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임팩트를 경험하고, 일상의 행복을 느끼며,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것들
당시 지인은 미쳤다고, 왜 굳이 지금이냐라고 했다. 지금이 기횐데 지금 가면 바보라고 했다. 지금 중국 떠나면 후회 없냐고 했다.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여기 나가서 네가 하고자 하는 사회 가치 창출일 하면서, 고생할게 눈에 보여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다시 생각하라고 했다. 지금 나이가 여자에게는 제일 값어치가 높을 때다, 앞으로 결혼하고 애 낳으면 사회에서 값어치가 떨어지니, 인생에 피크니, 더 돈 벌고 가라고 했다...
그들은 몰랐다.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과 오늘 당장 내가 일하는 곳은 정. 반. 대의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것을. (한 예로, 기후변화에 뜻을 갖고 사회운동을 하며, 직업은 이커머스 종사자. 불필요한 소비를 촉진하여 예쁜 쓰레기를 사도록 권장, 플라스틱&상자 포장, 운송 등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에 기여. 양두구육. 딜레마.)
또, 그들은 몰랐다. 함께 새벽까지 일해서 매출 KPI를 이루었을 때, 다 함께 북 치고 (참고로 중국 회사의 문화. 진짜 북침.) 환호를 지를 때, 나는 아무에게도 말 못 한 채, 마음속으로 죄짓는 기분을 갖고 자기혐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또, 그들은 몰랐다. 색깔이 다른, 회사와 어울리지 않는 동료가 되고 싶지 않아, 그들에게 내가 갖고 있는 가치를 숨겼다는 것을. 그렇게 열정을 느끼던 SDGs 관련 커뮤니티 활동도, like minded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몸과 마음을 돌보는 것도 멈춘 채, 그렇게 세상과 단절한 채, 어느 순간부터 일에만 집착하게 되었다. 그렇게 라도 최소한 나 자신에게 "거봐. 나 잘하고 있어. 대신 많이 배우고 성장하고 있어."라는 excuse를, 아니 자기 최면을 하기 위해 집착했다. 부들부들 꽉 쥐고, 숨을 헐떡 거리며, 내가 나 자신의 목을 쥐어짜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집중 안 하면 점점 커져가는 딜레마를 알아차릴 시간과 여유가 생겨 우울감이 심해져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아서였다. 그 후로 조금씩, 프로젝트를 위한 일 적 언어 이외에는 사람들과 말도 하기 싫어졌고, 혼자 있고 싶어 졌고, 점심시간에 오가는 의미 없는 대화 (주로 부동산, 주식투자 또는 다른 동료 value 없다고 잡아 뜯는 이야기) 들어주기보다 조용히 혼자 먹고 싶었다. 마음속은 나 자신에 대한 '화'로 가득했다.
나는 소리 없는 전쟁터에서 그들과 경쟁하는 게 무섭지 않았다. 나는 밥 먹듯 하는 야근이 무섭지 않았다. 업무량과 이상적인 목표가 무섭지 않았다. 내가 정말 무서웠던 것은 이렇게 내 인생 가치관에서 멀어지고, 꿈에서 멀어지고, 사회가 만든 "성공"이라는 틀 안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내 젊음과 열정 그리고 가치관을 등지고, 열정 없이 동. 태. 눈을 갖고 적당히 젊음을 보내고, 적당히 돈을 벌어, 적당히 합리화하면서 그렇게 서서히 나 자신을 잃는 게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아무도 몰랐다. 그때의 나조차 몰랐다. 그것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우울감과 무기력감, 번아웃이었다는 것을. 카운슬링을 받았고, 나의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하며, 펑펑 울고 첫 세션을 마쳤다. 느꼈다. 나는 지금 위험하다고, 이제라도 잘못된 내 삶의 방향을 다시 바로 잡아야겠다고 말이다.
