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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Jun 18. 2024

15화. 카니발 때문에, 소맥 때문에.

다 핑계고, 나 때문이다.


10일 30만 원의 식비 예산에는 쌀을 제외한 모든 식재료 구입과 외식, 카페 이용 지출이 포함된다. 아침 과일식을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요즘은 아침 식단도 신경 써야 하고, 주말 외식도 빠질 수는 없으니 잘해 먹으면서 지출 방어도 하려면 부지런을 떨 수밖에 없다. 주말에 집밥을 해 먹거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음식을 먹게 되면 외식비 지출이 줄어들어서 여유가 생기지만 그런 날이 많지는 않고, 오히려 살짝 방심하는 순간 5만 원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다. 바로 지난주 일요일이 그런 날이었다.




남편이 타던 차를 여러 사정상 새 차 같은 중고차로 바꾸게 되었는데, 근처에 드라이브라도 해보자고 나선 것이 시작이었다. 3인 가족이라도 남편이 큰 차를 선호하는 편이라 SUV는 타봤지만 이번에는 7인승 카니발을 사게 되었고, 아들과 나는 여유로운 뒷자리에 반해서 기분이 한껏 올랐었다. 우리가 구입한 새 차 같은 중고차의 자랑을 해보자면 2천만 원 이상의 내부 인테리어가 된 차로 뒷자리 앉은 사람은 안마를 받으며 누워서 갈 수 있다는 것인데, 아들과 나는 차에 타서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잠이 들었다. 승차감이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전에 타던 차는 뒷자리가 포장마차 의자게 가까웠기에 카니발의 뒷자리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잠이 드는 바람에 생각보다 조금 더 멀리 드라이브를 가게 되었고, 근처에서 저녁을 먹게 됐다. 어차피 외식을 할 생각이었지만 도착한 곳이 하필(?) 고기 삼합집이라 이번주 남은 돈으로 외식하기에 돈이 부족할 것 같았다. 하지만 드라이브로 신난 가족들 앞에서 돈이 모자라서 먹을 수 없다는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아직 정신을 더 차려야 하나보다;;) 










오후 5시. 이제 막 영업이 시작된 식당에는 손님이 없었지만 우리 동네에도 있는 프랜차이즈니까 음식맛에 실패는 없겠지 싶었다. 주문을 하고 나니 아르바이트생이 고기, 야채, 해산물이 담긴 접시를 들고 와서 세팅을 했다. 기본 찬이 깔리고 나니 이번에는 사장님이 나선다. 토치를 들고 치맛살을 현란하게 익히며 우리들 접시에 초밥과 본인이 2년간 개발했다는 유자단무지를 얹어주며 차례로 먹어야 할 삼합의 조합까지 알려준다. 알고 보니 여기가 프랜차이즈 본점인 데다가 사장님이 근래에 본 적 없는 친절함에 입담까지 겸비한 곳이 아닌가!




"오늘 저희 식당 첫 손님이니까 치즈구이 서비스로 드릴게요!"

"우와~ 감사합니다^^ 맛있는데 친절하시기까지 하네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지만, 치즈구이 서비스라니.

사장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고, 우리 부부는 이미 정신이 아득해진 모양이다.



"혹시 맥주 한잔 하시나요? 제가 소맥 전문인데, 첫 손님한테 맥주는 서비스로 드립니다! 한 잔 하실래요?"

"아쉽지만 차를 가지고 와서요~"



정중히 거절했지만 사장님은 아쉽다며 두어 번을 더 권했고, 남편은 본인이 운전해서 가면 되니 나보고 기깔나는 소맥 한번 마셔보라고 거드는데 겨우 잡고있던 정신줄을 놓고 넘어가고 말았다. 



"좋은 데이, 카스, 테라(맥주잔) 조합을 <좋카테>라고 해요!" 뒤늦게 알아듣고 키득거리는데, 사장님은 발음을 잘해야 한다며 능청스럽게 소맥을 만드신다. 본인만의 제조 방식에 뭔 기계를 넣어 두어 번 튕기고 나니 거품이 확 올라오는데 사장님 퍼포먼스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크림 맥주 같은 부드러움에 나도 모르게 원샷, 또 원샷. 그렇게 세 잔을 마시고 후식까지 먹은 후에야 우리는 그 식당을 나설 수 있었다.









무슨 정신에 식사를 한 건지.

평소 우리 가족의 식사시간보다 훨씬 빠른 저녁 식사를 마치고 얼떨떨한 기분에 계산대로 갔다.



"맛있게 드셨나요?, 치즈구이와 맥주는 서비스고 금액은 86,000원입니다.^^"

(소맥을 마셨는데, 맥주가 서비스니 소주는 계산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네~ 친절하시고, 고기도 맛있게 구워주셔서 잘 먹었습니다"


"한 달안에 분명히 한번 더 오시고 싶으실 거예요. 조심히 가세요~"











남은 돈의 액수는 우리 가족 모두가 알고 있었는데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을 퍼다 나르는 사람처럼. 결국 모자란 금액을 다음 주 예산에서 꺼내 써야만 했다.




'남편이 그 식당 가자고 할 때 조금만 더 둘러보고 적당한 곳으로 가자고 할걸.'

'소맥은 시키지 말걸'

'괜히 서비스받아서 미안한 마음에 후식도 3인 메뉴를 다 시켰네..'

'그러지 않았으면 15,000원은 아꼈을 텐데..' 


자꾸 찝찝하고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사람 마음은 참 간사하다. 분명히 맛있었고, 서비스도 받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할수록 손해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음식점 사장님 잘못은 아니다. 소화가 되면서 내 정신도 다시 돌아왔을 뿐. 저녁 식사의 모든 과정들이 너무 감정소비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어쨌든 이미 떠나간 돈은 붙잡을 수가 없고 지출의 대가를 치르는 수밖에. 



어제는 지갑에 있는 동전을 긁어모아 1200원짜리 두부 한 모를 사서 두부조림을 해 먹었고, 오늘은 100원도 쓰지 않았다. 지갑에 있던 동전들을 모아 두부 모를 사는 상황이 되고 보니 존재감 없던 동전들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1200원이 이렇게 크게 와닿을 줄이야. 이번주 반찬이 없어도 군말 없이 먹어야 하는 아들 역시 1200원의 가치를 실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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