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짝꿍에게
초등 짝꿍 너에게 쓰는 편지
사각사각 눈을 밟은 소리가 어찌나 예쁘게 들리던지....
저수지를 돌아서 버스를 타러 나가는 길이 이렇게 아름답던 날이 있었던가 싶구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다니던 저수지 길
나는 우리 동네에서 이 길을 제일 좋아하는데, 이 길도 나를 사랑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 길에서 가끔은 울었고, 가끔은 너무 기뻐서 집에까지 달려가던 적도 있었던
추억과 향수와 애정이 깃들어 있는 길이란다.
너와 초등학교 때 헤어지고 대학 1학년때 다시 만난 곳도 이 길 위를 달리던 시골 버스였지.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을 가고 대학 1학년때 만났는데도 너는 나를 버스에서 알아보고 말을
걸었던 것 같은데, 그날이 벌써 몇십 년 전이라니...... 정말 세월이 놀랍구나.
초등학교 2학년 때 내 짝꿍이었던 너는 우리반 반장이였고, 무척 잘생긴 남자애였지.
귀공자 같은 시골 남자애가 내 짝꿍이었다니 나랑은 영 안 어울리는 모습 같기도 해.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세련미도 없고, 그다지 예쁘지도 않고, 그저 동글동글한 키 작은 여자애였지.
너는 대학을 미대에서 도예과로 편입해서 다니며 나에게는 이렇게 말했지.
난 고모 때문에 서울에 전학을 가게 된 건데 다시 부모님이 계신 시골로 내려와서
도자기를 구우면서 살 거라고.
시골버스에서 너를 처음 다시 만났을 때 네가 들고 있던 미대생의 그 화구통과 화첩이 얼마나 부럽던지
나는 그저 기가 죽어 있었는데, 너는 미대에서 도예과로 가면서 아예 도공이 될 거라는 말에....
나는 네가 왜 멋진 화가가 되지 않고 도예가가 되겠다는 건지 이해도 잘 안 되고 해서
그저 묵묵부답으로 그러냐고 했지.
그리고 너는 내게 나중에 내가 도자기 구우면 네 시를 그 도자기에 새겨주겠다고 해서
나는 그건 좋은 생각이다 하고 맞장구를 쳐주었지.
그리고 너는 군대를 가고 도예과를 졸업하고 방황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방황 끝에 시인이 되고 방송작가 되었고,
나는 세상에 취하여 사느라 네 도자기에 내 시를 쓰게 해 주겠다는 약속 따위는 잊고
어느 날 네가 몇 년 만에 전화가 왔는데,
나는 아주 타락한 사람이 되어서 너의 마음에 상처 주는 말을 했었지.
세상에서 출세한 사람이 더 좋아 보이고 도예가 정도는 너무 시시해 보이는
말도 안 되는 발상으로 네 꿈을 무시하는 말을 서슴없이 했었지.
그래서 그랬나, 가끔씩 너에 대해서 들려오는 소식은 네가 도예가와는 전혀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얘기를 듣게 되면 내 마음이 참 슬프고 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는 했어.
지금은 네가 건물주가 되었다거나 돈을 많이 버는 커피 사장이라고 해도
나는 네가 왜 도예가를 버리고 돈 버는 길만 가는지....
주책없이 왜 안타까운 마음은 드는 건지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어.
네가 돈 많이 벌어서 부자로 잘 살면 그냥 축복만 해주면 되는데 네가 세속에서 살면 안 되는데
세속에서 사는 도인이라도 되는 듯이 난 너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는 해.
나도 시를 버리고 오랫동안 시인의 길에서 아주 떠나 외도를 했었지.
그러고 겨우 찾은 시 쓰기가 몇 년 전부터 인 것 같아.
어쩌면 내가 시를 발표하는 것은 요즘 브런치 스토리에서 아침에 주로 발행하는 '새벽에 쓰는 시'
가 전부야.
물론 가끔 문예지에 시를 발표할 때도 있긴 하지만
내가 시인이란 걸 아는 편집장님도 거의 없는 셈이지.
나는 네가 초등학교 때 서울로 전학을 가던 날,
너는 너무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날개 달린 새처럼 느껴졌어.
그리고 나는 정말 꿈도 희망도 없는 시골뜨기 아이로 생각이 되었었고.
그런데 그런 내가 상상도 못 한 방송국에 작가가 되어서 십오 년이란 세월을 서울에서 살았으니
나도 내 속에 무엇이 숨겨져 있었던 아이였었나 싶을 정도야.
그런데 그건 꿈이었고, 나는 그 꿈을 꾸었고, 꿈이 이루어진 것이지.
그런데 그 꿈의 대가는 나에게는 너무 큰 거였어.
상처와 아픔도 참 많았거든.
다시 너를 만나면 너에게 숨겨진 그 재능과 꿈이 되살아나길 바란다고 한 번쯤 말해주고 싶어.
친구야, 이제는 돈도 벌 만큼 벌었으니 도공이 되어서 네 멋진 도자기에
내 시 한 줄만 써 주라....
새가 눈 위에 발자국을 찍어 놓고 가듯이
우리의 인생에 예술의 흔적을 남기고 간다면 얼마나 아름답겠니.
하얀 눈이 내린 날 교회로 가는 길 위에서 잠시 너를 생각했어.
그리고 스무 살에 너랑 같이 탔던 시골 버스에서 다시 너를 생각했어.
네가 한국인의 혼을 담은 도예가가 되면 참 좋을 것 같다고.
그래서 그 도자기의 아름다운 그릇이나 도예품에 한국적인 미를 가장 아름답게 그려내는
그런 멋진 도예가로 네 인생의 후반이 다시 시작된다면
나는 정말 너를 위해 기립박수를 쳐줄 거라고.
어느 작가의 책 제목처럼 "16살, 네 꿈이 평생을 결정한다."는 말도 있지만,
아직은 인생의 중반을 사는 우리가 꿈을 다시 펼치는 것도 얼마나 큰 용기겠니.
그런데 나는 무모하게도 몇 년 전에 내가 쓰고 싶던 소설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고
시인에서 방송작가에서 다시 소설가로 변신을 했어.
쓰고 싶은 것이 있어서 쓰는 거지만,
새로운 분야를 갈 때마다 참 허적거리며 힘들어하기도 해.
왜냐하면 나도 돈 벌고 싶고, 세속에서 더 출세하고 싶었거든.
그게 내 본심이었거든.
그래서 나도 예술가로 작가로 끝까지 살면서 좋은 글 자신이 없어 사실은....
그래도 가보고 싶은 거야.
미지의 새길을.
새가 흰 눈 밭에 이토록 아름다운 발자국을 남기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