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사람의 사회를 새로운 조건 위에 놓았다. 민주주의는 권력이 설명을 통과해야 유지되는 구조를 만들었고, 자본주의는 관계가 동의를 통과해야 성립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 변화는 단지 정치와 경제 제도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의 삶의 방식 자체를 바꾸었다. 사람은 이제 배우자와 직업, 협력과 거래의 관계까지 점점 더 많은 선택을 스스로 결정하게 되었다. 삶의 중요한 방향들이 더 이상 전통이나 공동체에 의해 미리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판단과 선택을 통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선택이 개인에게 이동하면서 관계의 형성뿐 아니라 그 책임 또한 개인에게 돌아왔다. 과거에는 관계의 유지와 갈등의 해결이 개인에게 전적으로 맡겨지지 않았다. 가족과 공동체, 전통과 제도가 그 부담을 함께 나누었다. 문제가 생기면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나 공동체가 해결 과정에 함께 관여했다. 명령이 내려졌고, 위계가 작동했으며, 필요하다면 강제가 사용되었다. 질서는 설명을 통과하지 않아도 유지될 수 있었고, 관계 또한 동의 없이도 지속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선택을 중심에 둔 사회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점점 더 제한된다. 권력은 설명을 요구받고, 관계는 동의를 요구받는다. 설명은 언제든지 거부될 수 있고, 동의 또한 언제든지 철회될 수 있다. 이 조건 속에서 질서는 더 이상 자동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선택 위에서 형성된 관계는 스스로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선택의 확대는 자유의 확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만들어 낸다.
이때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설명과 동의 위에서 형성된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가. 강제로 관계를 유지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관계가 저절로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결국 서로의 판단을 이해시키고 동의를 얻으려 한다.
시장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선택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오늘날 기업은 단순히 제품을 내놓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 이 제품이 더 좋은지 설명하고 사람들의 판단을 설득하려 한다. 시장 역시 점점 더 설명과 설득의 과정을 통과한다.
이 글은 설득을 미덕이나 대화의 기술로 다루지 않는다. 설득을 사람의 사회가 작동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이해한다. 설득을 미덕이나 태도로 이해하면 그것은 개인의 성품이나 태도의 문제로 축소되기 쉽다. 설득을 개인의 말의 기술로 보면 왜 설득이 사회 질서에 어떻게 중요한지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설득을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설득은 사람의 사회를 지속시키기 위해 작동하는 질서의 한 방식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사람은 왜 어떤 말에는 마음을 열고 어떤 말에는 등을 돌리는가. 설득은 어떤 조건에서 가능해지는가. 다음 장부터 이 질문을 따라, 사람의 사회에서 설득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