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과 연애 사이 에서 있었던 일.

by 권길주

사랑에는 사랑이 부르는 자리가 있는 것 같다.

그 자리를 피하고 나면 더 이상은 그 자리에 사랑이 오지 않는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사랑의 자리는 수없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이 남녀의 사랑이었던, 인간사의 사랑이었던 그 사랑의 자리는 수 없이 많았던 것 같다.


그중에 하나가 아주 오래전 내가 어느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해수욕장에 놀러 갔을 때 있었던

일이었다.

나는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인데 그날 바다를 무서워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없이

바닷속을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얼마 후 정말 생과 사의 기로에 서고 말았다.

바닷물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 몸은 한 없이 빠져들었고 나는 살려달라는 외침 한마디만 하고

물속으로 꼬르륵하고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러기를 두 번 정도 했는지 기억은 없지만, 저쪽에서 같이 놀던 내 친구들의 당황한 목소리와

같이 놀러 간 남자친구들의 큰 외침이 있고 나서 누군가 내 목을 끌어안고 내 몸을 때리는 것 같기도 하고

물에 처박는 것 같기도 한 정말 어떤 상황인지 분별은 전혀 안되지만,

난 무조건 살기 위해 나를 건지러 온 그 남자의 온몸을 부둥켜안고 미친 듯이 몸부림을 친 것 같다.


내가 눈을 뜬 것은 물속에서의 필살기가 끝나고 얼마가 지나서였다.

눈을 떠 보니 어떤 남자가 날 인공호흡도 하고 난리가 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다름 아닌 내가 마음속으로 좋아하던 남학생이 아닌가?


그 남학생이 물에 빠진 나를 건지기도 하고 인공호흡까지 했다는 것은 정신이 완전히 돌아온 후에야

알게 된 것이다.


앗, 뜨거워라

정말 나는 낮이 뜨겁고 창피하고 죽을 지경이었다.

수영은 1도 못하는 내가 깊은 물에 들어간 것도 모자라서 날 구하러 온 그 남학생을 어찌나 세게 붙들었는지

정말 그날 우리는 둘 다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는 것이고,

그 남학생이 내 코를 잡고 입술과 코에 인공호흡이란 것을 했다니

난 정말 쥐구멍이 어딘가 싶고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를 모를 지경이 된 것이다.


그런 데다가 난 아무도 모르게 그 남학생을 속으로만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조각같이 잘생긴 외모에 수줍음이 많았던 남학생이었고,

말이 없는 그 성격이 난 사실 마음에 너무 끌렸던 터라 그저 속으로만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어찌하여 이런 황당한 사건이 생긴 걸까 하고 나는 이박 삼일의 일정 속에서 서해에 지는 그 아름다운 절경의

노을 속에서 설레는 감정만 가슴에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행을 갔다 와서 그 남학생은 몇 번의 만남 속에서 나에게 약간의 감정을 나타냈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내 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 가장 친한 친구와 그 남학생을 엮어주려고 하는 강력한 친구가 그 옆에 붙어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내 친구도 조금은 싫지 않은 표현을 자꾸 하는 것이었다.


난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아무 말도 못 하고 혼자서 여러 정황과 분위기를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그에게 나를 더 이상은 따로 집에 데려다주지는 말라고 말하며

그에게 거절의 말을 건넸다.


그리고 내 가장 친한 친구들과 그 해 여름 서해의 변산반도를 다녀온 후로 이렇게 저렇게 모이던

그 남자친구들과의 자리를 나는 서서히 피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내 친한 친구와 그 친구도 결국은 연애를 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는 말에

나는 혼자서 냉가슴을 앓았던 그 시간이 후회가 되었고,

좀 더 적극적으로 나에게 구애를 하지 않은 그 남자친구를 조금은 원망을 했다.


그러나 더 세월이 지난 후 나는 그 남자친구가 어느 거리에서 결혼한 모습으로 아들을 안고 지나가다가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것을 보고

나 역시 너무 놀라서 한 동안 서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쳐다만 보았다.


우리는 인사도 못하고 그냥 스쳤을 뿐인데,

나는 왜 사랑이 찾아오면 그 사랑을 잡지를 못하고 피하기만 하는 걸까 하고

그날 밤에 후회 아닌 후회를 했다.


젊은 날의 사랑은 그래서 가슴에 남아 있을 때 더 아쉬운 것일 지도 모른다.

내가 만약에 내 친구들에게 그를 좋아한 그 당시 마음을 드러냈다면

우리들의 우정은 그때 어찌 되었을까 싶다.


때때로 사랑과 우정은 선택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싶은 것이다.

그러나 난 지금도 물에 빠진 나를 구해준 구세주 같은 그 남학생을 이렇게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가 없었다면 난 그날 서해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신은 나에게 그런 고마운 남자친구에게 사랑하다 헤어지게 만들지 않고,

목숨을 구해준 고마운 남자친구로만 기억하도록 거기까지만 내 마음속 사랑을 지켜주신 것은 아닐까....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남녀의 사랑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사랑이라고 믿었는데, 그것이 사랑이 아닌 경우는 또 얼마나 많던가.


그러나 약간의 순수한 감정이 스치는 것으로 끝나버린 사랑에는 늘 첫눈 같은 그리움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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