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제자야, 쌤이 끝까지 응원할께.

너의 극작과 졸업 작품집을 축하하며

by 권길주

사랑하는 제자 쑥아!!

밖이 몹시 춥구나.

바람 소리도 너무 스산하고 이 야산의 쌤 작업실에서 한 밤중에 듣는 겨울바람 소리는

어찌 이리도 마음까지 시린지 모르겠구나.


그러나 조금 전 너에게 날아온 카톡 사진 한 장이 내 마음을 따스하게 노란 불빛으로 물들여준다.

네가 벌써 졸업이라니.... 시간이 참 빠르구나.

물론 예술전문대학이란 특성으로 2년 만에 졸업이긴 하지만 엊그제 네가 입학한 것 같은데

벌써 졸업이라니 시간이 화살처럼 빠르다는 것이 실감 나는구나.

제자 쑥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고 싶은 마음이지만 이곳에 편지를 쓴다.

제자에게 네 이야기를 선생님 브런치에 작품집 사진과 함께 올려도 되느냐고 물으니 그러라고 허락을 받긴

했지만, 난 아직도 나의 사랑하는 제자 쑥만 생각하면 눈물이 날 때가 있다.

한동안은 그 녀석(여학생인데 덩치가 커서 내가 가끔씩 녀석이란 표현을 한다) 때문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아이를 만난 것은 그 아이가 고 2 여름 방학이 오기 전 6월 초쯤으로 기억된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정확하게는 4년이 되었다.

나는 그때 세종에서 교육청에서 하는 공교육에 어떤 프로그램에서 '방송작가'반 수업을 하느라 인천에서 세종으로 이사를 해서 일 년 가까이 되었던 때였다.

금강이 바라보이는 아파트에서 아침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풍경을 보면서 나는 나 나름 많은 상처들을 씻어내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코로나로 모든 세상이 뒤죽박죽 되어가던 때 나 역시 세종에서 인천까지 다니던 교회를 계속 다닐 수가 없어서 세종으로 교회를 옮기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교회를 나가기로 했던 첫날에 나는 쑥의 어머니를 교회 안내데스크에서 처음 만났다.

쑥의 어머님은 나에게 직업을 묻다가 내가 작가라는 말을 했더니 그럼 내 딸이 작가가 꿈인데 딸을 다음 주에 예배 끝나고 한 번 만나 달라고 부탁을 하시기에 난 그러자고 약속을 했다.

처음 본 쑥은 내가 본 여학생 중에서 몇 번째 안 가는 고도비만의 여학생이었다. 너무 비만이 심해서 난 처음부터 작가로는 불가능할 거라는 판단도 서슴지 않고 했었다.

저 몸으로는 글을 쓰기는 힘들 거 같다. 그러나 상담하는 내내 아이는 뚱뚱한 몸을 가누지도 못하면서 진지했고, 일단 부딪쳐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더 난감한 거는 내가 거의 써보지 않은 수필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며 수필로 대학을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성적도 거의 하위권인 데가 몸의 건강 상태도 숨을 쉬는데도 거친 숨소리가 나는 알레르기 비염 때문에 아이는 늘 피곤함과 땀으로 온몸이 젖은 것 상태로 날 찾아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아이를 두 번 정도 만나보니 무엇인가를 꽉 움켜쥐는 어떤 힘 같은 것이 있었다.

저 힘이 펜을 쥐는 힘이라면 저 아이는 언젠가는 작가로 꿈을 펼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나는 두 번째 만남에서 찾았던 것이다.


그래서 일단 아이를 도와주기로 했다. 만나서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무슨 책들을 읽었는지부터 찬찬히 살피고 읽은 책의 목록들을 적게 하고, 토론을 먼저 많이 해보니 그 아이가 무엇가를 움켜쥐는 힘은 바로 독서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독서와 토론을 집중적으로 하는 학원에서 2천 권이 넘는 책을 읽었는데, 주로 고전문학을 섭렵했고, 철학책도 꽤 읽은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책은 내가 읽지도 않은 책도 있었고, 어느 책은 나보다 훨씬 책을 깊이 있게 읽은 것 같아서 나는 이 아이를 만나면서 차츰 아 사람이 처음에 외모로 모든 것을 섣부르게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더구나 본인이 긴 글을 써본 게 얼마 없다고 해서 수필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을 내 생각과 판단이 잘 못 되어 있을 수 있다고 다시금 아이의 가능성을 진단해 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나는 세종시내 구석에 조그맣게 논술 교습소를 열었고, 쑥과 쑥의 친구 한 명 그리고 또래의 2남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학원이던 교습소던 나는 전혀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우연하게 나와 인연이 2학생 3명을 데리고 교습소의 문을 열게 것이다.


아이들은 2에서 금세 3 되었고, 다들 입시가 발등에 불이였지만, 솔직히 세명의 아이들이 성적이 너무 하위권이었고, 부모님들도 기대를 하지 않는 상태이다 보니 이래 저래 두 명씩 늘어가는 교습소에 중학생, 초등학생에게도 관심을 가질 수가 없는 형편이다 보니 내가 가르치는 데는 한도가 있었고,

역시 가르침에 능력도 없던 터라서 공교육에서 만났던 아이들에 비해서 진도도 안 가고 실력도 늘지를 않는 느낌이었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와서 학원의 분위기도 좋고 그러면 좋겠다는 욕심도 들고 여러 가지로 한계점만 느껴졌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아이들은 나와 점점 너무 친해지고, 성적도 부쩍 오르기 시작한 시점은 여름방학을 기점으로 해서였다. 거의 꼴찌 수준이었던 아이도 6등급까지 성적이 올라가고 하는 보고 역시 독서의 힘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언제나 돌발적 상황은 있기 마련이다. 실기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밤중까지 글을 쓰고 아이의 글 수준이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 싶었는데, 제자 쑥의 집에서 아버지가 완강하게 아이의 진로를 반대하고 나셨다.

