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이 주는 편안함
처음 떠났을 때는 비행기표, 숙소, 영어학원만 정해두고 나머지는 “가서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출발했었다.
그때의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아무 생각 없이 떠나 그저 푹 쉬다 오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몸도 마음도 한계였는지, 도착 다음 날부터 물갈이에 시달렸고 나을 만하니 이번에는 지독한 감기에 걸려 또 일주일을 고생했다. 그렇게 첫 2주는 ‘몽키아라’라는 동네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한 채 지나갔다.
2주가 지나고서야 정신이 조금 돌아왔고, 그제야 급하게 쿠알라룸푸르에서 할 만한 것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KL은 아이와 함께 할 것들이 넘쳐나는 도시였고, 남은 2주로는 충분히 즐기기엔 아쉬움이 남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마음 한편이 계속 그 도시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결국 두 번째 한 달 살기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에도 작년에 머물렀던 숙소와 학원을 그대로 선택했다.
아이에게 익숙했고, 나에게도 여러모로 수월했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엄마도 2주 동안 함께하게 되어, 작년에 급하게 준비하느라 가지 못했던 싱가포르 여행도
한 달 살기 전에 여유 있게 다녀올 수 있었다.
쿠알라룸푸르에 대한 정보는 이미 충분했기에 싱가포르 여행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고,
그렇게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낸 뒤 KL에 도착했을 때 익숙한 곳에 돌아왔다는 편안함이 자연스럽게 밀려왔다.
두 번째 한 달은 확실히 ‘삶’에 가까웠다.
일부러 찾지 않아도 어디에서 장을 보면 되는지, 어떤 음식이 잘 맞는지, 어떤 이동수단이 편한지,
아이가 체험할 만한 곳은 어디인지.
작년에 쌓인 정보들이 자연스럽게 도움이 되었다.
여전히 P 성향이라 완벽한 계획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날씨에 따라, 또 그날의 기분에 따라 하루의 흐름을 만들어가며 지냈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 그리고 나를 위한 시간까지.
이번 한 달은 이전보다 훨씬 균형 있게 흘러갔다.
거창한 목표보다 ‘오늘 하루를 즐겁게 지내기’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 점이 나에게 더 큰 의미로 남았다.
이 기록은 P 성향인 내가 아이와 함께, 때로는 엄마와 함께
쿠알라룸푸르에서 한 달을 어떻게 살아냈는지 담담히 적어 내려간 이야기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참고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연재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