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한국의 현대건축 (상)

기능이 모든 것을 대신하던 시대의 풍경들

by 찬 용

도시는 어느 순간, 사람이 머무는 장소에서 사람이 스쳐 지나가는 풍경으로 바뀌었다. 느린 시간이 남아 있던 근대의 골목을 지나 현대의 중심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마치 다른 시대, 다른 속도의 공기 속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하게 된다. 빛은 여전히 도시의 건물면 위에 떨어지지만, 그 빛이 오래 머물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도시는 더 밝아졌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더 어두워지고, 거리의 표면은 더 반짝이지만, 그 안쪽은 더 얕아졌다.


우리는 언제부터 건축을 감정이 아닌 기능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을까. 언제부터 도시는 ‘살아보는 곳’이 아니라 ‘사용하는 구조물’이 되었을까. 어쩌면 그 시점은 정확하게 특정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제 우리가 서 있는 이 도시를 조금만 둘러보면 건축이 감정을 잃어버린 과정이 곳곳에서 조용히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기능이 모든 것을 설명하던 시대의 도시에는 감정을 붙잡을 결이 적다. 돌의 결은 사라지고, 나무의 촉감은 유리 뒤로 숨고, 사람의 시선이 잠시 머무를 작은 그림자조차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지워졌다. 도시는 이제 목적지를 빠르게 잇기 위한 통로가 되었고, 건축은 그 통로의 매끈한 면을 완성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 사람의 마음보다 사람의 이동 속도가 중요해지고, 삶의 깊이보다 삶을 조직하는 기능이 먼저 배치된다.


그러나 이런 변화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한국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했고, 그 빠른 변화 속에서 건축은 자연스럽게 기능과 효율이라는 이름을 빌려 자신의 감정을 잠시 접어두어야 했다. 기능이 필요 없는 건축은 없었지만, 기능만으로 설명되는 건축은 어딘가 공기처럼 비어 있었다. 공기는 가볍지만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그 비어 있음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도시의 얼굴이었다.


나는 이 장에서 바로 그 ‘비어 있음’을 하나씩 들춰보고 싶다. 도시의 표면에서 감정이 빠져나간 순간들을
특별한 비판 없이, 그저 찬찬히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그 안을 꾸며냈던 기능의 논리가 어떻게 도시를 만들었고,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조금씩 얇게 만들었는지 우리가 지나온 건축들을 통해 다시 바라보고 싶다.


그 첫 장면은, 역설적으로 오래된 건물이지만 가장 현대적 욕망이 먼저 밀려들었던 장소에서 시작된다. 재개발의 첫 신호처럼 보였던 곳. 파괴와 계획, 속도와 욕망이 서로 다투던 자리.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상처와 흔적을 품고 남아 있는 곳. 바로 세운상가다.


it14 세운전자상가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

도시 한복판에서 세운상가는 늘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낡았지만 완전히 늙지 않았고, 거대하지만 어딘가 비어 있는 것 같고, 수많은 길이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호하다. 세운상가를 바라보면
한국 현대도시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그 단락을 그대로 펼쳐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세운상가는 처음부터 거대한 꿈이었다. 전쟁의 폐허를 복구하고 도시를 수직으로 정리해 ‘미래의 길’을 만들겠다는 계획. 동서로 길게 뻗은 이 거대한 건축은 기능과 효율, 도시 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당시 사람들이 품었던 희망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이기만 한 건 아니었다. 희망과 속도, 그리고 재개발의 그림자가
서로 겹치고 닿아 있는 건축이 바로 세운상가였다.


이곳의 구조는 단순히 상업을 위한 설계가 아니었다. 도시는 세운상가를 통해 ‘기능’이라는 것을 제대로 배웠다. 위로는 상가, 아래로는 도로, 양쪽으로는 보행데크, 그리고 그 안을 채우는 수백 개의 점포들. 도시는 이 거대한 매스 안에서 흐름을 조직하는 법을 익혔다. 사람이 가야 할 동선, 물건이 움직여야 할 경로, 빛이 닿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들. 도시는 기능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사고방식을 세운상가를 통해 처음으로 실험했던 셈이다.


