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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븐데이즈 Jul 27. 2021

03. 오늘(Today)

잃어버린 시간

오늘(Today)

 

평일 일과 중에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는데

왜 주말만 되면 시간이 너무 빨라서 

아쉬워 제대로 못 자고

그냥 시간이 똑같이 흘러가기만이라도 

좋은 순간만은 천천히 “


장범준의 노래 ‘당신과는 천천히’ 중에서


오늘은 월요일이다. 새롭게 한주가 시작되는 날, 이 날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장범준의 노래처럼 “주말만 되면 시간이 너무 빨라서 아쉬워 제대로 못 자고...” 그래서 힘겹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월요병에 걸린 거다. 


시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가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란 무엇일까? 시간은 기묘한 능력이 있다. 시간은 똑같이 흐르는데 다르게 느껴지게 한다.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겠지만 사람들은 시간을 말하며 환호하거나 한숨을 쉰다. “인생은 쏘아 올린 화살과 같다.”라는 세네칼의 말처럼 이미 활에서 떠난 화살과 같은 인생이다. 그래서 사람과 시간은 함께 간다. 사람이 없으면 시간도 없다. 시간에 대해 의미를 갖는 것은 사람뿐이다. 사람과 시간은 공동운명체다.

시간은 말합니다. 너희는 영원하지 못하다. 너희는 약하다. 너희는 불완전하다. 그래서 시간 앞에 겸손해야 한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자기 개발서의 저자들이 하나같이 시간 관리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은 영원하다.


이 시간은 사람의 영역 아니다. 오직 신의 영역이다. 성경은 이 시간을 알파와 오메가라고 했다. 영원부터 영원에 이르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사람이 관리하거나 간섭할 수 없다. 오직 신만이 관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간은 어느 한 지점에서 반드시 인간과 관련된다. 이 시간은 창조와 종말의 시점이다. 마치 인터넷 브라우저 하나가 생성된 것처럼 영원이란 시간 선의 한 지점에서 창조의 역사가 출발한다. 비로소 인간이 관계하고 관리하는 시간이 생성된다. 어느 날 이 브라우저가 닫히는 순간 모든 것은 영원으로 귀속될 것이다.

이 시간을 카이로스라고 부른다. 

    인간이 관련되는 시간 흔히 인간의 역사라고 부르는 시간의 시작은 창조의 시점이다(창 1:1). 헤아릴 수 없는 일들이 펼쳐지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비로소 크로노스라고 부른다. 계수할 수 있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이 시간을 관리해 왔고 그 과정에서 역사라는 스토리가 기록된다. 그렇다면 개인의 시간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1964. 02. 28에 나의 시간은 시작되었다. 그 시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오늘이라는 시간선에 서있다. 언제 이 시간이 끝날지는 모른다. 이 시간에 대해 좀 더 엄숙하고 친밀하며 힘차게 보내고 싶다. 


잃어버린 시간


풍경사진을 좋아해서 가끔씩 새벽시간에 촬영을 나간다. 한 번은 대청호 보조댐 인근으로 촬영을 나갔다. 이날의 주피사체는 물속에 가라앉은 나무배와 주변의 풍경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 틀림없는데 이제는 버려진 상태다. 이 배는 오랫동안 잃어버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용가부를 떠나 정채성 조차 불분명하다.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지나온 삶의 흔적들을 더듬으며 마음에 응어리진 아픔을 어루만지고 못내 아쉬워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잃어버린 시간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자신만의 생각과 방식을 고집하며 살아왔는데, 그 생각과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 드러난다면 그만큼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잃어버린 것이다. 시간을 낭비한 것도,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보낸 것도 잃어버린 시간이다. 반복하고 싶은 않은 실수들,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들 역시 잃어버린 시간이다. 

때로는 원한과 복수의 정신으로 보낸 세월들, 무의미한 경쟁으로 소모전을 벌이거나, 착각과 오해로 차마 못할 짓을 한 경우도 잃어버린 시간들이다.

시간이 지난 뒤에 후회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잘못 행동하고 반성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뭔가 아쉽고 부족하였다고 느낀다면 그것 역시 잃어버린 시간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주어진 시간이 있는데 그 주어진 시간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간이 가진 목적을 제대로 일지 못하는 것 자체가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7 Days & 168h


“타인의 시간이 아니라 ‘자기 시간’을 살아가자고 결심하자!. “

                                                      - 우에노 마쓰오 -


최근에 들어와 많이 들어온 말이다. 생각의 틀을 바꾸라는 뜻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일주일, 168시간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이것은 새롭게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우리 사회는 52시간 근로제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찬반양론이 거세가 일어났다.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이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한 근로 제이며 관련 법규인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2018년 2월 국회를 통과했고 2018년 7월 1일부터 종업원 300인 이상의 사업장, 국가기관, 지자체 기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다. 계층 간의 이견이 첨예하지만 분명한 것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반드시 시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 사회에는 워라밸이라는 신종어가 유행하게 되었다. 워크 라이프 밸런스(Work Life Valence)를 줄여 이르는 말로, 직장을 구할 때 중요한 조건으로 여기는 일과 삶 사이의 균형을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직장에서의 출퇴근 문화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는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정확하게 퇴근시간을 지킨다. 퇴근 후 단체회식문화도 점점 사라지고 강제적인 술 권장 문화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우리는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시간에 대한 나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어야 한다. 아래 질문에 각자의 답을 내려보자.


