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은 서천에 비해서는 아주 잘 사는 군소도시였다. 일제강점기부터 공업도시로 돈의 흐름이 많았고, 그만큼 사람도 많았던 도시답게 군산역을 중심으로 은행이며 웬만한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기환은 버스에서 첫눈에 반해 버린 여자애를 따라 무조건 내리고 보니 군산역 앞이었다. 여자애는 누군가 자신을 따라온 것을 알고는 뒤를 한번 돌아보더니 가만히 서서 기환을 쳐다보며 먼저 말을 했다.
"저 혹시 무슨 볼일이 저 한테 있남유, 왜 따라와유."
여자애는 당돌했다. 시골티가 나지 않은 것이 조금 놀라웠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본 박기환은 약간 놀래서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여자애의 얼굴에서 금방 파란 바닷물에서 온몸을 털고 나오는 하얀 물고기처럼 싱싱한 몸짓과 담대한 눈빛이 서글서글했기 때문이었다.
"아, 네 저 혹시 저랑 커피 한잔 할 수 있을까요."
기환은 서울에서 대학 다닐 때 만났던 여대생들에게 말하듯이 예의를 갖추어서 대답을 했다. 여자애가 톡 쏘듯이 박기환을 보더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먼저 다방이 있는 군산시의 가장 번화한 거리를 먼저 걸어가기 시작했다.
"지는 이런데서 커피같은거는 한번두 먹어 본 적이 없지만, 비싸다는 커피를 댁이 사면 마셔드릴 의향이 있으니 문 열고 먼저 들어가셔유. "
여자애는 솔직하고도 당돌했다. 그리고 거리낌이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눈치도 안 보고 하는 걸 보니 굉장히 똑똑한 여자가 분명했다. 기환은 먼저 다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다방이 서울 못지않게 아주 근사하게 꾸며놓은 것을 보고 그도 잠시 어리둥절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자애는 다방이 처음이라더니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레지들이 뽀쪽한 구두와 화려한 옷을 입고 쟁반을 들고 왔다 갔다 거리는 걸 보더니 정말 눈이 휘둥글랬다. 기환이 레지를 불러서 커피를 두 잔 시켰다.
"정말 다방에는 처음 오신건가요?"
"네 처음이구먼유."
기환이 그녀의 충청도 사투리에 갑자기 웃음이 터져버리려고 하자, 간신히 웃음을 참고 그녀를 찬찬히 보니
여자애는 좀 전의 거리에서의 기세에 비해서 다방에서는 아주 얌전히 두 손을 치마 위에 얹고 약간은 떨리는지 커피에 설탕을 간신히 탔다. 그녀에게 이미 마음을 빼앗긴 기환은 그녀에게 무엇이든 물어보고 싶은데 막상은 무슨 말을 물어야 할지 앞으로 또 언제 만날 수 있을지 우선은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저 혹시 군산에 왜 오셨나요. 저랑 아까 버스를 같이 탔었는데, 그 동네 사세요."
"네, 전 그동네 살아유, 지 이름은 향숙이여유, 차향숙 이구먼유."
기환은 그녀가 그 마을에 산다는 말에 자신이 앞으로 그 마을에서 계속 살게 될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 여자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그 순간 어찌나 간절했는지 기환은 여자를 빤히 쳐다만 봤다. 여자는 처음 마시는 커피가 좋은 향이 난다며 코를 몇 번이나 찻잔에 갖다 대고는 했지만, 기환은 그런 그녀가 촌스러운 게 아니라 더 귀엽고 신선해 보였다. 그동안 기환이 만난 대단한 집 딸들과 서울의 호텔 커피숍에서 맞선이나 미팅을 할 때의 그 숨 막히는 갑갑함이 한순간 날아가는 듯했던 것이다.
" 전, 서울에서 왔는데요, 그 동네에 잠시 있을건데요, 제가 군산에는 처음이거든요.
전 서점에 들렸다가 우체국에 잠시 들리고 다시 아까 그 동네를 갈건데요,
우리 이따가 여기서 다시 만나서 같이 가면 않될까요. 아니면 저랑 점심을 먹던가요."
기환의 제안에 여자애가 머뭇대더니 점심을 같이 먹고 싶다고 했다. 자기는 공장에 면접을 보러 온 것이라고 했다. 경리로 취직할 공장을 학교에 교장선생님이 추천을 했다는 것이었다. 여자애는 묻지 않은 말을 하면서 약간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보니 자신의 삶을 당당히 말하고 싶은데 한쪽으로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 표정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자애가 다시 말했다.