오늘의 나는 너무 행복하다. 알람 없이 자연히 아침 일찍 일어나고, 감사하며 웃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새로운 나라와 문화에 적응이 될 즈음, 가방을 싸서 다시 새로운 곳으로 떠날 때의 아쉬움과 설렘을 느끼며, 평생 내가 해보지 못한 것들을 경험한다. 천천히 걷는 아름다움을 배웠으며, 명상을 수련하며 오늘에 집중하며, 이전의 나로 서서히 몸과 마음에 다시 근육을 더해가고 있다. 매 한 끼 그 나라의 전통음식에 감탄하고 다시 음식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세계 여러 산을 등산하며, 공원을 걸으며, 계곡을 따라 걸으며, 바다에서 수영을 하며, 사막에서 누워 별을 보며, 빙하를 보며, 길에 아름답게 핀 꽃을 보며 경이로운 자연에 감탄했다. 여행을 하며, 나와 비슷한 가치와 인생에 방향성을 갖고, social impact을 위해 반짝이는 눈을 갖고 (동태눈이 아닌) 의미 있는 일에 의미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는 세계에 정말 많은 체인지 메이커들을 만나며 긍정적인 에너지와 서로의 꿈을 공유했다.
나는 21살에 작성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29살에 세계 일주의 길에 서기 위해, 2022년 7월 14일 나는 지난 8년간 쌓은 중국 경험,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커리어, 억대 연봉의 직장, 편안한 삶의 퀄리티와 보장된 삶, 대기업의 보호막, 부모님의 기대, 불안, 에고, 모든 것을 뒤로하고, 8킬로도 안 되는 작은 배낭을 들고 여행길에 서는 내 인생에 있어 큰 결정을 내렸다. 나의 30번째 생일인 7월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여정을 시작으로, 지난 272일에 걸쳐 (약 9개월) 5 대륙, 39개 국을 여행하며 직접 경험하고,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공유하고, 번아웃 극복을 넘어 어떻게 인생을 reshaping 했는지 말해 보고자 한다.
MY TRAVEL RECAP
여행길에서 경험하고 느끼고 배운 것들 (Experience, Feel, Learn)
5 대륙을 여행을 하면서 더 나은 커뮤니티, 사회 그리고 세계를 만들기 위해 주어진 자리에서 임팩트를 만들고 있는 체인지 메이커들을 만나며 인터뷰를 했다. 그들이 뿜어내는 긍정 에너지와 희망적인 메시지는 정말 파워풀했고 그들의 스토리에 단 한 번도 실망하거나, 내 눈이 반짝이지 않은 적이 없다. 그들과 이야기를 하며 다시 한번 느꼈다, 나는 이곳 세상의 사람이다 I belong here! 그들의 가슴벅찬 스토리들을 나 혼자 알기엔 너무 아까워, 한국에 젊은이들에게 더 공유하기 위해, 브런치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앞으로도 시간이 허락하는한 계속 이어가보고자 한다.
아프리카 소셜 엔터프라이즈에서 한 달간 글로벌 임팩트 파트너십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너무 많은 것을 배웠다. 1) 내 강점인 글로벌 파트너십과 소셜임팩트라는 value를 합치니, 출근하는 매일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고, 여러 아이디어들이 막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이 길이 맞다는 것을 확신하는 기회였다. 2) 소셜 엔터프라이즈 업계 사람들이라고 모두가 더 나은 커뮤니티와, 조국, 세계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달이 월급을 받으면서 생존을 위해 일하는 사람도 있고, 그중 예전의 나처럼 "동태눈"을 갖고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 음이 있다면 양이 있듯, 선이 있다면 악이 있듯, 빛이 있다면 그림자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환상을 내려놓고 업계에 들어가자. 3)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인터뷰한 전 세계 체인지 메이커들의 공통점은 underpaid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한 번은 직원 중 한 명이 자기는 돈을 아끼기 위해 가끔 런치를 스킵하기도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소셜엔터프라이즈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좋지만, 직원들의 밸류만큼 인정해 주는 곳에서 (그런 곳이 없다면 내가 만들어서라도) 일하여, 미래의 후배 양성을 위해서라도, 업계가 더 건강히 자리 잡는데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4) 기업의 대체 불가능한 셀링포인트 (또는 기술력)은 정말 중요하다. 내가 갖고 있는 프로덕트 또는 기술력에 내 자체가 자신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파트너십 비디를 잘해서 엄청난 임팩트를 낼 수 있는 잠재적인 파트너를 테이블에 끌어와 앉혀도, 셀링포인트 또는 기술력이 없다면, 그들은 매너 있게 악수하고 손 털고 뒤돌면 끝이다.
