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 잘 알려지지 않은 근대 거장들 (상)

우리는 왜 같은 이름들만 반복해왔는가

by 찬 용

근대 건축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언제나 비슷한 이름들로 시작한다.
교과서와 다큐멘터리, 전시와 강의는 반복적으로 몇몇 거장을 호출하고, 그 이름들은 어느새 근대 건축 그 자체를 대표하는 기호가 되었다.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이들은 분명 위대한 건축가들이고, 그들의 작업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문제는, 근대 건축이 이 몇 개의 이름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고 믿게 된 순간부터 시작된다.


근대는 단일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스타일도, 하나의 해답도 아니었다. 근대는 오히려 질문들의 집합에 가까웠다. 산업화와 도시화, 전쟁과 대량생산,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사회 구조 속에서 건축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침묵할 것인가, 건축은 개인의 예술인가 사회의 장치인가, 공간은 기능을 담는 그릇인가 아니면 기억과 감정을 축적하는 장소인가.


하지만 우리가 익숙하게 소비해온 근대 건축의 서사는 이러한 질문들을 점점 단순화해왔다. 근대는 ‘합리적이고 기능적인 건축’으로 요약되었고, 감정과 기억, 윤리와 사회에 대한 고민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났다. 그 결과 근대는 차갑고 비인간적인 시대로 오해되었고,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근대 이후”라는 말로 그 시대를 쉽게 넘어가 버렸다.


이 장은 그 익숙한 서사를 잠시 멈추기 위해 존재한다. 여기서 다루는 건축가들은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이름들이 아니다. 어떤 이는 유명한 건축가의 그늘 속에 가려졌고, 어떤 이는 급진적이었다는 이유로 역사에서 밀려났으며, 또 어떤 이는 조용히 자신의 질문을 반복했을 뿐 화려한 언어를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근대를 형식이 아니라 태도로 이해했던 건축가들이었다.


아돌프 로스는 건축이 말하지 않아야 할 것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했고, 한네스 마이어는 건축가 개인의 표현을 지워내며 사회의 구조를 설계하려 했다. 에리히 멘델존은 근대를 정적인 질서가 아닌 에너지와 속도의 문제로 읽어냈고, 요제프 프랑크는 완벽한 합리성 대신 불완전한 일상을 근대 안에 끌어들였다. 알도 로시는 도시를 기능의 집합이 아닌 집단의 기억으로 바라보며, 반복과 유형이라는 언어로 근대를 다시 사유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하나의 답이 아니다. 오히려 이 장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얼마나 끈질기게 같은 질문을 반복했는가에 있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각 건축가를 하나의 인물로 소개하지 않는다. 대신 두 개의 건축물을 통해, 동일한 질문이 서로 다른 조건 속에서 어떻게 다시 등장하는지를 살펴본다. 하나의 건축물은 우연일 수 있지만, 두 개의 건축물에서 반복되는 태도는 그 건축가의 본질에 가깝다.


이 장은 근대를 미화하기 위한 장이 아니다. 또한 잊힌 이름들을 발굴해 또 다른 ‘거장 목록’을 만들기 위한 장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왜 특정한 이야기만을 반복해왔는지, 그 반복이 무엇을 지워왔는지를 묻기 위한 장이다. 근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난 시대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질문들이 처음으로 명확해졌던 시기였다.


어쩌면 우리는 근대를 너무 빨리 이해했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너무 쉽게 넘어가 버렸는지도 모른다. 이 장에서 다시 만나는 근대의 건축가들은, 우리가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들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이 장은 그 질문들을 다시 꺼내어, 오늘의 건축과 오늘의 사회 앞에 놓아두기 위한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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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로스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호출되는 문장은 여전히 “장식은 범죄다”일 것이다. 이 문장은 너무 강력해서, 오히려 로스를 단순한 금욕주의자이자 장식 혐오자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로스를 이 문장 하나로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그가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질문을 놓치게 된다. 로스가 문제 삼았던 것은 장식 그 자체가 아니라, 건축이 무엇을 말해야 하고, 무엇을 말하지 말아야 하는가라는 윤리의 문제였다.