"전 고등학교 군산에서 제일 쎈데 여고를 지가 일등으로 붙었거든유, 그런데 지 아버지가 작년에 밭에서 일하시다가 소에 받쳐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여학교를 일년도 못다니구 중퇴했어유. 그래서 이제는 엄마랑 동생들 때문에 돈두 벌어야 해서 교장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자리에 면접 보러 왔어유. 굉장히 큰 회사라구는 했는디. 우선은 공순이루 취직을 했다가 지가 잘하고 있으문 경리나 관리부서로도 바꿔준데유. 지가 아직 주산이랑 부기 같은걸 못해서 경리루는 금방 않된다고 하더라구유. 지는 여고에 붙었었거든유. 아부지만 안 돌아가셨으문 서울에 있는 여대에 들어가서 선생님이 될라구 했구먼유."
기환은 여자애가 무척이나 똑똑하다는 걸 한눈에 알아봤는데, 정말 여자애가 뛰어난 부분이 있을 거라는 자기의 생각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기환은 똑똑한 여자를 원한 건 아닌데, 아무튼 그녀의 싱싱하고 살아있는 모듣것이 그녀의 불행도 결국 바다에 풍덩 내던지고 힘차게 그 바다를 발길질하며 솟구쳐 올라와서 세상을 자신 있게 살 여자라는 생각을 했다.
기환은 방개와 밥을 해주는 과부 아줌마와 함께 읽고 싶었던 책을 몇 권 사고 소설을 쓰기 위해서 큰 노트도 몇 권을 샀다. 그리고 우체국에 가서 서울 집에 전화를 했다. 어머니에게 자신은 이제 소설을 쓰겠노라고 말하고 이제는 집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하고 얼마간의 돈을 부쳐달라고 했다. 어머니의 가녀린 흐느낌이 전화선을 타고 그에 감정을 흔들자 기환은 서둘러 전화를 끊어버렸다. 곱고 아름답고 섬세한 어머니가 우는 소리를 처음 들어서인지 가슴이 아팠다. 그의 어머니는 결혼해서도 한 번도 설거지를 해 본 적이 없이 피아노만 치며 최고의 것들을 누리며 사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예술가답게 섬세해서 아버지와는 달리 기환이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걸 이해하려고 했고, 자신도 문학을 사랑한다며 가끔씩 고시에 뜻이 없는 아들을 이해해 준 어머니였다.
기환과 향숙이 처음으로 점심을 먹었다. 여자애는 면접을 잘 봤다며 다음 주 바로 출근을 하기로 했다고 하며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에 젖어 다시 꿈을 찾은 소녀같이 행복해 보였다. 기환은 향숙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그녀에게 공부를 좀 가르쳐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열여덟 살 밖에 먹지 않은 향숙이 어느 면에서는 자기보다 훨씬 인생을 더 잘 헤쳐나가는 여자애라는 것을 기환은 그날 내내 그녀와의 시간을 보내며 알게 되었다. 부유하고 대한민국 최고의 학벌과 지식을 자랑할 만큼 대단했던 자기의 가문에서 얻지 못할 어떤 삶의 지혜가 그녀의 의식 속에 있다는 것이 그로써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기환은 그날 밤 향숙을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며칠 전에 찾아오신 교회에 목사님께 말씀드려서 교회 교육관에서 인근에 못 배운 청소년들에게 야학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을 하기로 했다. 검정고시를 가르치고 향숙이 같은 여자애들도 공부를 잘 가르쳐서 대학도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선은 자신의 친구들이 이미 검사나 판사도 많으니 장학금을 지원해 달라고 하면 시골에 있는 아이 몇 명쯤은 서울에 대학을 충분히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유명한 작가로 많은 돈을 벌게 된다면 그 모든 돈으로 장학재단을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기환과 방개가 한방에서 자야 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지만, 방개는 기환이 청년 덕에 형들의 책을 훔쳐보던 소년시절로 돌아갔다. 밤이면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와 함께 소설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소리는 방개의 가슴에 어릴 적에 때리던 형들을 피해서 안방 아버지 방에 다락에 몰래 숨어 들어가서 잠이 들었을 때처럼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소설을 무신 내용으로 쓸꺼유 청년."
방개가 책을 읽다가 기환에게 물었다.
"네, 저는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 같은 작품을 쓰고 싶은데, 잘 되려는지 모르겠어요."
"아휴, 청년은 사랑도 못해봤잖아유, 그런데 그런 소설을 워떻게 쓴데유. 꼽추가 집시 여인을 애절하게 사랑하는데 그 소설에서는. 그런 사랑을 해봐야 그런 소설두 쓰지유."
"하하하, 아저씨 이제 보니 진짜 정체를 알 수 없는 간첩 같구먼유. 정말 아저씨는 누구래유,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가 다 아는 것도 같으니 이상하잖아유. 아저씨야 말로 사랑도 못해본 것 같은데, 어떻게 그 소설에 꼽추에 마음을 그리도 잘 아시나 모르겠네."
