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비인 앞바다의 뻘밭에 살랑살랑 봄바람으로 와 있었다. 기환이 방개가 살던 집을 다 고친 것은 봄이 화사하게 바다 끝을 연분홍빛으로 물든 날이었다. 기환이 생각대로 방개와 기환은 마당을 가운데로 두고 양쪽으로 집을 두 칸을 지었다. 안채에서는 방개가 살고 별채에서는 기환이 소설을 쓰는 작업실을 만들었던 것이다. 안채에는 방 두 칸에 큰 마루가 있었고, 부엌을 만들었다. 그리고 별채에는 서재처럼 꾸민 방하나와 작은 툇마루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붕은 기와를 올리고 가운데 마당에는 온갖 꽃들을 이것저것 심어 놓고 보니 어느 양반집 못지 않은 멋진 집이 되었다.
집도 사람도 수리하기에 따리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를 방개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기환의 간절한 부탁으로 방개 앞으로 집과 토지를 사고 보니 방개가 자신도 이해가 가지 않는 신의 선물이 봄처럼 와 있는 것 같았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집에 방개씨가 주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방개씨 무슨 복이 터진거래유."
젊은 과부가 부러움 반 시샘반으로 입을 다 실쭉이며 잡채에 참기름을 두르고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잡채를 한 접시 가득 담아낸다. 목사와 교인들이 손님으로 와 있고, 기환이 청년이 향숙이도 불러서 그런지 방개는 마당 한가운데서 춤이라고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그런지 이 집에서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가 방개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자 방개는 결국 잔치집에서 사람들의 청탁에 의해서 불렀던 '방개타령'을 스스로 자청하여 구성지게 불러댔다.
작년에 왔던 방개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얼씨구 씨구 씨구 돌아간다, 절씨구 씨구 씨구 돌아간다.
안은 고리는 동구리, 선 고리는 문고리
뛰는 고리는 개구리, 옹달샘에 쌀방개
금빛 같은 쌀방개, 둥실둥실 잘두 논다.
오라는 집은 없어두 갈 집은 많다
문전걸식 열 집에 허기진 배를 못 채우고
작년에 왔던 방개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마당에서 집들이를 하던 목사와 교인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방개가 부르는 일명 '방개타령'에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방개가 신이 나서 어깨를 꼽추처럼 오므리고 등을 움쩍움쩍대며 춤까지 추면서 노래를 부르니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방개의 새로운 면에 놀라기도 하고 그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며
이루어내는 미묘한 인간의 형상을 바라보며 누군들 그가 가진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사람은 왜 거지처럼 불쌍하면서도 부잣집에 맏아들처럼 넉넉한데가 있고,
아무것도 아는게 없는 바보 같은데, 이상하게 세상을 다 알 것처럼 묘한데가 있어."
목사는 아무에게도 털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날 방개가 부르는 노래와 춤을 보면서 방개라는 사람의 존재는 자기도 다 모르고 하나님만 아는 비밀이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 이유는 목사는 처음에 방개를 기도해 주던 날 자신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따스하고 깊고 아름다운 임재가 방개를 붙들고 기도하는 순간 밀물처럼 자신을 덮고 방개를 덮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상처받은 짐승처럼 추위와 고통에 떨고 가난에 지쳐 있었지만, 거기다 깊은 병을 얻어서 떠돌다가 이 비인 바닷가 모퉁이에서 빈 집을 발견하고 홀로 들어와 죽음 앞에 엎드려 있는 한 마리 들짐승처럼 저 사람은 외롭고 고통스러웠는데, 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그리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을 나는 그날 조금은 알 수 있었지."
목사는 방개를 처음 기도해 주던 날을 생각하고는 혼자서 약간은 감격에 겨운 눈물이 눈가에 스쳤다. 한 사람이 살아나고 그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을 살려내서 이런 축제의 마당이 벌어졌다는 게 목사로써도 믿기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서울에서 고시에 실패하고 죽으려고 이 바다를 찾아왔던 기환 청년이 다시 힘을 얻고 방개와 살면서 소설을 쓰기로 했다는 것도 이런 시골 바닷가에는 흔치 않은 대사건으로 느꼈는데, 더구나 기환 청년이 교회에 교육관에서 야학까지 시작한 걸 생각하면 방개가 오고 몇 달 사이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조개를 듬뿍 넣은 수제비와 잡채 그리고 오징어로 만든 전까지 과부가 마음껏 솜씨를 부리고 교인들이 집에서 가져온 해산물등 먹을 것이 많은 집들이에 방개의 노래까지 있으니 사람들은 오랜만에 잔치를 하듯이 즐기며 놀았다. 그러나 그런 바닷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기환은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삶의 역동성을 느꼈고, 자신이 써야 할 글에 모태를 찾아낸 날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써야 할 글에 주인공이 '방개 아저씨'라는 확신을 했다.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에 나오는 꼽추처럼 그런 추한 외모는 아니지만, 방개가 가진 특이한 외모는 그의 소설에 주인공으로 참 어울리는 사람이었고, 새삼스레 방개의 둥그스럽고 커다란 등짝이 그에게는 가난하지만 의리가 있고, 떠돌이로 살면서 외롭지만 누군가를 깊이 사랑할 줄 아는 푸근한 남자로 그 이미지가 딱 맞게 떨어졌다.
