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the Illusion of Social Change
0. 들어가며
이 글은 성과를 정리하는 회고가 아니라, 소셜임팩트 업계에서 개인이 소모되는 구조를 기록한 관찰 보고서다.
올해는 작년처럼
한 해 동안 내가 만들어낸 소셜임팩트의 성과를 나열하는 글 대신,
짧지만 지난 2년 반 동안 소셜임팩트 업계에서 일하며 경험한 현실을
조금 더 솔직하게 기록해 보기로 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좋은 쪽을 보려고 애쓰는 성향이 강해서,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종종 미화된다.
그래서 이번 애뉴얼 레터는
의도적으로 그 습관에서 한 발 물러나
조금 더 냉정하고, 크리티컬 한 시선으로 써보려 한다.
이 글은
어떤 회사를 비난하기 위한 글도 아니고,
내 경험이 그 조직의 전부를 대변한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사람마다 경험은 충분히 다를 수 있고,
같은 환경에서도 전혀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실패를 통과하는 일』이라는 한 스타트업 대표님의 책이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책을 읽으며
“나도 조금은 솔직해져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잘 포장된 회고가 아니라
지금의 내가 다시 읽어도 불편할 수 있는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이 글을 통해
나 스스로를 다시 한번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열정 하나만으로
소셜임팩트 업계에 들어오려는 주니어들,
혹은 프라이빗 섹터에서 일하다
이 업계로 커리어 전환을 고민하는
과거의 나 같은 사람들에게도
조금은 현실적인 참고 자료가 되었으면 한다.
소셜임팩트 업계에서 일하는 건
분명 멋있어 보이지만,
마냥 cool하지만은 않다.
이 글을 읽고
너무 아름다운 모습만 보고
섣불리 들어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보다 value와 purpose를 더 큰 기준으로 두는 사람이라면
어차피 해야 하는 9 to 6의 시간,
동태눈을 뜨고 일할 바에야
나는 이 업계에 한 번쯤은 꼭 도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결국 안 해보면 모른다.
부딪혀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약 2년 반 동안
소셜임팩트 업계에서 일하며 느낀
아주 솔직한 경험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문제 해결보다 조직의 생존이 우선순위가 될 때, 그 과정에서의 비용이 개인의 희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리소스가 부족할 때
가장 먼저 소모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회 문제는 본질적으로 광범위하다.
그 안에서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뾰족하게 정의하려 할수록
오히려 난감해지는 순간이 온다.
조직은
특정 문제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익을 만들어야 하는
하나의 회사이기 때문이다.
문제 정의를 정말 뾰족하게 하고,
그 문제 자체를 끝까지 해결하고 싶다면
선택지는 명확하다.
직접 창업을 하거나,
이미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스타트업에 들어가
내 역량에 맞는 역할에서
내 방식대로 풀어가는 것.
반대로,
이미 문제 정의가 명확한 수많은 스타트업을
광범위하고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엑셀러레이터라는 형태가 맞다.
계속해서 에너지가 분산되고,
내 전문성을 살려
하나의 문제를 깊게 파고들고 싶은데
그게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개인의 의지나 열정 부족이 아니라
‘역할이 맞지 않다’는 신호일 수 있다.
역할과 KPI가 모호할수록, 책임감이 강한 실무자에게 리소스가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업무 장악력이 높은 사람에게 일이 미친 듯이 몰린다. 개별 역할의 전문성이 시스템으로 보호받지 못할 때, 누군가는 자신의 영역 밖의 리스크까지 온몸으로 감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니 일, 내 일의 경계가 흐릿한 조직에서
벌어지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일이 미친 듯이 몰린다.
개별 역할의 전문성이 시스템으로 보호받지 못할 때,
누군가는 자신의 영역 밖의 일까지 온몸으로 메게 된다.
각종 행사와 프로젝트를 쳐내느라 바쁜데
타임라인은 빠듯하고,
누군가를 하나하나 가르칠 여유는 없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된다.
“내가 그냥 하고 말지.”
반대로,
역할도 KPI도 명확하지 않다면
적당히 일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일이 오늘은 내 일이었다가,
내일은 아닌 일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펑크가 났을 때
누가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가다.
그 손해가 늘 나에게 돌아오는 구조라면,
결국 내가 리드를 잡고
내 일도 아닌 일을 책임지게 된다.
여기에
보상까지 불명확하다면 어떨까.
니 일, 내 일의 경계가 없어
펑크를 온몸으로 막다가
정신과 체력의 균형이 무너지고,
에너지가 고갈되어 쓰러져도,
이를 악물고 프로젝트를 완수해도
그에 대한 보상이 없다면.