로스가 활동하던 20세기 초 빈은 화려함과 과잉의 도시였다. 역사주의 건축은 과거의 양식을 반복적으로 차용하며 도시를 장식했고, 건축은 점점 표면의 문제로 소비되었다. 로스는 이 흐름 속에서 불편함을 느꼈다. 그는 건축이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과장될수록, 오히려 삶과 멀어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장식을 없애자고 말한 것이 아니라, 건축이 침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침묵은 결핍이 아니라 선택이며, 윤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로스에게 건축은 예술 이전에 삶의 배경이었다. 건축은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위와 관계를 조용히 받쳐주는 존재여야 했다. 이 때문에 그의 건축은 외부에서 보면 종종 무표정하고 차갑게 보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외부는 도시를 향한 태도이고, 내부는 삶을 향한 배려였다. 이 분명한 이중성은 로스 건축의 핵심이자, 근대 건축이 가졌던 또 하나의 가능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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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 완공된 슈타이너 하우스는 로스의 태도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당시 빈의 주택들은 장식과 상징으로 자신을 과시했지만, 이 건물의 정면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곡면 지붕 아래에 거의 장식이 없는 흰색 입면. 주변 건물들 사이에서 슈타이너 하우스는 튀지 않기보다는 오히려 말을 아끼는 것처럼 보인다.


이 건물에서 중요한 것은 ‘없음’이다. 장식이 없다는 사실이 아니라, 굳이 말하지 않겠다는 선택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로스는 도시를 향해 자신의 미학을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건축이 도시의 질서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배경으로 물러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 침묵은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도시를 존중하는 적극적인 윤리였다.


그러나 슈타이너 하우스를 단순히 외관만으로 이해하면 로스를 절반만 본 셈이 된다. 내부로 들어서면, 이 건물은 전혀 다른 리듬을 가진다. 층고와 공간의 연결, 시선의 이동은 매우 섬세하게 조율되어 있다. 외부에서 감춘 표현은 내부에서 삶의 질로 환원된다. 로스에게 장식을 제거한다는 것은 공간을 비워내는 일이 아니라, 삶을 위한 여지를 만드는 일이었다.


슈타이너 하우스는 근대 건축이 도시 앞에서 가질 수 있는 태도를 묻는다. 건축은 언제나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가? 아니면 때로는 물러서서 침묵할 수 있는가? 로스는 후자를 선택했고, 그 선택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질문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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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 하우스가 도시를 향한 침묵의 선언이라면, 1930년에 완공된 뮐러 하우스는 로스의 공간 사유가 가장 정교하게 구현된 결과물이다. 이 건물에서 로스는 ‘라움플란(Raumplan)’이라 불리는 개념을 완성에 가깝게 다듬는다. 라움플란은 평면을 층 단위로 쌓는 방식이 아니라, 공간을 높이와 관계의 단위로 조직하는 사고다.


뮐러 하우스의 내부를 걷다 보면, 공간은 일정한 층으로 나뉘지 않는다. 각 공간은 용도와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높이를 가지며, 계단과 시선의 이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거실과 식당, 사적인 방과 공적인 공간은 물리적으로 분리되기보다, 미묘한 높이 차와 시퀀스로 구분된다. 이는 단순한 공간 기법이 아니라, 삶의 위계를 공간으로 번역한 결과다.


로스는 모든 공간이 같은 방식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삶에는 명확한 층위와 질서가 존재한다고 보았고, 건축은 이를 숨기지 말아야 한다고 믿었다. 뮐러 하우스는 이 믿음을 공간으로 설득한다. 이 집에서 사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공간의 흐름에 따라 행동하고, 관계 맺는 방식을 조정하게 된다. 건축은 지시하지 않지만, 분명히 영향을 미친다.


