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접을 때도 반
커튼으로 보여주는 사랑의 표현, 영화 <만약에 우리>
좋은 소설이 그렇듯이 좋은 영화는 첫 장면부터 심상찮다. 태풍의 이름을 빗대어 앞으로 진행될 이 사랑이 얼마나 폭풍 같을지 예고한다. 예쁜 이름이지만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태풍의 위력은 그 자리에 꼼짝없이 사람을 가두어 놓기도 한다. 첫사랑도 그렇다.
은호와 정원은 첫 만남에 호감이 있지만 서로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은 없다. 친구라는 명목하에 유지되던 거리가 한순간 좁혀지고 둘은 연인이 된다. 그 사랑의 매개체가 '커튼'이다. 햇빛조차 손바닥만큼만 허락되는 가난한 현실이, 정원의 사랑을 가로막고 있을 때, 은호가 같이 살자고 제안한다.
"이거 너 다 줄게!"
은호는 커튼을 열어젖힌다. 정원의 얼굴 가득 햇살이 쏟아진다. 그렇게 첫사랑의 1막이 시작된다.
인생에서 가장 달고 쓴,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랑이 은호의 자취방에서 시작된다.
시작하는 연인들은 끝을 생각하지 않는다. 시작과 동시에 끝날수도 있다는 예고를 감지하지 못한다.
은호는 왜 커튼을 한쪽만 치고 젖힐까.
한 집에 같이 사는 두 청춘의 삶은 나아질 기미 없는 현실에 지쳐간다. 커튼을 치는 은호의 손.
너에게 다 주겠다며 열어젖히던 커튼은 그마저도 매몰차게 차단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은호에 의해서 빛은 가려지고 정원은 떠난다.
어쩌면 정원은 그거 하나 보고 같이 살았을 것이다. 그 햇빛 한 줄기.
은호가 열어젖힌 커튼은, 정원의 얼굴로 햇빛을 쏟아지게 했고 그것은 정원의 희망이 되었다.
다시 은호가 커튼을 닫았을 때 정원의 미래도 막혀버린 것이다.
정원은 떠났다. 아차하고 후회하는 순간의 폭발력은 빗속을 전력질주하는 은호를 통해 표현된다.
지하철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 듯 뛰어 내려오고 마침내 은호는 정원을 마주 본다.
하지만 그 순간, 발은 마음보다 먼저 뒤로 빠진다. 다시 또 반발짝.
정원이 주는 일말의 기회. 은호가 놓치는 마지막 순간. 그렇게 헤어졌다. 2막이 끝났다.
폭풍우 치던 밤, 십 년 만에 만난 옛사랑.
현실과 달리 영화는 성공한 두 사람의 현재를 보여준다. 3막. 그리고 후기.
추억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그대로 앉아 있었다. 노래에 발목이 잡혔다.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영화의 끝은 현재를 보여주지만, 노래를 듣는 순간 오히려 나는 과거로 갔다. 싸이월드 플레이리스트에 있던 임현정의 노래. 그리고 우리의 신혼시절.
영화와 현실의 아이러니가 충분히 뒷맛까지 재미있게 해 준다. 영화에서 싸이월드는 사랑의 시작과 끝의 오브제 역할을 충분히 한다. 싸이월드로 찾아냈던 정원이 싸이월드 폐쇄로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는 인연의 아이러니. 그리고 가장 중요한 커튼. 나는 왜 커튼에 사로 잡혔나.
은호는 햇빛을 갈망하는 정원을 위해 호기롭게 커튼을 열어젖힌다. 하지만 나는 이내 실망했다.
나 같으면 커튼을 양쪽 다 열었을 것이다. 아니 커튼자체를 떼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반쪽 커튼이라니?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게임 공모전에서 계속되는 실패로 은호는 점점 무너진다. 급기야 은호는 정원에게 비췄던 햇빛마저 차단하고야 만다. 그런데 그때도 역시 커튼은 반쪽만 친다. 중요한 건, 이 반쪽 커튼을 침으로써 늘 가려졌던 원래 반쪽커튼과 합쳐 온전한 두 짝의 커튼이 된다. 온전한 한 쌍의 커튼은 완벽하게 빛을 차단한다.
한 쌍의 커튼이 만나자, 한 쌍의 연인은 헤어지는 모양새라니.
그런데, 은호의 마음은 언제나 반쪽만 작용했던 것 같다. 반쪽만 작용했음에도 결과적으로 온전한 한쌍이 되었고 그 반쪽은 다시 연인과 결별로 이어진다. 이것이 첫사랑의 미숙함일 것이다.
마음을 줄 때도 반 마음을 접을 때도 반. 반은 어딨니 도대체! 심지어 놓아줄 때도 반 발짝만 뒤로 빼다니.
남이 주는 햇볕은 내 것이 아니다. 내 빛은 내가 쟁취하자.
어찌 보면, 너무나 절실할 때 먹었던 물 한 모금은 그걸로 다 된 걸 수도 있다. 정원한테 반쪽 창의 햇살은 그 시절 갈증을 충분히 적셔준 물 한 모금이었을 수도 있겠다. 커튼 반쪽은 갈증이었을까 충분한 수분이었을까. 그것이야말로 사랑에 관한 해석의 여지로 남겨둔 영역일 것이다.
재밌는 건 내 또래 대부분은, "나도 그때 헤어졌으면 성공했을 텐데" "그때 헤어졌어야 하는데 괜히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내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