 “일주일은           이다.” 


각자의 생각에 따라 여러 가지 답변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 저자가 대학에서 코칭을 할 때 가장 많이 나왔던 답변은 “일주일은 바쁘다.” “일주일은 정신없다.” 등이었다. 대학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한 선교단체의 간사를 만났는데, 그는 나에게 이러한 하소연을 이야기했다. “제가 소속된 선교단체의 학생들을 캠퍼스에서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강의시간, 과제, 아르바이트 등등에 쫓기듯 살아가는 학생들을 만나려고 하니 시간 맞추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제가 선교단체 간사인 것에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아요.” 정말로 학생들이 바쁠까? 

한 번은 기숙사 학생들 20명을 대상으로 시간관리 코칭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이 학생들은 이 대학에서 우수한 인재들이었다. 최소한 이들은 4.0 이상의 학점을 받은 학생들이다. 그래야만 계속해서 기숙사에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3시간을 더 준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읽겠다.” “어머니와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한편 보겠다.” “미뤄두었던 운동을 하겠다.” “취업을 위해 토익공부에 그 시간을 투자하겠다.” 등등 부족했던 부분이나 갈망하는 일들을 하고 싶은 의견들이 다수였다.


이어지는 질문이다. “그동안 이러한 것들을 실행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학생들은 한 결 같이 바빴기 때문이다.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이제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일주일은           이다.” 이 문장을 완성하면 다음의 두 가지 답변으로 나타난다. ‘일주일은 7일이다.’와 ‘일주일은 168시간이다’라는 두 가지 패러다임이다. 첫 번째 패러다임은 이러한 시간구조를 갖게 된다. 일주일에 5일은 직장에 출근하여 일하거나 학교에 등교하여 강의에 참여하고 공부하는 시간이 될 것이고, 2일은 쉬는 날이 될 것이다.


위와 같은 패러다임을 가진 사람은 삶은 매우 복잡하다. 당신은 ‘회사 일에 바빠서 개인적인 시간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평일에는 매일 아침 7~8시 정도에 집을 나서고 오후 8~9시 정도에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잠을 잘뿐, 회식이 있기라도 하는 날은 더더욱 피곤이 중첩된다. 그렇게 휴일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5일 동안, 회사에 출근해서 업무성과를 위해 매진하거나 상사나 직장 동료, 거래처와의 관계들로 인해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퇴근하는 반복적인 시간구조를 가지게 된다. 학생들의 경우에는 강의실을 전전하며 과제와 실험에 매달리고 미래를 위한 취업준비에 시달리다가 2일의 휴식이 주어지면 잠을 자거나 가족, 친구들과의 외식, 문화생활, 짧은 여행 등의 취미생활을 갖고 다시 5일을 전투적으로 보낸다.



이제 패러다임의 바꾸어야 할 필요가 느껴지는가? ‘7일을 살 것인가?’ 아니면 ‘168시간을 살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이 선택은 분명한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일주일은 168시간이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는 삶의 질을 바꿀 수 있다. 일주일에 3시간이 더 필요로 했던 학생들에게 이 패러다임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패러다임의 구조는 직장에서 법정근로시간인 52시간을 사용하게 되고 나머지 116시간은 자신이 철저하게 관리할 수 있는 시간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한다.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있는 시간이다. 지난주에도 그랬고 이번 주도 그렇고 다음 주도 똑같은 시간이다. 달라진 것은 ‘패러다임’뿐이다. 그럼에도 시간에 대한 변화의 추이는 대단히 놀랍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없다고 여겼던 시간이, 정신없다고 느꼈던 시간이 마술처럼 사라지고 충분히 스스로 관리할 시간들이 나타난다. 


가능해진영향받지이제 중요한 것은 ‘마법처럼 나타난 시간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본격적으로 디자인이 가능하고 관리가 가능해 진 시간이다. 이것을 가리켜서 우에노 마쓰오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 받지 않는 ‘자기 시간’을 잘 만들어 활용한 사람이라고 한다. ‘자기 시간’이란, 다른 사람에게 좌우되지 않고 자기 의지로 자유롭게 사용하는 시간을 뜻한다.

 

오늘(Today)


오늘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나의 시간이다. 충분히 통제와 관리가 가능한 시간이다. 168시간 중에 24시간이 주어진 시간이다.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다. 

오늘은 어제 죽은 자들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라고 한 것처럼 축복과 같이 주어진 시간이다. 오늘 나는 이 시간을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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