이 건물에서 중요한 것은 화려함이나 새로움이 아니다. 뮐러 하우스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낯설지 않은 집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평범해 보이는 공간 속에는, 건축이 삶을 어떻게 조직할 수 있는가에 대한 매우 근본적인 고민이 담겨 있다. 로스는 여기서도 외부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내부에서 조용히 삶의 질서를 구축한다.


아돌프 로스의 건축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감정은 안도감에 가깝다. 그의 건축은 압도하지 않고, 설득하지 않으며, 감탄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그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스스로의 리듬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이것은 근대 건축이 차갑고 비인간적이었다는 통념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다.


로스가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건축은 언제나 더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덜 말해야 한다는 것. 모든 건물이 랜드마크가 될 필요는 없으며, 모든 공간이 메시지를 외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오늘날의 도시는 너무 많은 건축이 동시에 말하려 드는 탓에, 정작 삶의 목소리가 묻혀버린 상태에 가깝다.


로스의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책임이었다. 그는 건축가의 자아를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건축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역할과 윤리를 끝까지 고민했다. 이 태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낯설고, 그래서 더 필요하다. 아돌프 로스는 근대를 차갑게 만든 인물이 아니라, 근대가 인간을 배려할 수 있는 방법을 가장 먼저 고민한 건축가 중 한 명이었다.


이 장에서 로스를 다시 불러오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지금 다시 질문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이미 그의 건축 속에서 조용히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근대는 끝난 시대가 아니다. 로스가 선택했던 침묵은, 여전히 오늘의 건축 앞에서 유효한 질문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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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네스 마이어는 근대 건축사에서 가장 의도적으로 지워진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바우하우스의 두 번째 교장이었고, 역사적으로 보면 발터 그로피우스와 미스 반 데어 로에 사이에 위치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축사 서술에서 마이어는 잠시 언급되거나, 아예 건너뛰어진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마이어는 건축을 예술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이어는 건축가의 개성, 조형적 표현, 미학적 완성도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가 보기에 건축은 개인의 창작물이 아니라 사회가 작동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 그는 “건축은 삶의 조직이다”라고 말했고, 이 문장은 그의 전부에 가깝다. 이 급진적인 태도는 당시에도 불편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오히려 너무 정확해서 외면당한 질문에 가깝다.


마이어가 활동하던 시기는 근대 건축이 본격적으로 제도화되던 시점이었다. 바우하우스는 예술과 기술의 결합을 표방하며 새로운 건축가상을 만들어가고 있었지만, 그 내부에는 여전히 ‘작가로서의 건축가’라는 이상이 남아 있었다. 마이어는 이 지점을 정면으로 문제 삼았다. 그는 건축가의 표현 욕망이야말로 근대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잔재라고 보았다. 건축은 개인의 감정이나 스타일을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집단의 삶을 합리적으로 조직하는 도구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그를 고립시켰다. 정치적으로도 급진적이었던 그는 바우하우스에서 쫓겨났고, 이후 소련으로 건너가 주거와 교육 시설을 설계했다. 그의 작업 중 상당수는 실현되지 않았거나, 정치적 이유로 기록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마이어는 이 장에 반드시 등장해야 하는 인물이다. 그는 근대를 미화하지 않았고, 건축가를 영웅으로 만들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끝까지 묻는다.


건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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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사우에 위치한 연방노조학교(ADGB School)는 한네스 마이어의 사상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 건축물이다. 이 건물에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이 없다. 상징적인 형태도, 인상적인 파사드도 없다. 대신 이 건물은 철저하게 기능과 관계, 사용자의 동선으로 조직되어 있다.