기환은 방개랑 같이 살면서 친해지자 방개를 편하게 부르기로 하고 어르신이란 호칭을 버리고 아저씨라고 불렀다. 그런데 방개는 소설을 책을 읽으면서 그의 대화가 보통의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학적 감수성도 뛰어나서 기환이 찾아내지 못하는 것을 아주 절묘하게 문장에서 찾아내고, 스토리도 잘 이해를 하는 편이라서 그가 어느 때는 기환보다 한 수 위에 문학적 해석을 하는 부분도 있을 정도로 책 읽는 실력이 점점 늘어났다.
기환은 대한민국의 최고의 신문사에서 하는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소설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소설에 매진해 들어갔다. 그리고 목사님과는 야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모든 기환의 마음의 동력은 차향숙이란 어리지만 당찬 열여덟 살 소녀에게서 얻어 온 사랑의 종소리였다.
종처럼 치면 소리가 나고 그 소리가 멀리멀리 퍼지는 그런 아름다운 소리가 있는 사랑의 울림이 그녀를 처음 본 날부터 기환의 가슴을 두드려댔던 것이다.
그리고 기환이 방개 아저씨를 보고 있으면 왠지 이상하게 저 아저씨의 모습이야 말로 약간은 노트르담의 꼽추의 모습처럼 우습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묘하게 웃기는 모습이 있다고 생각하고는 가끔씩 방개가 등을 구부정하게 수그리고 뭔가를 하고 있으면 그 모습을 보며 혼자서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는 했었다. 그건 방개가 등이 다른 사람보다는 두툼하고 어깨가 구부정한 게 꼭 물에서 떠 다니는 방개를 연상시키듯이 팔과 다리는 짧고 행동도 어딘지 모르게 사람을 웃게 만드는 제스처 때문이기도 했다.
기환의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시골에서 집을 몇 채는 족히 사고도 남을 만큼이 큰돈을 보내왔다. 돈과 함께 어머니는 전화에 대고 아들에게 간곡히 부탁을 했다.
"아들, 네가 정말 빅토르 위고처럼 위대한 작품을 쓴다면 엄마는 다 밀어줄게. 그때 까지는 아버지 앞에 나타나면 안 된다. 네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기환이 어머니는 남편의 위선과 교만을 잘 알았다. 그리고 그녀는 현명한 어머니였고 실력 있는 예술가였기에 문학을 사랑했다. 모든 예술의 가장 큰 그림은 문학에 바탕을 두어야 함도 그녀는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아들에게 자신의 비상금을 내어 준 것이었다. 그 돈은 아주 큰 거금이었다.
기환은 우선 방개랑 살고 있는 집을 좀 고치기로 했다. 남이 버리고 간 빈집이었기에 비도 새고 부엌도 제대로 없으니 우선 집을 수리하기 위해 목수를 불렀다. 그리고 그 땅과 집을 우선은 방개 앞으로 사주기로 했다.
과부 아줌마가 매일 와서 목수에게 밥을 해주고 넓은 마당에 꽃들을 심기 시작했다. 채송화와 봉숭아도 심고 맨드라미도 심고 해바라기도 심었다. 그녀가 해주는 음식은 다 너무 맛있었고, 일하러 온 목수도 그녀에게 자꾸만 눈짓을 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여자가 이번엔 목수를 따라갈 것 같다고 방개가 귀띔을 해줬다. 목수의 떡 벌어진 어깨가 여자의 눈길에 맞추어지는 걸 보고 방개가 눈치를 챈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환이 가장 행복한 것은 공순이 일을 하러 간 향숙이가 매일 저녁이면 동네로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들어온다는 것이고, 그 버스가 마을 어귀에 도착할 즈음이면 기환은 먼저 그 버스정류장 근처를 맴돌고 서 있고는 했다. 향숙의 집에 가려면 버스 정류장에서 한 삼십분은 족히 걸어야 했기에 기환이 주로 그녀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는 것이였다. 기환은 별빛속에서 반짝이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며 그 싱싱한 물고기 같은 그녀의 몸짓과 도전적인 그녀의 말이 재미있고 즐거웠다. 하지만 너무 어린 그녀에게 아직은 어른의 행동을 하지는 않으려고 기환은 무척이나 애를 쓰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기환은 자신이 그녀를 잘 지켜줘야 그녀가 크게 성공도 하고 행복해질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방개아저씨를 만나고 과부 아줌마의 밥을 먹고, 차향숙을 만난 기환은 예전의 모든 시름과 고통을 씻어내며 신춘문예 공모에 낼 소설에 매진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쳐 놓은 그물이 없는 건 아니였다. 그것이 아들을 불행하게 하거나 말거나 그의 아버지는 글이나 쓰는 소설가 나부랭이가 판검사를 어찌 따라가랴 하고 무시를 해대며 자기 눈에 못난 아들이 걸려들 그물망을 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