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안의 자연 상태

설득 이전에 존재하는 힘과 이유

by 남상석

시선이 바깥에서 안으로 돌아오는 순간, 질서는 더 이상 나 밖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제도, 시장과 조직을 움직이던 힘과 정당성의 구조는 한 사람의 내부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문명의 질서를 떠받치던 다층의 정당성은 이제 내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묻게 된다.

사람은 문명의 한가운데에서 살아가지만, 그 내부가 언제나 이유의 질서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자연의 상태가 남아 있다. 이유보다 먼저 움직이는 충동과 위압과 위협의 감각, 충돌을 피하거나 먼저 나아가려는 본능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것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만 보이지 않게 내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자연의 질서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문명은 자연을 밀어내고 세워진 세계가 아니라, 자연 위에 겹쳐진 또 하나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안에는 멈추지 않는 자연의 힘과, 그 힘을 붙잡아 두는 이유와 설명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러나 사람은 충동에 따라 곧바로 움직이는 존재로 머물지 않는다. 즉각적인 행동을 미루고 잠시 멈추는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또 다른 질서가 모습을 드러난다. 그 지연 속에서 사람은 힘의 존재가 아니라, 이유와 설명을 통과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내부를 더 들여다보면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진다. 그곳에는 자연의 질서만이 아니라 문명의 질서 또한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충동과 두려움, 욕망이 먼저 움직이지만 그 움직임은 언제나 어떤 이유와 마주친다. 그래서 내 안의 질서는 힘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곳에서도 힘은 여러 정당성의 승인 속을 통과할 때에만 비로소 행동이 된다.

사람은 하나의 작은 문명이다.

문명이 힘을 제거하지 않고 그 힘을 이유와 정당성 속에 머물게 하듯, 사람의 내부 또한 충동을 완전히 지우지 않는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도 자연의 힘과 문명의 질서는 서로 겹쳐진 채 함께 존재한다.

그러나 사람의 질서는 혼자 있는 자리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타인의 등장 앞에서 내부의 균형은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자연의 힘과 문명의 질서가 함께 놓인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하기 때문이다.

타인은 또 하나의 힘으로 다가온다. 그의 말과 시선은 이미 내려 두었던 판단을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혼자 있을 때 충분해 보였던 이유도 타인의 존재 앞에서는 다시 정당성의 시험대 위에 놓인다.

가까운 사람과 마주 앉아 있지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그 짧은 망설임 속에서 마음은 여러 방향으로 동시에 움직인다. 충동은 더 빠르게 나아가려 하고, 이유는 그 속도를 붙잡으려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람은 다시 선택 앞에 선다. 힘에 가까운 방식으로 밀어붙일 것인가, 아니면 이유를 따라 다른 길을 찾을 것인가. 그러나 대부분의 관계는 곧장 충돌로 나아가지 않는다.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강제도 침묵도 아닌 다른 방식을 찾으려 한다.

이 긴장이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말을 시작한다.


질문들

내 안에서 이유보다 먼저 움직이는 힘은 언제 드러나는가. 그 순간 나는 그것을 억누르려 하는가, 정당화하려 하는가, 아니면 다른 이유를 통해 다시 설명하려 하는가.

한 사람의 내부가 하나의 작은 문명이라면, 그 질서는 무엇으로 유지되는가. 두려움인가, 습관인가, 관계인가, 아니면 스스로 받아들인 이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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