이 학교는 노동자 교육을 위한 시설이었다. 마이어는 이 프로그램을 단순한 학교로 보지 않았다. 그는 이 공간을 학습, 숙박, 식사, 휴식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집단 생활의 장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건물은 자연스럽게 여러 동으로 나뉘고, 각각의 기능은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강의실은 집중을 위해 배치되었고, 숙소는 효율적인 휴식을 고려해 계획되었으며, 공용 공간은 집단적 교류를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결정 과정에서 건축가의 개성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마이어는 설계 초기부터 통계, 동선 분석, 사용 패턴을 철저히 조사했고, 그 결과를 그대로 공간에 반영했다. 이 건물은 “아름답게 설계되었다”기보다는, 잘 작동하도록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


연방노조학교를 걷다 보면, 공간은 사용자를 압도하지 않는다. 대신 사용자는 자신도 모르게 공간의 논리에 적응하게 된다. 이곳에서 건축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삶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으로 존재한다. 마이어는 이 건물을 통해 건축가의 자아를 거의 완벽하게 지워냈고, 바로 그 점이 이 건축을 근대 건축사에서 가장 불편한 사례로 만든다.


연방노조학교가 교육이라는 집단 프로그램을 다룬 사례라면, 데사우의 라우벤강 주거는 마이어가 주거를 어떻게 사회적 구조로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핵심 사례다. 이 주거 단지는 복도를 외부로 노출시킨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이유는 조형적 실험이 아니라 철저한 기능적 판단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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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어에게 주거는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 구성원이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한 기본 장치였다. 라우벤강 주거는 복도를 통해 모든 세대가 동일한 조건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고, 채광과 환기, 유지 관리 측면에서도 효율을 극대화했다. 여기에는 ‘이 집이 멋있어 보이길 바란다’는 의도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이 주거 단지에서 중요한 것은 평등성이다. 모든 세대는 거의 동일한 크기와 구조를 가지며, 공간적 위계는 최소화된다. 이는 단순한 기능주의가 아니라, 주거를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시도였다. 마이어는 건축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 방식은 조형적 혁신이 아니라 구조의 재편이었다.


라우벤강 주거는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다소 건조하고 비인간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건축이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주거는 어디까지 개인의 영역이며, 어디부터 사회의 책임인가? 우리는 주택을 소유의 대상으로만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마이어는 이 건물을 통해, 주거를 다시 사회적 문제의 중심으로 끌어올린다.


한네스 마이어의 건축이 주는 감정은 솔직히 말해 편안하지 않다. 그의 공간은 따뜻한 위로나 감성적 울림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우리를 구조 앞에 세운다. 이 건축은 묻는다. 당신은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건축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조건을 제시할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건축가의 이름과 스타일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다. 건축은 종종 브랜드가 되고, 이미지는 실제 공간보다 더 중요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마이어의 건축은 거의 반동처럼 느껴진다. 그는 건축가가 사라질수록, 건축이 사회에 더 가까워진다고 믿었다. 이 믿음은 지금의 건축 현실과는 정반대에 서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마이어는 다시 읽힐 필요가 있다. 그는 근대를 차갑게 만든 인물이 아니라, 근대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인물이었다. 그의 건축은 실패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우리가 끝까지 회피해온 질문의 형태다. 건축은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이 장에서 마이어를 다루는 이유는 명확하다. 로스가 건축의 윤리와 침묵을 이야기했다면, 마이어는 그 다음 단계에서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끝까지 밀어붙인 인물이다. 근대는 여기서 더 이상 미학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구조의 문제이며,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그 선택을 끝내지 못한 채, 그의 질문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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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건축을 떠올릴 때 흔히 연상되는 이미지는 정제된 직선, 합리적인 평면, 감정을 배제한 기능주의다. 이 이미지는 근대 건축을 이해하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중요한 것을 놓치게 만든다. 근대는 결코 하나의 성격을 가진 시대가 아니었고, 감정을 배제한 건축만이 존재했던 것도 아니다. 에리히 멘델존은 이 단순화된 서사에 균열을 내는 인물이다.


