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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May 15. 2024

13화. 9개월의 지독한 카드빚 청산 이야기


다시 가계부를 쓰기 시작할 때, 마음속 가장 큰 짐은 여기저기에서 마이너스된 것을 한 곳으로 몰아놓은 카드값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질렀던 강의 쇼핑에다 카드 명세서를 가계부로 퉁쳐버린 지난날의 잘못된 선택이 부른 참사다. 뭐가 그리 불안하고, 뭐가 그리 귀찮았을까.



카드값이 처음부터 300만 원이었던 건 아니다. 식비 만으로는 소비 통제가 되지 않아서 카드값이 조금씩 늘었다 줄었다 하길 반복했다. 덜컥 겁이 났던 건 주식의 조정구간처럼 살랑살랑 흔들다가 500만 원 찍고, 더 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통제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빚도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할 필요 없다 싶었지만 아직도 나에게 빚을 통제할 능력이 남았는지는 더 이상 장담할 수가 없었다.



정말 지독한 카드값. 

1000만 원도 아니고 고작 300 만원인 주제에 왜 안 줄어드는 건가!



소비 단식의 이유가 카드값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가장 큰 이유이기는 했으니 허리띠를 졸라매고 줄여야만 했다. 그런 이유로 지난 9개월 동안 눈만 뜨면 소비 결정의 기로에서 '쓸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했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말은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더 벌고,

아끼고,

모으고.



소비를 줄이는 것만으로 도저히 안 되겠다 생각한 건 5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싱글이 아니다 보니 온 가족의 소비를 모두 통제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기도 했고, 돌아서면 이런 저런 기념일들이 다가와서 지독한 300만 원의 탈출은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다. 더 벌어야만 했다. 결국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봤는데 다행히 계약이 잘 된 덕분에 순조롭게 수입을 늘릴 수 있게 됐다.




'심리계좌'



마음속에는 돈에 대한 심리적 회계 장부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더 벌어도 지키고, 모으는 건 힘들다고 한다. 지난날 내가 더 벌어도 지키고 모으지 못했던 것 역시 바로 마음속 회계장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다음 달 강의료 입금액을 생각하면 희망사항이던 지출리스트는 어느새 필수 항목이 되어있곤 했다. 



'날씨가 많이 더워졌으니까 강의 나갈 때 입을 슬랙스 하나는 더 있어야지'

'매일 아침 과일식 한지 200일이 넘었으니까 이제 낡은 믹서기 버리고 새거 하나 사야 되겠다'

등등..



강의료가 들어오면 바로 카드값을 다 상환했지만 반쪽짜리 체크카드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집은 상환과 동시에 다음 달 카드값이 쌓이고 있었다. 물론 더 이상 많이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그 사이에 신학기도 있었고, 부모님 생신과 결혼기념일 등 가족 행사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비정기 지출은 카드로 결제가 되었다. 



한 10년 전인가. 그때도 카드값 때문에 힘들 때가 있었는데 수입이 늘어나면 바짝 줄여서 현금베이스로 갈아타겠노라 결심했었지만, 안타깝게도 한 달도 성공하지 못하고 쫓기듯 신용카드 생활을 이어나갔다. 신용카드 결제일 변경만 간신히 한 후로 다시는 크게 현금으로 피봇을 할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반드시, 기필코, 꼭 신용카드를 청산하고 말겠다는 마음이었다.











비고정 지출에서 식비만큼은 예산에서 사용하는 습관을 들이고 가족들도 식단이나 외식비 지출 상한선에 많이 익숙해졌다. 한 달 전부터는 주간 결산도 하기 시작했다. 물론 허술하기 짝이 없지만. 이유는 비정기 지출도 점차 예산을 세워서 지출하는 시도를 해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야 내 마음속 심리계좌에서 함부로 돈을 인출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한 번씩 뭐가 자꾸 사고 싶어 졌다. 머릿속에 이미 '나 다음 달에 조금 여유 있어'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는지 자꾸 쿠팡에 들어가고, 어느샌가 택배가 왔다. 이럴 땐 악마의 로켓배송이다. 그리고 가계부를 써보면 정말 5만 원은 우습게 사라진 걸 발견하곤 한다.



주간결산에 분류를 제대로 한 건지 도통 알 수 없지만 우선 하다 보면 알게 되겠지,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 하면서 쓰고 있는데 뒤죽박죽이긴 해도 꽤 효과가 있다. 무지출 데이는 좀처럼 나오지 않지만 적어도 힘들게 번 한 달 치 강의료가 심리계좌에서 인출되지 않도록 하는데 큰 도움이 되곤 한다. 그 덕분에 큰 지출을 피해 이번달 모든 카드값을 선결제하고 남은 돈도 지켰다.(그렇지 않았으면 분명 비싼 믹서기를 결제했을 지 모른다)



물론 아직 5월이 절반이나 남았고, 20일 이후에 자동출금 될 항목들이 적지 않아서 남은 돈으로 지출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지 짐작하기 힘들지만 다음 달 이월 될 카드값이 1원도 남지 않았다는 것은 그동안 반 포기상태로 신용카드를 꺼내 들던 나에게 가능성의 희망을 보게 해 준다.



하나라도 제대로 지켜내려고 매일같이 애를 썼지만 소비에 있어 하나 쉬운 결정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애씀이 모여 마이너스에서 0원까지 만들고나니 아무것도 없는 통장인데도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빚을 정리하니 빛이 보인다다음 달은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지독한 카드 빚을 다시 만드는 일이 없길. 0원을 만드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음을 잊지않고, 돈을 지키는 연습을 꾸준히 이어나가 보자!















*마이너스 플러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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