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할머니를 죽도로 미워하셨다. '국민 학교만 보내줬어도... 아니 입학만 시켜서 1학년이라도 마칠 수 있었다면, 한글 떼고 사람 사는 것처럼 살았을 텐데...' 할머니가 위암으로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도 증오하고 또 증오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살림살이 때문에, 엄마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의 일을 돕고 집안일을 하셨다고 했다. 열 살쯤부터는 남의 집에 식모로 보내져, 밥과 설거지 청소를 지겹도록 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스무 살이 될 무렵, 할머니 댁에 하숙을 하던 광부이셨던 나의 아버지에게 보내졌다고 했다.
엄마는 그 시절 내내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고 했다.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엄마를 두고, 남동생 둘을 악착같이 학교에 보내려는 할머니를 그때부터 증오했다고 했다.
내가 대여섯 살 때쯤인가... 어렴풋이 그때, 엄마가 글을 못 읽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던 것 같다. 우리 집에는 책이 거의 없었다. 아마 동화책 몇 권에 어디서 얻은 백과사전 정도가 다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난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줘야 되는지 몰랐었다. 엄마는 어쩔수 없어 그랬을 것이고, 아버지는 회사일로 항상 바빴기 때문에 그러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탄광에서 3교대 근무를 하셨는데 매일 갑반, 을반, 병반을 교대하시느라 내가 깨어있을 때 얼굴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았다.
나는 초, 중학교 내내 공부를 잘했다. 그리고 지역 명문 비평준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같은 학년 약 250명 중 100등 안에만 들면 무조건 SKY를 갈 수 있을 정도였으니, 그 학교에 아들이 입학만 해도 부모로서는 그 지역 어디든지 어깨 펴고 다닐 수 있는 그런 학교였다.
까막눈인 엄마와 광부셨던 아버지는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우셨을까? 당신들은 감히 상상도 못 해볼 일들을 내가 알아서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셨을 테니까 말이다. 엄마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저녁밥을 갓 지어서, 학교에 도시락을 챙겨 오셨다. 버스를 타고 1시간 이상을 왕복해야 하는 먼 길이었지만, 추운 겨울이든, 더운 여름이든 따뜻한 밥 한술 떠 먹이는 것이, 당신의 큰 낙이자 행복이었다고 하셨다. 당시 많은 엄마들이 그렇게 했었는데, 아마도 도시락을 싸서 학교로 가는 그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엄마들은 뿌듯하셨을 것이다.
엄마는 여전히 은행을 혼자 못 가신다. 필요서류에 인적사항을 대충은 적으시지만, 누가 봐도 보통의 글씨체는 아니니까 말이다. 엄마는 절에 가서 그렇게 법경을 읽으시지만, 혹시 안 읽어본 경전을 내밀까 봐 두려워하신다. 더듬더듬 읽는 게 탄로 날 까봐 말이다.
한글을 깨치기 위한 엄마의 노력은 적지 않았다. 내가 자라면서 가르쳐드려 보기도 하고, 성인들을 위한 '한글학교'도 몇 년은 다니셨을 것이다. 하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교육을 받지 못한 엄마는 상식 밖의 언행을 자주 하셨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 및 타인과의 상호작용, 남을 위하거나,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방법을 잘 모르신다. 물론 자신의 타고난 기질도 있겠지만, 사회와 교육으로 만들어졌어야 하는 인성이 덜 된 상태의 어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직 나의 가족, 자식, 먹고사는 일... 등 만을 우선시하는 분이다. 가끔, 그런 행동 창피하기도 했지만, 그런 엄마의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는 그렇게 키워졌다.
그런 일들이 상식이하의 말과 행동이라는 것을 나는 결혼 후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돌이킬 수 만있다면, 돌이키고 싶은 순간들이 많다. 엄마의 행동에 대해서, 내가 이렇게 또는 저렇게 했어야 했는데... 하고 말이다. 그런 것들이 또, 고부간의 갈등의 씨앗이 되었겠지.
정말, 엄마 인생에서 그 1년, 딱 국민학교 1년만 다시 주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긴 인생에서 1년은 벌거 아니라고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지만, 엄마에게 그 1년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 년이었다.
엄마 스스로도 항상 엄마의 인생을 바꾸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아마도 그러셨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런 자신의 인생을 만족하지는 못하겠지.
결국 우리는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자신의 인생을 자식이 대신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부모에게 그런 자랑스러웠던 자식이었지만, 나는 지금 내 인생을 살아가며 엄마, 아버지와는 그렇게 멀어지고 있다.
얼마 전,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다시 읽었다. 갑자기 두려워졌다. 아직 나이가 많지도 않으시지만, 치매를 앓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어느 순간 내 깊이 자리 잡았다. 평생 교육을 못 받았다는 배경, 특별한 일이 없으며, 잔걱정이 많고, 다른 두뇌활동을 하지 않는 점 등, 치매인자를 가질 환경이 다른 노인들에 비해 높다고 판단된다.
어머니의 인생이 좀 더 행복하고 즐거우셨으면 좋겠다.
걱정이다. 그 걱정이 엄마를 위한 걱정인지 나에 대한 걱정인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