멘델존은 근대를 차갑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근대가 지닌 불안과 에너지, 속도와 긴장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건축가였다. 그는 기능과 합리성이라는 언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시대의 감정을 건축으로 옮기려 했다. 그래서 그의 건축은 종종 과장되고, 역동적이며, 때로는 불안정해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멘델존의 진가다. 그는 근대를 안정된 체계로 포장하지 않고, 움직이고 흔들리는 상태 그대로 드러냈다.


멘델존의 생애 역시 근대의 불안정성과 닮아 있다. 독일에서 활동을 시작했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를 피해 망명해야 했고, 이후 영국과 팔레스타인, 미국을 오가며 작업을 이어갔다. 그의 건축은 한곳에 정착하지 않았고, 하나의 스타일로 고정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불안정한 궤적 속에서도 일관된 태도는 분명하다. 그는 언제나 건축을 정지된 형태가 아니라 흐름으로 이해했다.


멘델존에게 건축은 구조물이라기보다 사건에 가까웠다. 공간은 고정된 질서가 아니라, 사람이 움직이고 도시가 작동하는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장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그의 건축은 기능주의와 표현주의 사이에 위치하지만,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귀속되지 않는다. 그는 근대를 양자택일의 문제로 보지 않았고, 오히려 그 긴장 자체를 건축의 동력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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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츠담에 위치한 아인슈타인 타워는 멘델존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다. 흔히 이 건물은 표현주의적 조형의 대표작으로 소개되지만, 단순한 형태 실험으로만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 이 건물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관측하기 위한 천문학 연구 시설로, 시간과 에너지, 운동이라는 개념이 건축의 핵심 주제가 된다.


아인슈타인 타워의 형태는 마치 내부에서 힘이 솟구쳐 오르며 외피를 밀어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직선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곡면과 연속된 흐름이 건물 전체를 감싼다. 이 형태는 장식이 아니라 은유에 가깝다. 멘델존은 과학 이론을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과학이 제기한 세계관의 변화를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이 건축에서 중요한 것은 안정감이 아니다. 오히려 이 건물은 어딘가 불안해 보이고, 완결되지 않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불안정성은 실패가 아니라 의도다. 멘델존은 근대를 완성된 체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얼마나 큰 에너지를 품고 있는지를 건축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아인슈타인 타워는 근대 건축이 감정을 배제했다는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이 건축은 차갑지 않다. 오히려 지나치게 뜨겁고, 긴장으로 가득 차 있다. 멘델존은 이 건물을 통해 근대가 지닌 흥분과 불안을 동시에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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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타워가 실험적 상징이라면, 쇼켄 백화점은 멘델존의 사상이 현실 도시 속으로 내려온 사례다. 이 백화점은 상업 시설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프로그램을 다루지만, 멘델존은 이를 단순한 소비의 공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는 백화점을 근대 도시의 속도가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장소로 보았다.


쇼켄 백화점의 입면은 수평선이 강조된 곡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곡선은 단순히 시각적 효과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의 흐름, 자동차와 보행자의 이동, 시선의 속도를 건축적으로 번역한 결과다. 건물은 서 있지 않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멘델존은 정적인 파사드 대신, 도시의 리듬에 반응하는 외피를 선택했다.

이 건축에서 흥미로운 점은, 실험적인 언어가 일상 프로그램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쇼켄 백화점은 기능적으로도 매우 효율적이며, 내부 동선 역시 명확하다. 멘델존은 실험과 실용을 대립시키지 않았다. 그는 근대 도시에서 실험이 곧 일상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아인슈타인 타워에서 드러났던 에너지는 쇼켄 백화점에서 도시적 감각으로 정제된다. 과학의 은유는 소비와 이동이라는 일상의 리듬으로 변환되고, 근대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매일의 경험이 된다. 이 두 건축물 사이에서 멘델존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조건이 달라졌을 뿐, 근대를 흐름으로 이해하는 관점은 끝까지 유지된다.

에리히 멘델존의 건축이 주는 감정은 생동감에 가깝다. 그의 공간은 안정과 완결을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변화와 긴장을 전제로 한다. 이는 불편함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근대를 살아가는 감각에 더 가깝다. 멘델존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 했다.


