마저 초라하기 그지없는 밥상 앞에서,

칸느에서 상을 타 봤던 영화감독의 예민함이, 행패로 폭발한 그 순간이.

초라함이 무엇인지 겪어보고 나서야 너무나 깊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무얼 보고 왔느냐에 따라 보고 있는 것에 대한 이해도가 이렇게 또 한 겹 깊어지는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