또 한 번의 AHA MOMENT! 주말 아침, 케냐 카루라 파크에서 혼자 조깅을 하며 나 자신에게 물었다. '과연 오늘의 나는 나의 가치관과 align 하지 않는 기업에서 제안이 들어왔을 때, 연봉 얼마를 받아야 내 value를 포기하고 그들의 오퍼를 승낙할 수 있을까?' 정답은 쉽게 나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고자 하는 대기업의 글로벌 파트너십 업무에는 그들이 아무리 고액의 연봉을, 2억을 줘도, 아니 10억을 줘도 가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인생의 방향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오늘, 지금 이 순간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은(또는 의사 결정에 있어서 판단하는 잣대) 오늘 내게 주어진 임무와 KPI가 SDGs와 social impact, 또는 더 나은 커뮤니티, 사회, 세계를 만드는 데 기여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고액 연봉의 오퍼도 거절할 것이다. 내게 주어진 능력인 글로벌 파트너십을 통해 최대의 임팩트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가치관이 얼라인된 프로젝트에, 단체에, 기관에, 더 이상 없다면 내가 만들어서 소셜임팩트 가치 창출을 하는 일에 집중할 것이다.
파나마 언니 집에서 머물며, 매일 아침 일어나 또띠(언니네 강아지)와 물놀이를 했는데, 하루는 아침 일찍 눈 뜨자마자 신나서, 또띠랑 놀아주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눈떠서 이렇게 크게 웃어봤던 게 언제지라고. 감사했다, 맞다. 행복이 이렇게 간단했지!
여행을 시작하며, 8년간 해온 베지테리언을 중단했다. 페루의 세비체, 케냐의 야마초마, 터키의 바클라마, 이탈리아의 파스타와 젤라토, 포르투갈의 에그타르트, 인도의 카레, 인도네시아의 나시고랭.. 전 세계의 맛있는 음식들을 경험하며, 대충 빨리 배 채우기 위한 게 아닌, 매 한 끼, 매 한 입를 음미하며 음식의 아름다움과 음식이 주는 즐거움과 행복을 오감으로 다시 느꼈다.
볼리비아 호스텔에서 만난 이스라엘 친구와 공원에서 이야기를 하다, 공원에 판잣대를 두고 뭔가를 팔고 있는 할머니를 보며 새삼 깨달았다.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것에 참 감사하고, 전생에 어떤 선행을 해서인지 한국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서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일을 구해, 돈도 이들에 비해 많이 벌고, 여자로서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이렇게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있으니 참 감사하다고 말이다.
친동생이 대학교 들어갔을 때 즈음, 졸업 여행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선물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22년 졸업을 앞둔 동생을 위해 약속을 지켰다. 동생은 2주 동안 혼자 유럽 여행 후, 나머지 2주는 나와 함께 유럽을 여행하며 추억을 쌓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동생아, 사회인이 되어 축하한다!
친언니는 파나마에 살고, 나는 중국에 살아서,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봤던 게 거의 5-6년 전이었던 것 같다.(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사정상 언니와 형부를 직접 만나 제대로 결혼 축하나 결혼 선물을 해주는 타이밍을 놓쳐 늘 마음에 걸렸었는데, 이번 방문 중 선물을 꼭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갔다. 언니와 이야기 중, 강아지를 3주간 봐주면 형부랑 한국을 다녀오고 싶은데, 강아지 혼자 봐줄 수 있겠냐는 부탁에 그럼 이왕 가는 거, 언니 형부 결혼 선물로 파나마 한국 왕복 티켓과 강아지들 케어를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중학교 이후로 처음으로 언니랑 형부와 1주일이 넘는 시간을 함께 보내어,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감사했고, 우리 강아지 또띠, 알마, 에코와도 친해지는 시간 이여 좋았고, 무엇보다 내가 마음에 드는 결혼 선물을 해준 거 같아 감사하고 뿌듯했다!