오늘날의 건축은 종종 과도하게 정제되어 있다. 모든 것이 매끄럽고,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하며, 모든 것이 관리된다. 그러나 이런 완벽함 속에서 우리는 시대의 에너지를 느끼기 어렵다. 멘델존의 건축은 묻는다.


건축은 왜 이렇게까지 안정적이어야 하는가?

왜 변화와 속도, 불안을 공간에서 제거하려 하는가?


멘델존은 근대를 차갑게 만든 인물이 아니라, 근대를 가장 뜨겁게 경험한 건축가였다. 그의 건축은 감정의 부재가 아니라, 감정의 과잉에 가깝다. 그리고 이 과잉은 근대가 품고 있던 가능성이기도 했다.


이 장에서 멘델존을 다루는 이유는 분명하다. 로스와 마이어가 각각 윤리와 사회라는 축을 세웠다면, 멘델존은 그 사이에 흐르는 감정과 에너지의 층위를 드러낸다. 근대는 정지된 이념이 아니라, 움직이는 상태였다. 멘델존의 건축은 그 사실을 가장 솔직하게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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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건축이 실패했다고 말할 때, 우리는 종종 그 이유를 인간적이지 못함에서 찾는다. 차갑고, 딱딱하고, 생활을 고려하지 않은 공간. 그러나 요제프 프랑크는 이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 그에게 문제는 근대 그 자체가 아니라, 근대가 스스로를 너무 완벽하게 만들려 했다는 점에 있었다.


프랑크는 근대 건축의 내부에서, 그러나 그 중심에서 조금 비켜난 위치에서 활동했다. 그는 모더니즘의 언어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고, 기능주의가 왜 등장했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 흐름에 전면적으로 동참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근대가 점점 사람을 압박하는 규범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을 예민하게 감지했다.


프랑크에게 건축은 질서를 강요하는 장치가 아니라, 삶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배경이어야 했다. 그는 인간의 삶이 결코 합리적으로만 구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생활은 우연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때로는 모순적이다. 프랑크는 이 불완전함을 제거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건축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의 사상은 『Accidentism』이라는 개념으로 압축된다. 계획되지 않은 우연, 예측할 수 없는 사용, 사용자의 자유로운 개입. 프랑크는 완벽한 계획이야말로 삶을 억압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근대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근대가 잃어버린 편안함과 관용을 되찾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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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에 위치한 빌라 비어는 요제프 프랑크의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주거 건축이다. 외형만 놓고 보면 이 집은 분명 근대 건축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단순한 매스, 장식을 배제한 입면, 합리적인 구성. 그러나 이 집을 실제로 경험하면, 근대 주택에서 흔히 느껴지는 긴장감은 거의 없다.


빌라 비어의 내부는 느슨하다. 공간은 명확하게 구획되기보다는, 서로 겹치고 이어지며 다양한 사용 가능성을 열어둔다. 거실은 단일한 중심 공간이 아니라 여러 개의 생활 장면을 수용할 수 있도록 계획되어 있고, 가구의 배치 역시 고정되지 않는다. 프랑크는 평면을 통해 행동을 규정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삶이 스스로 자리를 찾아가도록 내버려둔다.


이 집에서 근대적 질서는 배경으로 물러나 있다. 구조와 설비는 명확하게 작동하지만, 그것이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사용자는 공간을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생활하면 된다. 이 점에서 빌라 비어는 근대 주거가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근대는 반드시 긴장과 규율로만 작동해야 하는가? 프랑크의 대답은 분명히 아니었다.


빌라 비어는 기능주의에 대한 노골적인 반대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기능주의가 놓친 감각에 대한 조용한 보완에 가깝다. 프랑크는 근대를 해체하지 않고, 그 내부를 부드럽게 변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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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의 사상이 개인 주택에서만 작동했다면, 그것은 취향의 문제로 축소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진가는 집단 주거에서 드러난다. 스웨덴으로 이주한 이후, 프랑크는 여러 스톡홀름 주거 프로젝트에 관여하며 자신의 생각을 더 큰 스케일로 확장했다.