그러나 기능이 늘 마음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운상가를 걸어보면 기능은 곳곳에 있지만 감정은 어디에도 오래 머물지 못한다. 보행데크에서 바라본 도시는 넓지만, 그 넓음은 이상하게 텅 비어 있다. 점포마다 켜진 형광등은 밝지만, 그 밝음은 사람의 얼굴을 따뜻하게 비추지 않는다. 모든 것이 명확하고,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지만 정작 그 안에 남아야 할 ‘감정의 흔들림’은 거의 없다.


세운상가는 완성되지 않은 꿈처럼 보인다. 계획은 있었다. 기능도 있었다. 기술도 있었다. 하지만 건축은 기술과 기능만으로 충만해지지 않는다. 삶은 조밀한 틈에서 피어나고, 감정은 예측할 수 없는 여백에서 생겨난다. 세운상가의 구조는 거대했지만, 그 여백을 충분히 남기지 못했다. 그것이 이 도시가 ‘기능 중심의 첫 장면’을 남기게 된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운상가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재개발의 상흔이 남아 있고, 수많은 점포가 살아 있고, 시간이 요청한 틈새가 곳곳에 남아 있다.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진실한 도시의 초상이 여기에 있다. 이 건축은 실패와 성공의 경계에 서 있으며, 그 경계에서 현대도시는 자신을 비춰보게 된다. 건축이 감정을 잃어가는 과정은 바로 이렇게 시작되었다. 너무 많은 것을 정리하려 하고, 너무 큰 것을 한 번에 이루려 했던 시절. 도시는 기능을 배웠지만, 그 기능은 자연스레 감정을 뒤로 밀어냈다.


세운상가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한국의 현대건축이 처음으로 ‘도시의 속도’를 배우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 속도는 여전히 도시를 밀어붙이고 있고, 도시는 여전히 그 속도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속도 속에서 감정이 얼마나 빠르게 지워지는지 세운상가는 누구보다 솔직히 말해준다.


세운상가는 그래서 시작점이다. ‘기능이 모든 것을 대신하는 시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첫 흔적이 가장 명확하게 남아 있는 건축. 우리는 이 건물을 통해 현대도시의 마음이 비워지는 과정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it14 63빌딩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

63빌딩을 처음 마주하면 늘 한 가지 감정이 먼저 떠오른다. ‘아, 이 시대는 정말 높이를 믿었구나.’ 유리와 금빛 파사드로 빛나던 이 건물은 한국 현대건축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자 답이었다. “얼마나 높이 오를 수 있는가?” 도시는 그 질문의 무게를 그대로 받아안고 하늘로 향하는 욕망을 눈앞에 세워두었다.


63빌딩은 단순한 랜드마크가 아니었다. 기술이 자신감을 배우던 시절, 경제가 속도를 얻던 시절, 국가가 미래를 정의하던 시절의 상징이었다. 그 높이는 도시가 품고 있던 열망을 그대로 드러냈고, 도시의 마음은 그 높이를 따라 위로, 위로 끌려 올라갔다. 문제는 그 위로 향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감정은 점점 더 얇아졌다는 것이다.


건물 안을 걸으면 높음의 기능은 압도적으로 느껴진다. 빠르게 이동하는 엘리베이터, 규모를 자랑하는 로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기 위한 전망 공간, 그리고 그 전망을 배경으로 놓인 음식점과 행사장들. 모든 것은 ‘경험’보다 ‘위치’를 강조한다. 마치 우리가 느끼는 감정보다 우리가 어느 높이에 서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듯이.


63빌딩은 처음부터 편안함을 위한 건축이 아니었다. 이 건축은 시대가 원하는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지어졌고, 그 이미지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를 그리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였다. 사람들의 발걸음보다 국가의 발걸음이 더 크게 울리던 시절. 높이는 국가의 위상처럼 여겨졌고, 건축은 그 위상을 시각화하는 도구였다.


