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국

서른둘과 서른넷, 그리고 네 살

by 제이



서른이 넘은 나이에 타국 생활을 결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들 하는 만큼의 노력 끝에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갔고, 이제는 꽤 적응도 해낸 터였다.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나와 내 가족은 서울 한가운데 햇살이 비추는 집에서 눈을 뜨고, 유명한 카페에서 취향껏 고른 원두를 갈아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마음에 드는 옷을 사고, 가끔씩은 근사한 식당에서 외식도 즐기는 그런 삶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삶을 정리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건, 단지 지금 당장 내 입에 들어오는 달콤한 것들 보다는 조금은 쓰더라도 나에게 맞는 삶을 찾으려는 이유였다. 매달 들어오는 급여는 언제나 필요했고 감사했지만 더 이상은 그걸 위해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덟 시가 다돼 가도록 숨이 막히게 살고 싶지 않았다. 함께 저녁을 먹으려 나의 퇴근을 기다리는 케이는 매번 지쳐 돌아와 밥숟가락 내려놓기 무섭게 잠드는 나를 가만히 두어야 했고, 나를 가장 좋아하는 네 살배기 고양이는 같이 놀자고 생떼를 부리다가 지쳐서 함께 잠들고는 했다. 좋아하는 캠핑을 가려해도 붐비는 주말에 끼여 한 시간이면 갈 거리를 세네 시간 동안 차에서 낭비하는 것도 지겨워졌다.


생각해 보면 이때까지의 내 삶은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끌려가고 있었다. 한국의 여느 90년대생이 그렇듯 시기에 맞춰해야 할 일이 있었고, 그 안에 내 취향을 담기란 쉽지 않았다. 어느 순간 그렇게 고착화되어 버린 삶에서 변화의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결심은 순간이었고 생각은 단순했다. 이곳을 정리하고, 새로운 곳에 가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자.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생각을 했을 때에 나는 도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나 싶을 정도로 단호했다. 케이를 설득하고, 퇴사를 위해 사내대출을 정리했고, 짐을 늘리지 않기 위해 소비를 줄이고, 집에 있는 것들을 중고마켓에 내놓기 시작했다. 하필 선택한 나라가 영어권도 아니었기 때문에 주말 아침엔 피곤해죽겠지만 어학원에 갔다. 대사관 예약을 잡고, 비행기 티켓을 샀다.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되어야 꺾이지 않을 결심이 될 거라 생각했다.


대망의 출국일 오전, 만기 된 월셋집 보증금을 돌려받고, 집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짐을 가득 실은 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잔뜩 쫄아버린 케이지 속의 네 살짜리 고양이 한 마리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의 평정심을 유지해 줄 소중한 서른네 살짜리 케이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