마지막으로 중국에서 인연을 맺은 친구들, 동료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인사도 못하고 헤어진 친구들과 이렇게 다시 여러 나라에서 만나 너무 감사했다. 8년간 몸을 담은 중국, 지금은 비자도 없고, 다닐 회사도, 집도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 마치 내가 언제 중국에서 살았지?라고 의심 캐 말이다... 하지만, 여행을 하며 중국에서 만났던 소중한 인연들과의 향수는 오래 남겠구나라고 느꼈다. 마치 나에게 고생했다고 주는 선물처럼 리워드를 주는 것 같았다.
여행을 하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 평균 걸음 수가 여행 전에 비해 45% 늘었다(일 평균 1.3만 보). 세계에 많은 공원에 가서 걸으며, 높고 낮은 산을 등산하며 자연스럽게 기초 체력을 쌓았고, 인도 뭄바이 요가 센터와, 발리 우붓 명상 센터에서 명상과 요가를 하며 마음에 귀 기울이고, 건강한 재료를 이용해, 건강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clean 한 음식을 먹으며, 뉴트리션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다.
킬리만자로 정상 등반. 하산 후 가이드가 하는 말이, 본인이 10년 넘게 가이드 생활을 하면서 나처럼 힘들어하는 고객은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 정말 힘들었다. 5일 차 정상으로 가는 새벽, 힘들어서 거의 눈을 감고 간 거 같다.. "난 강하다. 난 할 수 있다"를 1000 번은 나 자신에게 이야기하며 올라갔다. 킬리만자로에서 배운 게 있다면, 내가 걱정하는 모든 일들은 대부분은 안 일어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인지하고 그에 대비할 수 있음 최대한 준비하고, 할 수 없음 앉아서 고민하지 말고, 일단 그냥 하고 보자는 교훈을 얻었다. 또한, 앞으로는 자신을 갖고, 나 자신을 더 믿기로 했다. "나는 강하다. 나는 할 수 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힘을 줄, 나만의 주문이 생겼다!
아프리카에 대한 오해. 미디어의 폐해일까? 내가 무지했다. 인종도, 문화도, 경제도, 역사도, 언어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이 무지했다. 직접 와서 본 아프리카는 상상과 달랐고, 아프리카도 결국은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더라. 한때는 빌&멜린다 게이츠를 동경하며 나도 나중에 그들처럼 아프리카 국제 개발에 도움을 주겠다는 추상적인 환상들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 경험을 통해 확실히 사라졌다. 수많은 아프리칸 체인지메이커들을 만나며, 나는 본인들의 기술과 힘으로 혼자 독립적으로 일어설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아프리카를 위해서 일한다거나 그들을 돕기보다는, 내 조국부터 돕는데 기여를 하고, 조국 기여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될 때, 아시아 태평양권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함께 동급에서 더 큰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아프리카 파트너사들과 파트너십을 하고 싶다는 조금 더 구체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단지 지금이 시기에, 이 순간 내 가치관에 기반하여 목표는 그렇다는 거다. (인생 아무도 예측 못한다, 하나만 보는 꽉 막힌, 좁은 사고를 갖은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늘 유연하게, 물처럼 휘는 사람이 되길.) PS. 내가 갖고 있었던 아프리칸에 대한 두려움? 그들이 이야기를 걸면 이유 없이 동공이 흔들리던 나는, 3개월 동안 아프리칸 사람들과 일하고 부딪히며, 친해지고, 이야기를 통해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배우며 100% 극복하였다.
홍해에서 스킨스쿠버, 프리다이빙, 잔지바르에서 스노클링, 케이프타운 대서양에서 만난 펭귄들,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이지 않을까 했던 몰디브 섬들, 나는 항상 바다보다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바다도 참 좋아하는 사람이란 것을 깨달았다.
