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기적처럼

서른둘과 서른넷, 그리고 네 살

by 제이






3월이 되자 언제 끝나나 싶었던 겨울이 거짓말처럼 끝났다. 답답하게 내려앉았던 회색 하늘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지금 이곳은 열흘이 넘게 매일이 맑게 빛난다. 침실의 창밖으로, 파란 하늘과 주황색 지붕이 이루는 청량한 대비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잊게 해 준다. 고양이 가족은 햇살이 잘 드는 마루에서 이리저리 구르고, 시원하게 기지개를 켠다. 창밖의 바람이 더 이상 시리게 차지 않아 둔한 패딩과 무거운 니트들을 정리해 넣어버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가죽재킷을 꺼내 입었고, 선글라스를 챙겨서 밖으로 나설 수 있게 되었다. 봄을 맞이하며 마침내 새로운 집으로 이사했고, 바뀐 환경에 조금씩 적응을 하고 있다. 이전의 동네와 지금의 동네는 차로 5분 거리의 그리 멀지 않은 거리지만, 우리의 삶은 그전과 꽤 많이 달라졌다.


2월 말로 끝나는 다사다난했던 임시 집의 계약 덕분에 나와 케이는 11월부터 집을 구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한국에서 임시집을 구할 때 겪었던 마음고생을 또 한 번 반복하고 싶지도 않았기에 더욱 서둘렀다. 마음에 드는 집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100건이 넘는 공격적인 지원을 했고, 처음으로 집을 보러 와도 좋다는 시간과 장소가 적힌 메일을 받고 한 시간 거리를 아침 일찍 한달음에 달려갔지만 문 앞에 거의 도착하자마자 오늘은 집을 보여줄 수 없다는 거절 메일을 받았다. 많이 실망했고, 괜히 케이와 서로에게 짜증을 내며 집으로 돌아왔었다.


날짜는 다가오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기에, 아침저녁으로 부동산 어플만 바라보던 찰나에 이 집을 만났다. 부동산 회사가 아닌 개인 집주인이 올린 어딘가 설익은 공고였지만 단순히 느낌이 좋았다. 임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익숙한 동네였으며, 천정부지로 치솟는 악독한 이 도시의 월세에 비해 정직하고 납득할 만한 월세. 그렇기 때문에 더욱 높은 경쟁률이 예상됐고 설령 연락이 오지 않아도 너무 실망하지 말아야지 미리 마음을 다스리며 지원 버튼을 눌렀다.


놀랍게도, 다음 날 집주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집을 보러 왔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다음 날엔 집주인으로부터 직접 전화가 와서 정말 이 집에 관심이 있는지 확인 후 다시 한번 약속을 점검했다. 우리는 급하게 각종 우리의 신분 서류, 재정 능력에 대한 증명, 그리고 고양이 가족의 건강검진 결과지까지 챙기고 최대한 가장 깔끔하고 단정한 옷을 챙겨 입었다. 집 앞에 도착하고 정확히 약속시간이 되자 저 멀리서 환하게 웃는 호리호리한 할아버지가 악수를 청하며 다가왔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건물에 들어섰고, 빨간 카펫과 아이보리색 벽으로 장식된 유럽식 계단을 올랐고, 집안에 들어와 천장의 장식과 넓은 방들과 귀여운 타일의 화장실을 살펴보았다. 너무 이곳에 살고 싶어졌다.


한참 동안 집을 보고 난 후, 이 모든 게 현실임을 체감할 때쯤이 되어서야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물음표가 생겨났다. 분명 높은 경쟁률을 예상하고 온 터라 우리만 이 집을 보고 있는 현실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할아버지께 물어보자 꽤나 단순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냥 너네가 느낌이 좋았거든. 할아버지는 매물을 올린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80개가 넘는 지원서를 받았고, 이 도시의 이런 상황에도 꽤나 환멸을 느끼는 듯했다. 우리는 정말 운이 좋게도, 수많은 날고 기는 지원자들 사이에서 할아버지의 마음에 드는 지원자가 될 수 있었고, 일주일 후, 동네의 작고 귀여운 와인바에서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환영과 축복의 의미로 사주신 샴페인과 함께 기한 없는 임대 계약서에 서명했다. 기적처럼.


신기하게도 이사 후 크고 작은 기분 좋은 일이 많아졌다. 우리는 겨울 내 매일 도서관을 다니며 열심히 준비했던 언어 시험에 합격했고, 케이는 새로운 직장에서 잘 적응하고 있으며, 나에겐 첫 클라이언트가 생겼다. 창밖의 새들과 나무를 구경하고 햇살을 맞으며 꾸벅꾸벅 졸다가도 넓어진 집에서 신나게 뛰노는 고양이 가족은 이주 후 턱에 생겼던 피부 트러블이 드디어 사라졌다. 소소하게는 친구에게 받은 소파가 우리 집 벽 사이즈에 자로 잰 듯이 딱 맞았고, 저렴하게 시킨 커튼이 기대한 것 이상으로 예뻤고, 모르고 사온 조명이 알고 보니 대단한 디자이너의 작품이었다. 지하철 역에 걸어서 2분이라 외출하는 것이 편리해졌고, 집 앞에 바로 작은 마트가 있어 식재료를 사는 것도 간편해졌다. 이사 후 크고 작은 문제에 언제나 한달음에 달려와 해결해 주시려 노력하시는 친절한 집주인 할아버지의 존재가 언제나 든든하고 감사하며, 아랫집에 사시는 할아버지의 친절함 덕분에 손쉽게 사다리를 빌려 3미터가 넘는 층고에 커튼을 달 수 있었다. 오다가다 만난 0층에 사는 또 다른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이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에 대해 소개해주셨고, 윗집 부부는 만날 때마다 우리의 이름을 외우고 있다면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준다. 이곳의 언어를 익숙하게 하진 못해도 더듬거리며 용기 내어 건네는 몇 마디에 응원과 미소를 보내주는 좋은 이웃들이 생겼다. 따뜻해진 날씨만큼, 여러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 속에서 새로운 보금자리에 뉘어 기분 좋은 봄볕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이 좋은 일들이 모두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지난 10개월 동안 이민자로 이곳에 와서 크고 작은 산들을 넘고 또 넘는 과정에서, 겨울처럼 곤두박질치는 마음이 들 때도 있고 답답함에 큰 소리를 내며 분노하기도 했다. 다만, 나와 케이는 집을 구하기 위해 100번이 넘는 지원을 했던 것처럼, 어떤 상황 속에서도 굽히지 않는 의지와 지치지 않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만들어 왔다. 그렇기에 우리가 봄과 함께 맞이하고 있는 행운들은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낸 기적과도 같다.


기적을 만들어가는 매일이 꽤나 피곤했었는지, 아니면 오늘의 햇살이 유난히 다정했는지. 오랜만에 모든 할 일을 제쳐둔 채 고양이 가족을 끌어안고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평소라면 낮잠 뒤에 으레 따라붙던 특유의 찝찝함도 오늘은 없었다. 오히려 그토록 바라던 이곳에서의 평범한 일상이 비로소 손에 잡히는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 드디어 우리의 진짜 삶이, 이 기적의 공간에서 함께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