그렇다고 63빌딩이 차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건물에는 묘한 애틋함이 있다. 거대한 욕망을 그리던 시대가 남긴 흔적처럼, 지금 바라보면 약간은 불안하고, 약간은 과장된 당시에 대한 감정이 옅게 스며 있다.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중 하나로 소개되었지만, 지금은 도시 속에 조용히 스며든 오래된 상징물처럼 서 있다. 시간은 높이에 대한 감정조차도 둥글게 깎아냈다.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것이다. 높이를 향한 시대는 결국 감정을 가벼운 것으로 만들었다. 높은 곳은 멀리 볼 수 있지만, 멀리 본다는 것이 곧 깊이 느낀다는 뜻은 아니다. 63빌딩의 전망대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면 모든 것이 작아지고, 모든 것이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그 단순해진 풍경 속에는 사람의 감정이 닿을 만한 구석이 많지 않다.


건축이 위로 향하던 시절, 도시는 아래를 잊었다. 땅 위의 걸음, 낮은 창가에 머무는 빛, 작은 가게의 간판과 골목의 공기, 그 모든 것은 효율과 규모, 그리고 이미지의 뒤로 밀려났다. 63빌딩은 그 시대의 끝을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 시작을 또렷하게 보여준 건축이었다.그러나 이 건물도 결국 시간 앞에서 자신의 의미를 조금씩 재해석하게 된다. 지금의 63빌딩은 과시보다는 기억을 담은 장소에 가깝다. 가족 단위의 관람객, 서울을 처음 방문한 여행객들, 한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는 연인들. 높이는 여전히 높지만, 그 높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많이 달라졌다. 욕망보다는 추억, 기능보다는 감정이 더 많이 드러난다.그래서 63빌딩은 ‘기능과 이미지가 건축을 압도하던 시대’의 상징이자, 동시에 ‘그 시대가 남긴 감정의 빈자리’를 보여주는 건물이다.


그 빈자리를 우리는 뒤늦게 들여다보고 있다. 도시는 한때 높은 곳을 원했지만, 지금의 우리는 오히려 그 높이가 남긴 비어 있는 마음의 공간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63빌딩은 그런 의미에서 한국 현대건축이 한 번 크게 숨을 들이마셨던 순간이다. 그리고 그 숨을 내쉬는 과정은 다음 건축들에서 더 크게,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it14 삼성동 코엑스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


COEX를 처음 걸어보면 도시가 하나의 장치처럼 느껴진다. 지상과 지하, 외부와 내부, 빠른 흐름과 머무름이 층층이 쌓여 서로 영향을 주는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단절되어 있다. 지금의 COEX는 단순한 쇼핑몰이 아니라 한국 현대도시가 기능과 속도를 극한까지 밀어넣어 만들어낸 거대한 ‘체험 구조물’이다.세운상가가 도시의 뼈대를 바꾸려 했던 시대의 건축이었다면, COEX는 도시의 ‘사용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낸 공간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길을 걷기보다는 경험을 소비하고, 속도를 느끼며, 의도된 동선을 따라 흘러간다.

지하의 끝없는 동선, 전시장이 열릴 때마다 달라지는 인파의 물결, 호텔과 컨벤션센터가 만들어내는 도시적 긴장감. 모든 것이 기능적이고,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그 연결은 어디까지나 ‘사용’을 위한 연결이다.


COEX의 지하를 따라 걸으면 도시라는 존재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감정의 빈 공간을 지울 수 있는지 어떤 의미론적 장면처럼 느껴진다. 광활한 통로는 사람을 빠르게 이동시키기 위해 조명과 천장을 조절하고, 공기는 늘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한다. 외부의 날씨나 시간은 이 공간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다. 도시는 이곳에서 실내라는 거대한 세계를 통해 자연과 분리되고, 시간과 분리되고, 감정과도 조금씩 분리된다.그렇다고 COEX가 차갑기만 한 건 아니다.


