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새해 떡국
새해 아침,
남편이 주민센터 떡국 나눔 행사에 갔다.
해마다 주민센터 앞마당에서 떡국을 끓인다.
남편은 늘 가서 먹고 온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자고 있으면,
기분 좋은 찬기운과 함께 따뜻한 떡국을 내 코 앞에 갖다 댄다.
그 당연한 연례행사가 영원할 줄 알았다.
올해는... 올해도... 하면서 가슴 졸이게 될 줄 몰랐다.
놀랍게도 새해 아침 남편이 덕담을 한다.
"우리 올 한 해도 건강하고 복 많이 받자."
"어... 그러자."
고마운 마음에 얼른 답을 했다.
우리는 서로 안아주며 어깨를 토닥였다.
앞산에서 해가 뜨려고 부옇게 빛살이 퍼졌다.
남편은 나갈 차림이었다.
떡국 나눔 행사에 다녀온다고 했다.
나는 집에 있겠다고 했다.
소파에 누워 2025년 마지막 밤의 고독을 떠올렸다.
부부가 오붓하게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한 해 잘 보냈고
새해 또한 잘 맞이하자는 덕담도 없는 그런 쓸쓸한 일 년의 마지막 밤.
앞으로 남은 나날들 나한테는 일상의 소소함은 없겠지 싶은 그런 밤이었다.
그런데 새해 첫 아침에 남편이 먼저 덕담을 건네는 것이다.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했고 바라지도 않았다.
기적 같았다. 그 평범한 덕담이 이렇듯 소중하고 고맙다니 말이다.
고독하고 쓸쓸해서 한 없이 무거웠던 마음이 풀렸다.
따뜻한 말 한마디의 감동만으로도 충분했는데
내친김에 남편은 더 큰 기쁨까지 선사했다.
떡국이었다.
떡국에 김치와 수정과까지 챙겨서 가져온 것이다.
식기 전에 나를 먹이겠다고 그걸 양손에 모아 들고
쏟을까 봐 빨리 뛰지도 못했을 테고,
식을까 봐 걸어오지도 않았을, 아내를 향한 그 따뜻한 정성.
남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새해 최고의 선물이었다.
지난 3년,
남편의 알츠하이머로 인해 눈물도 많이 흘렸다. 그런데,
역시나 눈물은 아래로 흘러도 숟가락은 위로 올라간다.
남편 밥은 누워서 먹는다 했던가.
서서 먹는다는 딸밥보다도,
앉아서 먹는다는 아들밥 보다도
가장 만만한 사이 바로 남편이다.
아직까지 그래도 크리스마스 카드도 받았고,
해마다 했던 남편의 주민센터 떡국 배달도 어김없이 받았다.
아직까지는 잘 버티고 있다. 잘 유지하고 있다.
이 상태를 유지하려고 남편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나 또한 얼마나 기를 썼는지, 하늘이 알고 땅은 알겠지 싶다.
사회로부터 가족으로부터 물리적으로 소외당하고
정서적으로 고립되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올 한 해 작년과 마찬가지 일상으로 우리는 진입하고 있다.
화도 냈고 울기도 했다.
증오도 했고 덕담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일마저도 글로 쓴다는 것이다. 남편도 나도.
어김없이 책을 읽고, 손을 잡고, 산책을 하고, 노래를 한다.
그러면 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