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뭇국을 먹으면서

사는 게 참 사소한 건가 보다

by 채송화

남편이 치매다 보니 모든 것을 신경 써야 한다.

식단도 마찬가지다.

소고기 뭇국을 끓이고 돼지고기 목살조림을 한다.

계란을 삶고 연어를 찐다. 버터와 영양제와 치매약과 물 한잔을 준비한다.

식탁을 차리면 남편은 당연한 듯 와 앉아 먹는다.

다 먹은 남편은 양치를 하고 헬스장에 간다.


열한 시. 두 시간 정도 혼자 있는 시간이다.

찬 밥 한 술 국물에 말아먹는다.

고기는 뜨지 않는다. 좋아하지도 않지만, 좋아한다 쳐도 남편 몫이다.

돼지고기는 굽거나 찌기만 하니 가끔 입맛 돌라고 외간장에 졸였다.

내가 좀 먹으려고 물 많고 시원한 가을무를 조금 삐져 넣었다.

투명하게 조려진 무가 먹음직스러웠다.


국에 만 밥과 김치를 먹다, 남편이 남긴 고기를 보았다.

무가 없다.

"미운 짓만 골라하네" 미운 마음이 없는 무에 꽂힌다.


고기 위주로 무조건 단백질 위주로 먹어야 한다고 말하고, 빨래 널고 어쩌고 했었다.

그 잠깐 사이에 무만 골라 먹었나 보다.

흉년에 애들은 배 터져 죽고 부모는 배곯아 죽는다더니,

이왕 먹을 거면, 고기로 배불렀으면 싶은 것이다.

무 한 조각 먹느니 고기 한 점 더 먹었으면 싶은 것이다.

그런데 애초의 내 마음은 온데간데 쏙 빠지고, 미운 맘이 앞장서서 뛰쳐나오는 것이다.

치사하게 무 한 조각에 말이다.




치매는 그렇다. 청개구리 같이 말썽만 피우는 못된 애가 되느냐,

비교적 순하고 말 잘 듣는 애가 되느냐.

그 차이다. 남편은 순하다.

그런데 은근히 고집불통에 사람 속 터지게 하는 때가 왕왕 있다.


그래서 뭐든지 하나하나 일거수일투족 계획을 짜고 실천하게 한다.

그러니 고단 한 건 남편 보다 나인 것만 같다.

그 뒤처리를 아니 모든 것을 내가 계획해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잠시 자리 비운 사이 저지레 하는 애처럼 변한 남편.

한 눈을 팔 수가 없게 한다.


이럴 때 나는 내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내 참모습은 무얼까. 내 고유성은 무얼까.


나는 T라는데,

사소한 무조림 하나에 꽂혀서 남편 치매까지 들먹이며 뻗어 나갈 때는 영락없는 F다.

계획하는 것도 나고, 자투리에 사로 잡히는 것도 나다.


느긋하게 가을 햇살까지 들어와 준 따뜻한 거실에서 아침 먹다 말고,

무조각 하나에 이렇게까지 한숨 내 쉴 일인가.


인간이 다 이렇구나 싶다. 가시 박히니 따가운 거겠지.

아프니 아프다고 하겠지.


어느 날 뭇국을 먹으면서, 내 인생이 참 사소하구나 싶었다.

무거운 돌봄의 무게를 고 작은 무조각에 싣겠다고 용을 쓰는 내가 참...

그만큼 절박한 것이겠지 싶다.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리적 힘이 절실한 거겠지 싶다.



이 무게를 업고 있는 무조각이여

나를 거뜬히 업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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