내가 나를 갈아 넣어 쓰러지는 것이
‘보통’이고 ‘당연한’ 조직에서
과연 누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세상에
내 건강보다 소셜임팩트를
항상 우선에 둘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한두 번은 가능할지 몰라도,
그게 반복된다면
지속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선한 의도는 구조의 결함을 가리지 못하고, 오히려 개인의 소진을 정당화한다.
소셜임팩트에서 일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말한다.
“와, 좋은 일 하시네요.”
마치 비영리에서 일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 같다, 절대 아니다.
또 하나의 편견은
“좋은 일 하니까 돈 벌면 안 된다”는 인식이다.
현실은 반대다.
최소한 내가 몸담았던 조직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돈을 벌 궁리를 했고,
임팩트를 수치로 측정하며
냉정한 결정을 내렸다.
절대 chill 하지 않다.
주니어 1년 차든,
C레벨 10년 차든
실무를 하고,
의자를 나르고,
정산을 하고,
사진을 찍고,
회의록을 쓴다.
왜냐하면
우리는 돈보다
가치관을 보고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를 갈아 넣으면서도 이 일을 하고,
심각한 심리적 압박이나 건강상의 이유(공황장애 등)로 그만두는 사람도 생기기 일쑤다.
선한 의도가
구조의 한계를 덮을 수 있을까.
그 구조까지 개인이 감당해야 할까.
아직도 그 질문은 남아 있다.
― 건강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질문
구조의 문제는 결국 개인의 몸과 일상에서 증상으로 나타난다
2025년을 돌아보면
내가 사용한 연차의 80% 이상은
여행이나 휴식이 아니라 병원에 가거나,
과로로 무너진 컨디션을 회복하는 데 쓰였다.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업계에서 일하지만
현실은 종종 그 반대다.
특히 스타트업, 컨설팅,
그리고 소셜임팩트 업계에서는
“좋은 일”을 한다는 이유로
적은 보상과 극단적인 소모,
그러니까 ‘갈아넣기’가
당연시되곤 한다.
이게 특정 기업이나 국가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 유럽, 싱가포르라고 해서
이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될까?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결국 답은 하나다.
각자가 스스로의 밸런스와 바운더리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것.
다른 팀에 누군가가
굉장히 바쁘다는 이유로
“도와야 된다”며
돕게 된 국내 사업 프로그램 제안서 작업이 있었다.
나는 평생 글로벌 사업만 해왔고,
글로벌 사업에 강점이 있다.
그 일은
내 방향성과도,
내가 잘하는 영역과도 맞지 않았고,
쓰는 내내
큰 현타가 왔다.
당시 나는
인바운드 프로그램을 쳐내면서
국제 행사 PM까지 병행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구조적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선한 의도로
나와 전혀 연관이 없는 다른 팀의 업무까지 떠안게 되었을 때,
진심으로 사직서가 목까지 올라왔다.
내가 지금 조직에서 소모적인 업무에 매몰되어
본연의 가치 창출을 방해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괴감,
'정작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시스템은 나를 도와주는가'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사표를 던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하지만 내가 멈추면 프로젝트에 지장이 온다는 것을 알기에,
이미 불이 난 현장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투입되어 불을 꺼야 했기에,
결국 주말과 새벽 시간을 쏟아부어 동료들과 함께 제안서 제출을 마쳤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불을 끄고 난 뒤에야,
라인 매니저에게 장문의 편지를 메일로 보냈다.
단순히 힘들다는 호소가 아니라,
우리가 처한 구조적 문제와
실무자가 마주한 지속 불가능한 현실을 냉정하게 기록해 전달했다.
2년 전엔
세 명이 하던 지사 운영을,
작년엔
두 명이 겨우 버티며 하던 일을,
올해는 사실상 혼자
여러 프로젝트 사이에서
온몸으로 막아야 했다.
실무를 직접 수행할 리소스가 극히 제한적인 인적 구조 내에서,
의사결정 체계만 비대해진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임에도
아무 말 없이
이를 악물고
해내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차라리
펑크가 나야 했다.
문제가 터져야
구조의 문제를
인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불이 나면
불을 끄러 다녔다.
이게 맞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다.
지금 돌아보면
구조 자체가
지속가능하지 않았다.
기존 리소스만으로 성과를 내다보니,
구조적 변화의 시급함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기도 했다.
그렇게 버티다가
누군가 공황장애가 오고 나서야
그제야
회사에서는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쉬게 하거나 조정을 한다.
이게 과연 맞는 걸까?
비행기가 추락하는데
내 산소마스크도 쓰지 못한 채
옆 사람부터 도우라는
안내를 받는 기분이었다.