도시는 이 거대한 매스 안에서 새로운 즐거움과 흥분을 배운다. 사람들은 복잡한 감정보다는 즉각적인 만족과 편리한 경험을 선택하고, COEX는 바로 그 ‘즉각성의 시대’를 담은 건축이다.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쇼핑, 동선과 연결된 카페와 레스토랑, 전시장에서 시작해 영화관으로 이어지는 흐름. 도시는 이 구조 안에서 경험을 효율적으로 소비하는 법을 익혀 간다.


하지만 이 체계적인 흐름은 사람의 감정을 오래 머물게 하지는 못한다. COEX의 공간은 넓지만 깊지 않고, 다양하지만 고유하지 않다. 기능이 모든 것을 대신하는 순간 공간은 작게 분절되고, 감정이 스며드는 틈은 줄어든다. 우리는 COEX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체험하지만 이 공간에서 ‘감정의 흔적’을 남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COEX는 도시가 어떻게 감정을 얇게 만들며 속도와 소비 중심의 건축으로 옮겨갔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상으로 올라와 삼성동 무역센터 일대를 바라보면 도시는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고층 건물들이 빽빽하게 자리한 블록, 넓게 펼쳐진 대로변, 안쪽에서 끝없이 연결되는 지하 네트워크. 삼성동 일대는 도시의 표면과 내부가 서로 분열된 상태로 공존하는 공간이다. 바깥의 거대한 빌딩군은 마치 도시의 힘과 규모를 상징하는 오브제처럼 보이지만, 그 안쪽에서는 끊임없는 소비와 이동이 시스템처럼 돌아간다.


무역센터는 COEX와 달리 더 수직적이고 더 기계적인 건축이다. 안쪽의 수많은 회의실, 국제회의가 열릴 때마다 움직이는 인파, 직선적인 복도와 통제된 출입 시스템. 여기서 감정은 기능에 철저히 종속된다. 미묘한 여백은 거의 없고, 사람은 기능적 흐름의 일부로만 존재한다. 이곳에서는 도시가 ‘사람의 마음’보다 ‘사람의 움직임’을 더 중요하게 느끼던 시대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난다.


COEX와 무역센터 일대는 한국 현대도시가 속도와 효율, 경험과 소비를 중심으로 자신을 재구성하던 시기의 정수와도 같다. 이곳에서 도시는 감정을 잠시 잊고 기능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공간은 거대해졌고 도시는 장치처럼 변했으며 사람들은 그 장치의 내부를 걸으며 ‘도시란 이런 것이다’라는 인식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이 거대한 장치 안에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의외로 단순하고 얇다는 것을. COEX의 길을 빠르게 걸을수록, 무역센터의 회색 복도를 지날수록, 도시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편리함만으로 충분한가?” “기능만으로 도시는 완성될 수 있는가?”그리고 우리는 곧 다음 장면에서 그 질문의 답을 더 분명하게 확인하게 된다. 도시의 기능과 욕망이 만든 또 다른 건축. 한국 현대도시에서 가장 넓고, 가장 많이 반복되었지만, 정작 가장 감정을 잃어버린 공간. 바로 아파트 단지다.


it14 서울시 내 아파트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

서울의 동쪽, 한강 남쪽을 따라 걷다 보면 도시의 표정이 전환되던 시절의 흔적이 불쑥 나타난다. 대치동과 압구정, 그리고 잠실로 이어지는 초창기 아파트 단지들은 한국 현대도시가 본격적으로 ‘주거의 체계화’를 배워가던 장면을 그대로 품고 있다. 이 지역들은 단순히 아파트가 모여 있는 곳이 아니라, 도시가 ‘집’이라는 개념을 기능으로 번역하고, 그 기능을 사회 전체의 규범으로 만들어가던 시대의 출발점이자 상징이었다.