이 주거 프로젝트들에서 프랑크는 집단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집단 주거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집단을 이유로 개인의 삶을 획일화하는 데 강하게 반대했다. 그래서 그의 주거 공간은 동일한 틀 안에서도 각자의 생활 리듬이 유지될 수 있도록 계획된다.


복도와 공용 공간은 최소한의 규율만을 제공하고, 내부 공간은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될 수 있다. 프랑크는 표준화와 효율을 완전히 거부하지 않지만, 그것이 삶을 압도하지 않도록 조정한다. 이 주거 단지에서 근대는 통제의 언어가 아니라, 관용의 조건으로 작동한다.


이 점에서 프랑크는 근대를 부드럽게 만든 인물이라기보다, 근대를 덜 폭력적으로 만든 인물에 가깝다. 그는 이상적인 삶의 모델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삶이 공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구조를 제공한다. 이것이 프랑크가 집단 주거에서도 끝까지 지켜낸 태도였다.


요제프 프랑크의 건축이 주는 감정은 안심에 가깝다. 그의 공간은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올바른 삶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그 안에서 각자의 삶이 조금은 흐트러진 상태로 존재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 느슨함은 무책임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효율과 최적화의 언어에 둘러싸여 있다. 주거는 점점 더 표준화되고, 평면은 투자 가치와 관리 효율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크의 건축은 묻는다. 우리는 언제부터 집에서까지 긴장해야 했는가?


프랑크는 근대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근대가 약속했던 합리성과 기술의 가치를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만으로는 삶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의 건축은 근대가 놓친 감정, 즉 편안함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감각을 다시 건축의 중심으로 돌려놓는다.


이 장에서 프랑크를 다루는 이유는 분명하다. 로스가 침묵을, 마이어가 구조를, 멘델존이 에너지를 이야기했다면, 프랑크는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일상의 그릇을 제시한다. 근대는 여기서 비로소 사람의 크기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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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도 로시는 근대 건축을 끝내려 했던 건축가가 아니라, 근대를 가장 집요하게 되돌아본 건축가였다. 그는 새로운 형태를 제안하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도시와 건축이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지를 관찰했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근대 건축이 끝내 말하지 못했던 핵심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기능도, 기술도 아닌 기억이었다.


로시는 근대 이후 세대에 속한 건축가였지만, 그의 사고는 언제나 근대의 내부를 향해 있었다. 그는 기능주의가 도시를 지나치게 현재의 문제로만 다루고 있다고 보았다. 주거, 업무, 교통, 생산.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효율적으로 분리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도시가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해온 의미와 기억은 쉽게 삭제되었다. 로시는 이 점을 문제 삼았다. 그에게 도시는 언제나 집단의 기억이 축적된 구조물이었다.


『도시의 건축』에서 로시는 도시를 기능의 집합이 아니라, 유형(type)의 반복으로 설명한다. 광장, 거리, 극장, 주거, 묘지. 이들은 시대와 기능이 바뀌어도 반복해서 등장하는 도시의 기본 단위다. 로시는 이 반복 속에 도시의 기억이 스며든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의 건축은 새로움을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 알고 있는 형식들을 다시 호출하고, 그것을 낯설게 배치한다. 로시의 건축이 종종 차갑고 기념비적으로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감정을 배제해서가 아니라, 감정을 개인의 것이 아니라 집단의 것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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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나에 위치한 산 카탈도 공동묘지는 알도 로시의 사상을 가장 응축된 형태로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공동묘지라는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도시와 삶을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마주하게 만든다. 로시는 이 공간을 애도의 장소로만 보지 않았다. 그는 공동묘지를 도시의 일부, 더 정확히는 도시 구조의 연장선으로 보았다.