기환과 차향숙은 사람들 사이를 몰래 빠져나와 바닷가를 한 없이 걸었다. 둘에 나이차이가 무려 일곱 살이나 차이가 났고, 향숙은 이제 갓 열여덟 살이고 기환은 대학을 졸업한 스물다섯 살의 청년이었지만, 둘 사이의 간격은 나이와는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기환은 향숙을 대할 때면 언제나 숙녀처럼 대해주고 있어서 향숙도 그런 기환을 나이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이 주저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방개는 교인들과 과부 그리고 목수가 다 가고 난 후, 혼자서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마루에 누워서 아주 오랜만에 밤하늘을 보았다. 봄이라서 그런지 먼 은하수가 빛나는 까만 하늘가에도 밝은 빛이 도는 것 같고, 별들도 따스한 봄날 같이 포근해 보였다. 방개는 멀리 온양에 두고 온 엉가와 엉가엄마가 그리고 덕구와 덕구네 아내, 덕구 자식들, 그리고 엉가네 집에 와 있는 덕구의 조카들, 서울로 간 덕구 조카 미자, 공장에 간 큰 조카 영자,
그리고 귀머거리 순자와 그의 어머니, 철없는 순자의 남동생들까지 그들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지금도 바로 저 하늘에 별무리들처럼 자기가 보이는 곳, 바로 옆에서 지금 함께 저 봄밤에 별들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이 가슴에 사무치게 보고 싶고 그리웠다.
'난 여기 비인 바닷가가 내가 죽는 곳인 줄 알었는데, 이곳에서 내가 이런 사람들하고 새로 살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것슈, 하나님은 참 신기하셔유. 그리고 능력두 많으시구유, 내가 워째 이 집에 주인이 되어야 하는지두 지는 물루것는디 참 내 원 어쩌자구 이런 집을 내 앞으로 해 놓은건지. 나 이러다가 여기 뭇 떠나문 안 되는 디유, 하나님, 그런데 요새는 이상하게 어딜 가구 싶지가 별로 안해유, 소설책 읽는게 하두 재미가 들어서유, 아이구 내가 깜빡 했다. 이럴때가 아니지 소설책 읽던거 빨리 연달아 읽어야혀. 뿡뿡 '
방개는 오늘은 하두 많이 먹어서 방귀를 뿡뿡 대구 뀌면서 방으로 들어가 전등을 켜고 책상 앞에 앉았다. 집을 고치면서 획기적인 일은 마을에서 전등을 이 집까지 이어온 일이었다. 방개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이 모든 것이 신기했지만, 책을 읽을 때 꼭 있어야 한다며 기환이가 사다 준 책 볼 때와 잠을 잘 때 켜는 머리에 갓 같은 것을 쓴 전기스탠드 조명이었다.
그 조명불을 켜면 세상에 모든 것은 다 잠든 듯 고요하니 오직 책에 있는 글씨만 책 읽기 딱 좋은 불빛으로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방개가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으며 까무룩 잠든 사이 기환이 청년이 들어와서 소설의 첫머리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소설의 첫머리는 이랬다.
[ 서해바다, 비인 바닷가에 철새들은 겨울을 보내지 않았다. 그 새들은 추위에 날개를 비비고, 진흙이 가득한 검은 뻘밭에 앉아서 멀리 수평선 아래로 잠기는 노을을 보았고, 한 삽을 뜨면 입이 시린 조개들과 맛살들이 어우러진 그 진흙탕에서 새들은 차마 이것들을 두고 떠나야 할 겨울을 보내지를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서해의 진흙뻘에는 방개아저씨라는 등이 수북하니 둥글고 큰 남자가 갯벌에서 혹한의 날에 얇은 무명옷하나를 걸치고 철새들과 함께 먹이를 찾고 있었다. 그는 맛조개 하나를 들고 철새들에게 던져주자, 수십 마리의 철새들이 그를 향해 일제히 입을 벌리며 쫓아오고 있었다. 남자가 새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남자는 그 바다에 새들에게 말을 걸으며 같이 맛조개를 캐고 그걸 나눠 먹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
기환은 소설의 제목을 <철새와 함께 사는 남자>로 정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은 이상할 정도로 너무 잘 써지기 시작했고, 기환은 그 봄이 가기 전에 단편소설 한 편을 끝냈다. 기환은 각기 다른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소설을 여러 편 투고하기로 마음을 먹고 잠도 아끼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부가 방개에게 가르쳐준 음식을 방개 아저씨는 곧잘 만들어 내서 방개아저씨의 음식 솜씨는 날로 늘어만 갔고, 아저씨가 해주는 음식들은 정말 기환의 입에도 꼭 맞았다. 과부도 종종 들려서 세 사람은 삼총사가 되다 시피했다.