결국 콘퍼런스를 마치고
두 번이나 토하고,
귀국 직후
고열과 식은땀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
신체적인 경고 신호가 올 정도로 에너지를 소진했고,
이는 개인의 열정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속가능한 임팩트'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으로 돌아갔다.
이 정도 각오는
솔직히 말해
이 업계에 들어오기 전에
하고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본 대부분의 동료들,
스타트업 대표, VC, 비영리 실무자들 역시
대기업 못지않게 일한다.
효율성 있게 일하냐의 문제는
또 다른 이야기지만.
‘좋은 동료’라는 말은 종종 구조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한다.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란 무엇일까?
일이 미친 듯이 쏟아지는데
펑크를 내지 않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사람이
좋은 동료일까?
아니면
구조적으로 소화할 수 없는 업무 속에서도
“제가 메꾸겠습니다”라며
몸빵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좋은 동료일까?
하나의 프로젝트만 하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얽혀 있고,
그 동료가 다른 프로젝트에서 갈리고 있는데
그걸 모른 척하고
“괜찮아, 내가 할게”라고 말하는 게
정말 좋은 동료일까?
몰입할 수 없는 구조에서
몰입을 요구하는 건
과연 건강한가?
구조를 유지하느라,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실험은 끝내하지 못했다.
소셜임팩트 업계에
의미와 동기를 느끼는 건 확실하다.
월급 50%를 깎고 들어온 이 업계에서
2년 반 넘게 일하며 나름 강한 자부심도 느끼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경쟁사로 돌아가
몸값을 더 키웠을 것이다.
지금도
이커머스 경쟁사(틱톡, 테무, 알리페이)나
OTA에서
헤드헌터 연락이 온다.
중국 플랫폼에서 6년 넘게
글로벌 사업과 BD 역할을 했고,
지금은 AC/VC에서
스타트업계에서 글로벌 시장과 PM 역할을 하며
비즈니스 다각화를 경험해 온 점을
높게 평가받는 것 같다.
그럼에도 대기업에서 파격적인 처우를 제안받는다 해도, 단순한 이익 추구를 위한 일반 사업팀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 설령 대기업으로 향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오직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실현하는 팀일 때만 의미가 있을 것이다.
2년 반이라는 시간 검증을 통해 이제는 소셜임팩트의 방향성은 맞았다.
그럼 이제 NEXT는 스케일업 전략이다.
명확히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찾고,
내가 잘 알고, 잘하고, 재미있어하는 것을
영끌해서 때려 박아야 한다.
그래서 세운 가설이
소셜임팩트 × 부동산이었다.
부동산은
중국에 있을 때부터
취미처럼 계속 공부해 온 영역이고,
어차피 할머니가 돼서도
가져가야 할 지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입학 후
정말 집중하고 싶었던 실험은
부동산과 소셜임팩트가 결합된 BM을
국내외 전체 에코시스템 관점에서
큰 그림으로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 바탕으로
내가 몸담고 있는 생태계 내의 파트너들과
관련 프로젝트를 연계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남이 낸 펑크까지
온몸으로 메꾸는 상황에서
이런 실험을 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0.001%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과연
내가 펑크를 메우는 데 쓰는 에너지와
내가 잘하고 재미있어하는 실험으로
만들 수 있는 임팩트 중
어느 쪽이 사회에 더 기여할 수 있을까?
냉소보다 질문이, 단절보다 다음 선택이 남아 있다.
완벽한 조직은 없다.
결국 일은 사람이 한다.
함께 일하는 동료와 존경할 수 있는 리더가 있다면
조직이 완벽하지 않아도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구조적 임계점은 분명 존재한다.
소셜임팩트의 방향성은 맞는데,
내가 몰입하지 못하고 에너지가 계속 분산되고 있다면
이제는 지원자의 역할을 넘어
직접 비즈니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임팩트의 전선에 서야 할 때가 아닌가라는 질문이 계속 남는다.
이제는 바쁨이 아니라, 명확함을 선택한다.
올해 국내 외 공공기관 및 글로벌 사업을 위한 다수의 제안서 작업을 했다.
확실해진 건 하나다.
내가 잘 모르는 영역에서는
결과도, 재미도 없었다.
반대로
내가 잘 아는 영역에서는
퀄리티가 달랐다.
이제는
바쁨보다 명확함이 필요하다.
에너지를 쓰기로 결정한 단 하나의 질문
Impact × Real Estate에서,
내가 가장 큰 임팩트를 만들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
역할 정의가 불명확한 조직에서
개인의 에너지는 쉽게 분산된다.
이건 개인의 무능이 아니라
소셜섹터에서
너무 흔하게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다.
이 글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글도,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글도 아니다.
다만
비슷한 고민을 하는 누군가가
조금 덜 외롭기를,
그리고 선택의 순간에
조금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결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