산 카탈도 공동묘지는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기하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복되는 벽, 비어 있는 창, 추상화된 매스. 이곳에는 장식도, 위로의 제스처도 거의 없다. 대신 공간은 침묵 속에서 서 있다. 이 침묵은 로스의 침묵과 닮아 있지만, 성격은 다르다. 로스의 침묵이 윤리였다면, 로시의 침묵은 기억을 위한 여백이다.


이 공동묘지에서 죽음은 비극적 사건이 아니라, 도시를 구성하는 하나의 상태로 다뤄진다. 무덤은 집처럼 배열되고, 건축은 거주와 매장의 경계를 흐린다. 로시는 여기서 삶과 죽음을 분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도시가 삶과 죽음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건축은 감정을 자극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게를 더한다. 그것은 개인의 슬픔이 아니라, 도시가 기억하는 방식에 관한 건축이기 때문이다.


산 카탈도 공동묘지는 근대 건축이 외면해왔던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다. 기능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공간, 효율로 환원되지 않는 장소. 로시는 이 건축을 통해, 도시가 단순히 살아 있는 사람만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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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카탈도 공동묘지가 영구적인 기억의 구조라면, 테아트로 델 몬도는 그 반대편에 위치한 건축이다. 이 건물은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위해 설계된 임시 극장이었고, 물 위에 떠 있는 가벼운 구조물이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해체될 운명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건축은 로시의 작업 중 가장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테아트로 델 몬도는 베네치아의 역사적 건축을 직접 모방하지 않는다. 대신 등대, 탑, 극장이라는 도시적 유형을 조합해,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듯한 형상을 만들어낸다. 이 익숙함은 복제가 아니라 기억의 호출에 가깝다. 로시는 이 건축을 통해, 기억이 반드시 영구적인 구조물에만 저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극장은 사용 기간이 짧았지만, 도시의 풍경 속에서 강렬한 장면을 남겼다. 사람들은 이 건축을 ‘새로운 것’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받아들였다. 로시는 바로 이 지점을 노렸다. 건축의 지속성은 물리적 존속이 아니라, 기억 속에 남는 방식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다.


테아트로 델 몬도는 로시 건축의 또 다른 면을 드러낸다. 그의 건축은 무겁고 기념비적이라는 인상과 달리, 때로는 매우 가볍고 유연하다. 그러나 이 가벼움 역시 태도에서 비롯된다. 일시적 조건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도시를 기억의 집합으로 바라보는 그의 관점이다.


알도 로시의 건축이 주는 감정은 낯선 친숙함이다. 그의 공간은 처음 보는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진다. 이 감정은 설계의 기술이 아니라, 도시와 건축이 오랫동안 반복해온 유형을 정확히 건드릴 때 발생한다. 로시는 이 반복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건축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오늘날의 건축은 지나치게 새로움에 집착한다. 랜드마크, 아이콘, 차별화. 그러나 이런 강박 속에서 도시는 점점 기억을 잃어간다. 로시는 묻는다. 도시는 얼마나 많은 것을 새로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기억할 수 있는가로 평가되어야 하지 않는가?


로시의 건축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자극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감정을 축적한다. 그것은 개인의 감상이 아니라, 집단의 기억에 가까운 감정이다. 이 점에서 로시는 근대를 끝낸 인물이 아니라, 근대를 가장 깊이 이해한 인물에 가깝다.


이 장에서 로시를 마지막에 배치한 이유는 분명하다. 로스의 윤리, 마이어의 사회, 멘델존의 에너지, 프랑크의 일상은 모두 결국 도시라는 무대 위에서 작동한다. 로시는 이 모든 층위를 기억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낸다. 근대는 여기서 더 이상 스타일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반복하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 거장들은 근대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근대를 다르게 읽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읽기는 여전히 오늘의 건축 앞에서 유효하다. 우리가 다시 설계해야 할 것은 형태가 아니라, 태도와 기억일지도 모른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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