절대로 작가가 되는 길을 가면 안 된다고 하시는 거였다.

아이의 아버지는 심각하게 다투기 시작했는데, 드디어 어느 아버지는 아이에게 따귀를 때리면서 절대로 길을 허락할 없다고 완강하게 나오시고 아이는 죽어도 길을 가겠다고 대들면서 집안은 한차례 풍파가 왔다.

아이는 자기 말로는 어릴 때도 맞아서 매집이 있다며 정도로 내가 물러날 수는 없다고 교습소에서 찾아와 눈물을 훔쳐냈다. 그리고 본인은 반드시 작가가 돼서 아버지에게 자기가 작가로 성공은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입술을 깨물었다.

남들은 수시에 합격 헤서 웃고 떠들 때 아이는 실기를 눈앞에 두고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로 인해 모든 인생이 꺾이는 고비를 겪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성적이 대단히 좋아서 아버지가 원하는 법조계로 있는 확률이 있는 대학은 원서도 없는 형편이니 아버지는 차라리 재수를 하더라도 작가가 되는 절대 보낼 없다고 하시는 거였다.

아이는 눈물바람 콧물바람을 밤마다 쏟아내며 교습소에서 나와 10시까지 글을 써댔다. 나도 아이에게 햄버거나 똑 복기를 사주며 우리는 둘이서 그렇게 울며 입시를 준비했다.

그리고 아이는 원하던 대학의 실기에서 한번 떨어지고, 별로 원하지 않던 지방 대학에 문창과에 합격을 했다. 그러나 아이는 자기가 서울로 대학을 가야만 아버지를 벗어나서 글을 있으니까 무조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고, 어찌어찌하여 아이는 서울 대학의 극작과에 실기로 합격을 하였다.


정말 우리는 그날 그다지 넓지도 않은 교습소에서 손을 마주 잡고 깡충깡충 뛰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 장하다, 장해. 극작과라니....... 네가 극작은 거의 써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냐

기적이 따로 없구나. ~ 기분 좋다 "

다른 기적은 바로 아이의 아버지께서 아이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극작과를 붙었다고 하자 엄청 좋아하시면서 딸의 작가의 길을 허락하셨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쑥은 서울에 있는 예술대학에 극작과에 합격을 했지만, 나는 아이가 거의 학기 이상을 심한 트라우마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할 지경인 것을 알지 못했다. 아이는 입시로 인한 아버지의 반대와 상처로 심하게 정신적인 몸살을 앓게 되었고, 마음의 상처가 학교에 가서 금방 적응을 못하고 자꾸만 집에서 나가기도 싫고 힘들어서 한기를 거의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를 못했다고 했다.

그러던 아이가 2학기부터는 몸도 마음도 회복이 되었다고 하면서 정말 열심히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지금은 웹소설을 공부하는 아카데미까지 병행하며 학교 졸업 작품을 쓴 것이다.

졸업 작품을 썼는지 못썼는지 그것에는 관심은 없다.


다만,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나의 사랑하는 제자가 이제는 입시에 매달린 처참한 아이가 아니라

작가의 꿈을 조금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초보작가로 성장해 간다는 것이 너무 뿌듯하고 기특하다.

그리고 아이의 몸과 마음에 있는 상처들이 하나씩 아물까 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역시 작가의 길을 반대하시던 아버지와 지금도 편치 않은 상태이긴 하지만,

작가의 길이 돈이 되는 글쓰기만 해야 한다면 무슨 의미가 그리 클까?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아버지에게 따귀를 맞을 수도 있고, 가족들에게 외면당하는 중년이나 노년을 보낼 수도 있다는 결의가 없이 어찌 이 길을 가랴.

그보다 혹독한 가난이란 삶의 무게까지 견뎌야 한다면 그것이 풍요로운 시대에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러나 내가 선택한 작가의 길에서 내가 줄이....... 세상 어딘가에서 빛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면

그것은 결코 한 줄이라 해도 , 영화의 대사 줄이라 해도, 드라마의 장면이라고 해도

우리는 일을 쉬면 안 될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제자 쑥아,

그래서 너의 상처가 별이 되어 빛나는 조그만 졸업 작품집에

쌤은 곳에서나마 축하의 팡파르를 울려주고 싶구나.

조용한 시골의 야산 전원주택에서 혼자서 글을 쓰면서 어두컴컴한 야산 위에 떠오른 총총한 밤하늘의 별들을 모아서 너에게 축복의 세리머니를 날려 보낸다.


"사랑한다 제자야, 쌤이 끝까지 응원해 줄게, 대문호가 되길 바란다.

그때 쌤이 아무리 늙었어도 살아만 있다면 나도 너의 옆에서 대문호의 스승이 되는

꿈을 꾸면서 오늘 잠들어도 되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