치안의 중요성과 감사함을 처음 느꼈다. 세계를 다니며, 신변 안전을 위해 항상 긴장을 놓지 않았다. 남미에서는 1분에 한 번씩 의식해서 뒤를 돌아봤고, 핸드폰을 길에서 꺼내지 않고, 차 안에서는 창문을 닫고 핸드폰을 사용했다. 유럽과 아프리카에서는 핸드폰 줄을 내 옷 안에 고리를 달아 연결해서 다녔다. 동남아에서는 휴먼트래피킹의 위험을 인지하며 안전에 각별히 유의했다. 남미,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 등 각별히 치안에 유의해야 하는 나라에서는 6시 해가 지기 전에 호스텔로 돌아왔다. 슬픈 현실이지만, 모르는 사람이 과도하게 친절하거나 말을 걸어오면 빨리 그 자리를 피했다. 그들은 정작 순수한 마음으로 타국에서 온 여자 여행객에게 건넨 친절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새삼 처음으로 느꼈다. 너무나 당연히 핸드폰을 꺼내놓고 길을 다니는, 너무 당연히 혼자 맘 편히 등산을 가는, 10시여도 등이 있어 밝고 치안이 안전한 한국이 정말 살기 좋은 환경의 나라구나라고 느꼈다. 단지, 살면서 그걸 당연하게 느끼고 자랐기에, 모르는 것뿐이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소설책을 읽었었나? 마지막 회사에서의 몇 년은 바빠서,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나는 평균 연간 150권의 책을 읽었었다. 일어나서 읽고, 잠자기 전에 읽고, 주말에 읽고, 연휴 동안에도 읽고, 책도 빨리 읽는 편이지만, 배우는 걸 좋아한다. 특히, 일하면서는 비즈니스, 국제 개발 관련된 책, 소셜임팩트, 사회적 기업, 재테크, 건강과 관련된 지식을 얻기 위한 베스트셀러 책만 골라서 읽었었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우연히 소설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소설이 이렇게 재밌었는지, 마음을 평안하고 따뜻하게 해 주는지 몰랐다. 소설의 아름다움을 여행을 하면서 배웠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날이라면? 세계여행을 하면서 1년 뒤? 1달 뒤? 아니 나에겐 당장 1주일 뒤의 플랜을 짠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당장 오늘 무슨 일이 있을지, 내일 어디를 갈지, 누굴 만나게 될지, 뭘 먹게 될지, 아무것도 예측 못 하는 게 여행이다.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고, 고산병에 걸리기도 하며, 길을 잃기도 하고, 어렵게 잡을 약속이 취소되기도 되며, 예약한 호스텔에서 한 여자가 약을 하고, 다른 여행객과 머리를 잡고 싸우는 바람에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모든 게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도 인생과 같다. 앉아서 1년, 5년 플랜 짤 시간에, 오늘 하루를 fully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무엇을 하고, 누구와 보낼 것인가?
내 인생 첫 빙하 glaciar perito moreno, 피라미드, 콜로세움, 우유니 사막, 파타고니아, 파나마운하, 루브르박물관, 콜로세움, 에펠타워, 사그라다 파밀리아, 구엘 예술작품들, Basel 강에서 수영하던 수천 명의 사람들, 인터라켄, 피사의 사탑, 베니스 곤돌라, 아타카마사막, 빅토리아폭포, 남아공의 케이프포인트&희망봉, 몰디브의 천국 같던 섬들...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이 만들어낸 예술작들을 보며 놀라고, 감탄하고, 흥분하고 설렜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가면서 많이 보고, 경험하고, 서프라이즈 하게 알록달록하게 살자고 다짐했다.