아직은 옆마을에 사는 홀아비 목수를 남편으로 들이지는 않았는지 과부는 목수와의 사랑이라든지 연애얘기라든지는 그들에게 와서는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을에서는 벌써 두 사람의 연애가 시끄럽다고 어느 날 교회에서 점잖은 장로가 눈을 흘리며 기환에게 귓속말을 해줬다.
기환이 신춘문예에 보낼 작품을 쓰느라 향숙과도 자주 만나지를 못했지만, 향숙은 어느 사이 주산과 부기를 속전속결로 배워서 큰 회사에서 말단 경리가 되었다. 그리고 기환이 연 야학에는 한 번도 빠지지를 않고 수업을 하더니 대학 검정고시까지 다 마쳤다. 향숙은 어리지만 자기의 학벌이 기환에게 딸리는 연애는 하고 싶지 않다고 기환에게 못을 박았다.
겨울 철새들이 비인 앞바다 갯벌에서 떼를 지어 먹이를 찾던 추운 겨울날, 그 겨울의 가장 혹독한 추위에 서 있던 신년 새해 첫날 양력으로 1월 1 일자 신문마다 '신춘문예' 등단 기사들이 첫 지면을 대문짝만 하게 장식했다.
기환의 가슴은 신문을 안고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기환은 그 해 신춘문예에서 중앙의 최고의 일간지 두 곳에서 소설로 동시 당선이 되었다. 그는 하루 아침에 샛별처럼 빛을 내며 문단의 혜성이 되었다.
연일 신문사마다 중앙문단의 신인 등장이라며 기염을 토해내는 기사들로 그를 인터뷰했는데, 그는 중앙신문의 일간지 두 군데서 당선을 했고, 지방 일간지에서 또 한 군데가 당선이 되었던 터라 그는 일약 '신춘문예 3관왕'이란 큰 제목을 달고 중앙에 있는 일간지와 지방신문사에서 대서특필 박기환의 이름은 맹위를 떨쳐버렸다.
그리고 <철새와 함께 사는 남자>란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이 방개아저씨라는 인물에서 영감을 얻었고, 작가인 저자가 고등고시 실패 후 바닷가에 자살을 하러 갔다가 만난 떠돌이 남자의 이야기를 쓴 것이라는 소설의 내용이 신문에 나오자 기자들이 장항선의 거의 끝 역에 있는 서천역에까지 카메라를 들고 연신 쫓아 내려왔다.
"올해는 마량리 동백숲에 동백꽃이 지난해 보다 훨 이쁘구먼유."
카메라 기자들이 방개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하자 방개 아저씨가 한 말은 엉뚱한 동백꽃 이야기였다. 정말 정초에 핀 비인 앞바다의 붉은 동백꽃은 그해에는 유달리 색도 진하고 잎도 싱싱했다. 한 사람의 문인이 그곳에서 태어난 것을 동백꽃들이 더 화사하게 웃으며 반기는 듯하다고 기자들은 방개의 말을 아름답게 서술해서 기사에 올렸다. 방개도 기분이 어찌나 좋은지 한산의 소곡주 한잔에 얼굴이 동백꽃처럼 붉어지고 환해졌다. 그리고 술이 술술 넘어가듯이 방개의 말도 왠지 기자들 앞에서 술술 나오는 게 아닌가.
그러나 정작 기뻐할 줄 알았던 기환의 아버지는 기환의 '신춘문예 3관왕'도 기뻐하질 않았고, 다시 기환에게 고시 공부를 강요하는 편지와 함께 그에게 고시 패스를 하지 않으면 재산을 한 푼도 상속하지 않겠다는 으름장을 써서 보냈다. 그리고 소설가가 된 기환에게 아버지가 법과대학 교수라는 것을 일체 기자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먼저 기환에게 부모 자식 지간에 해서는 안 되는 비정한 소리로 선수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