아파트는 처음부터 한국 도시의 정답이 아니었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가 폭발적으로 밀려오던 당시, 도시가 사람을 받아들이는 속도보다 사람이 도시로 흘러드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주택난은 일상이 되었고, 도시는 더 이상 땅 위에 개별적인 집을 지을 여유가 없었다. 사람은 공간을 필요로 했고, 도시는 그 요구에 가장 빠른 방식으로 응답해야 했다. 그 결과 도시는 수직으로 올라가고, 그 수직의 공간에 삶의 모든 기능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대치동과 압구정의 아파트 단지들은 그 변화의 첫 번째 실험장이자, 도시가 ‘삶을 조직하는 방식’을 배워가던 시절의 교과서와도 같았다.


이 초기 아파트 단지들을 관찰해보면 우선 도시의 표면적 효율이 가장 눈에 띈다. 동과 동 사이의 간격을 최적화하고, 햇빛과 바람이 최대한 들어오도록 건물들의 배치를 조정하는 일, 단지 전체의 조경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도로와 주차 공간을 체계적으로 구성하는 일. 모든 것은 기능적으로 정리되어 있고, 단지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설계도처럼 보인다. 이곳에서 도시가 배운 것은 ‘효율적인 삶’이라는 개념이었다. 집은 편리해야 했고, 사람은 그 편리함을 따라가면 되었다.


하지만 그 편리함은 동시에 사람의 감정을 얇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아파트의 평면은 단순하고 규격화되어 있었고, 거의 모든 세대가 비슷한 구조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개의한 방들의 크기와 위치는 다를 수 있었지만, 평면의 논리는 변화가 거의 없었다. 누군가의 삶이 특별해질 여지는 많지 않았고, 공간 속에서 발현될 개인의 감정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오래된 아파트의 모습, 회색빛 외벽, 반복되는 숫자와 동의 이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비슷한 놀이터. 그 모든 것은 기능적이지만 동시에 감정을 비워내는 풍경이었다.


대치동과 압구정의 아파트 단지는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라는 구조물이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삶을 정의하는 틀’로 확장되기 시작한 최초의 무대였다. 공간이 사람을 담아내는 역할을 넘어, 사람의 일상과 감정을 규정하는 영역으로 들어가던 시점. 아파트는 도시의 주거 방식을 혁신했지만 그 혁신은 동시에 감정의 다양성을 조금씩 지워갔다. 서로 다른 삶을 가진 사람들이 비슷한 평면 안에서 비슷한 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것은 편리함의 확장과 동시에 감정의 획일화를 의미했다.


초기 아파트 단지의 공원이나 산책로를 걸어보면 도시는 기능적인 질서를 기가 막히게 유지해왔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건물들, 사람이 지나가면 약간 흔들리는 오래된 나무들, 그리고 놀이터에 남아 있는 잔잔한 소리들. 이 모든 장면은 익숙하고 편안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균일하다. 기억은 남지만, 그 기억이 특별한 감정의 여백을 남기지는 않는다. 도시는 이 단지들에서 기능과 안전,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감정의 공간을 지워나가는 방식을 완성해버렸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 단지들 역시 시대가 지나면서 또 다른 감정을 품게 되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혁신이었지만, 지금은 한 시대의 풍경으로 남아 어떤 사람들에게는 추억과 그리움, 어떤 사람들에게는 익숙함과 안정의 감정으로 다가온다. 감정은 공간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그 감정의 결이 매우 얇아졌을 뿐이다. 도시의 감정이 부드럽게 흔들리던 풍경이 아니라, 단단하게 눌러 담긴 구조 속의 잔잔한 떨림. 아파트 단지는 그런 방식으로 한국 도시의 감정을 재편해왔다.


대치동과 압구정의 초기 아파트 단지는 단순히 오래된 고급 주거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곳은 도시가 한 시대의 욕망과 필요에 따라 삶을 효율적으로 조직하려 했던 흔적이며, 그 조직화 과정에서 감정이 어떻게 얇게 분해되고 다시 어떻게 작은 흔적들로 남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풍경이다. 아파트 단지는 한국 도시의 가장 넓게 퍼진 시스템이 되었고, 그만큼 도시의 감정을 가장 넓게 얇게 만든 공간이 되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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