부처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을 때 수행하던 위빳사나 명상을 배우기 위해 캄보디아에서 10일 코스를 참가했다. 10일간 핸드폰도 사용할 수 없고, 타인과 대화 또는 눈짓 손짓의 대화까지 할 수 없었고, 운동, 읽기, 쓰기와 같은 모든 생산적인 일들과 단절하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저녁 9시까지 아침, 점심, 저녁밥 먹는 1시간을 빼고 계속 명상만 했다. 절대 쉽지 않았지만,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중 가장 큰 깨달음은, 나의 20대는 "꿈"이라는 추상적인,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 무엇인가에 홀려서, 부족해. 더. 더. 더. 계속 갈구하고 열망하고 목말라했다는 것이다.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며 감사하며 살지 못하고, 무엇인가에 쫓기듯 늘 불안하고, 조급했다. 그렇다고 위빳사나가 가르치는 것은 stop craving and "아무것도 하지 말라"가 아니다. 플랜과 액션은 craving이 아니다. craving은 멈추고, 이룰 수 있고, measurable 하고, 현실적인 플랜에 맞춰 적극적인 액션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물론, 세계 일주를 하면 마냥 좋을 줄만 알았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꼭 이루고 싶은 꿈일지 모른다. 나도 그랬다. 막상 일을 그만두고 세계 일주를 시작하니 마냥 기쁘고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대충 배 채우기 위해 아무거나 먹는 날도 있었고, 싸구려 호스텔에 가서 무서워 눈뜬 채 밤샘하기도 했고, 고산병으로 약을 밥 먹듯이 먹기도 했다. 특히 여행 초기에는 내가 지금 여행하는 게 잘하는 건가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불안해했다. 불안했던 이유를 돌이켜보니, 나의 20대는 인생의 방향과 꿈이 추상적이기만 했었다. 그래서, 그 꿈을 찾기 위해 미친 듯이 도전하고, 방황도 하고, 실수도 하고, 이런 수없는 실패와 거절을 통해 나를 더 알아가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추상적이고 흐렸던 내 인생에 방향이 이 모든 실패의 과정을 통해 점차 서서히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겨우 찾은 내 인생의 방향인 SDGs와 Social impact에 도전해 보고 30대는 이 길에 집. 중. 해보자며 일을 과감히 그만뒀는데, 막상 세계 일주를 하고 있자니 고문이었다. 마치 창살에 하이에나를 가둬 둔 것 같이 말이다. 그냥 이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고, 하루빨리 가치 창출을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싶은 생각만 가득했다. 현실은 달랐다.
하지만, 다시 2022년의 나로 돌아가도, 나는 퇴직을 결정하고 세계 일주를 갈 것이다. 만약 계속 앉아서 분석만 하고, 상상하고, 고민하고, 결단을 못 내리고, 실천하지 못했더라면, 나는 지금도 아침에 눈떠 가치관과 상극인 회사에 일하러 가서, 나 자신을 혐오하며, 화를 내며, 작년 29살에 세계 일주를 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세계 일주도 내가 환상 속에서 상상해 오던 꿈이고 실제로 해보니 어렵다 불가능하다고 상상했던 것들이, 막상 실천하니 너무 쉽게 진행되었고,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느끼며,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남들이 이래라저래라, 생각 없이 조언을 가장한 막말 대잔치를 해도, 내 인생 내가 줏대를 갖고 살아갈 것이다. 왜냐, 내 인생 내가 결정하고, 내가 내린 결정에 내가 책임지고, 내가 내 인생 스토리를 만들어가니까 말이다. 인생 너무 짧다. 하고 싶은 일만 하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
마지막으로, 인생에 가치관, 목표는 내가 존재하는 인생의 시기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오늘의 나의 기준으로, 내가 갖고 있는 목표는, 내가 100세가 되어 내 지난 인생을 돌아봤을 때, 누구보다 후회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해보고 간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정말 후회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구나, 그리고 동시에 내 인생에 있어서도 포기하지 않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들을 다 완벽하진 않지만 포기하지 않고 밸런스를 갖기 위해 최선을 다했구나, 내가 더 행복하기 위해, 나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기 위해, 나의 사랑하는 가족과 내 동반자를 위해, 배움을 위해, 내가 속한 커뮤니티를 위해, 안정적인 재정을 위해, 여행을 위해, 건강한 음식을 위해, 자연과 함께 하기 위해 정말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후회 없이 내가 할 수 노력은 다했구나, 이 정도면 후회 없이 잘 살았다고 말하고 싶다.
세계일주라는 내가 내렸던 수많은 결정 중 가장 용기 있었던 선택에 나 자신에게 감사하다. 앞으로 30대가 돼도, 40대가 돼도 50대가 돼도 죽을 때까지 이렇게 용기 있는 선택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 하면서 살자. 나의 20대, 노력한 자랑스러운 결과이고, 선물이다. 더 건강하고, 더 많이 웃고, 더 가슴 뛰는, 더 의미 있는, 더 열정을 느끼는, 이제는 가치관과 Align이 되는 일을 하고, 집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더 "나 다운" 30대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