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던 시절 무작정 여행을 떠났던 적이 있다. 나에게 집중되는 모든 짐들을 놓아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이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보여줄 것 같았다.
방학이라 밤마다 집에 조용히 앉아 있던 어느 날, 베란다 바깥에서 바다가 보이는 것 같아서 무작정 자전거로 들고 속초로 향했다.
밤 11시에 해변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한 남자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길래 혹여나 자살을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에 달려들어가 붙잡았다. 단지 바닷물에 떠내려간 맥주를 주우러 간 것 뿐이었던 그 형과 나는 서로 마주보고 웃으며 대화를 섞기 시작했다. 소방관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고 전역한 후에 부대 후임들을 찾아왔다가 바다가 보고 싶어서 남게 되었다고 한다.
그 형과 나는 밤새도록 술잔을 들이키며 미래에 대해 이야기 했었다.
그 형에게 인생을 물으니 우리처럼 많이 운동해서 힘이 센 사람도 다룰 수 있고 고용할 수 있는 재력가나 공부한 사람들이 대단한 삶을 사는 거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새벽 파도의 소리에 귀를 헹구며 멀리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바라보며 서로의 인생을 생각하다 헤어졌다.
어느 도시에서는 발랄한 여자애들을 만났었다. 그들은 이렇게 이쁜 풍경들을 프레임에 담으며 자기네들의 즐거운 모습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삶의 행복이라고 믿는 듯 했다. 벽화가 유명했던 그 마을은 참으로 이뻐 그 아이들은 기분이 좋아보였다. 골목 사이사이를 다니며 각종 포즈를 잡고 깔깔대던 우리는 하루종일 플래쉬를 터뜨리다 헤어졌다.
한적한 시골에서 만난 남자는 나를 보자 반가워서 주변 구경을 시켜주었다. 그곳은 산책로가 발달한 곳이었는데 아무도 없는 개천가 길이 너무도 평화로워서 인상 깊었다. 그 남자는 주변의 술집에서 바텐더로 일하고 있었다. 한 때 바이어로 일하다가 복잡한 도시가 싫어 이곳에 내려왔다고 한다. 근처의 여행지를 소개해 주기도 하고 숙박을 할 곳을 알아봐 주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더 어리다고 동생같이 챙겨주려고 한 그 사람은 자기는 사랑하는 여자랑 함께 느릿느릿 여유로이 살아가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남자의 여자친구도 도시에서의 일을 그만두고 시골로 같이 내려와 같이 일하고 있었다. 우리는 계곡 옆 한적한 길에서 앉아 한참동안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여수의 어느 다리에서는 나처럼 여행 다니는 누나를 만났었다. 함께 야경도 보고 맛있는 것도 같이 먹으며 여행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법 친해졌다. 같이 간장게장을 먹기도 하고 부산여행을 함께 하기도 했다.
헤어지기 전 날 어느 술집에서 자기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이런 경험이 좋다며 곧 간호사로 일하던 것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갈 것이라고 말한다. 자금은 일하면서 준비해 두었다며 행복해 했다. 그 다음날 우리는 덜컹이는 기차에 나란히 앉아 두런두런 얘기하다가 어느 역에 도착하자 헤어졌다.
산에 올라가서 만난 두 명의 여자도 여행을 좋아한다고 했다. 혼자 등산하고 있는 내가 신경 쓰였는지 가지고 있던 물을 건네주기도 하고 과일을 나눠주기도 했다. 그렇게 함께하게 된 우리는 정상에 올라 소리를 지르고 사진을 찍으며 좋아했다. 모든 것이 작게 보이고 바람은 너무도 시원하게 불어와 올라가면서 느껴졌던 답답함과 괴로움이 사라지는 듯 했다.
마찬가지로 아래를 내려다보던 한 여자가 나와 같은 것을 느꼈는지 이렇게 말했다. 위에서 보니까 너무도 시원한데 왜그리 삶은 더운 사우나 같은지 모르겠다고. 우리는 내려오다가 부침개를 잔뜩 먹고 서로의 목적지가 달라 헤어졌다.
눈이 끝없이 뒤덮인 양떼목장에서는 나랑 비슷한 대학생 남자애들을 만났었다. 그들과 설산을 뛰어보기도 하고 양들의 먹이를 줘보기도 하다가 흰 색 밖에 없는 그 세상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아무도 걷지 않은 바닥과 다른 색깔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하늘 때문에 위아래 없이 통합된 하나의 공간 같았다. 왠지 다시 뛰고 싶어져 막 뛰어다니는데 다른 곳에서 여행 왔다는 한 사진작가 아저씨가 본인의 카메라로 우리가 웃고 있는 작품사진을 찍어주셨다.
그렇게 뛰다 지쳐 푹신한 눈 위에 털썩 셋이 누워버렸는데 한 친구가 이 곳에 꼭 다시 와보고 싶다고 자신의 삶에서 가장 잊지 못할 풍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밤이 되어 그곳을 내려온 우리는 역시 포옹을 하고 각자 길을 향해 돌아섰다.
군대에 입대하기 직전 떠난 자전거 여행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자전거 여행을 하고있던 동생을 어느 유적지에서 만난 적이 있다. 풀숲이 무성한 곳에서 햇빛까지 따가워 자전거 위로 느껴지는 바람이 없었다면 온 것을 후회했을 곳이었다.
유적지와 그 주변의 박물관까지 함께 하다가 내가 곧 군 입대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 동생이 이런 말을 했다. ‘형, 내가 군대에서 사람들이 죽는 것을 많이 봤는데 참 기분이 이상하더라. 그래서 이제는 죽다 살아나는 사람들을 보고 싶은데 일단 전국 산천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보고 공부해야겠다.’
그렇게 의무소방으로 일했던 그 친구의 군인시절 이야기를 한참 듣다가 서로의 자전거 위에서 갈림길을 끝으로 헤어졌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새벽이라 와락 그 사람들이 그리워져서 사진을 찾아보다가 내가 떠나서 얻은 무언가는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다.
모든 것을 놓고 싶어서 떠났는데 늘 손가락 끝에 손잡이 몇 개 정도는 걸쳐 놨으리라.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라서 내려놓을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와 마찬가지로 일상으로 돌아간 저 친구들은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매우 궁금해졌다. 대부분 몇 년이 지난 상태였기 때문에 연락을 안한지 오래된 친구들이었는데 이 기회에 그들과 다시금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바닷가에서 만났던 형은 현재 노량진에서 소방공무원 시험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오랜만에 연락을 해줬다고 반가워했다. 바닷가에서 자신을 붙잡고 놀라했던 나를 여전히 잘 기억하고 있다며 재밌어 했다. 언제 한번 노량진에 들른다면 함께 컵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줬다. 조만간 컵밥을 먹을 기회가 생길 것 같다.
도시에서 만난 발랄할 여자애들 중 하나는 현재 부산에서 작품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미대를 졸업하고 이제 막 본인의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비장한 각오를 드러냈다. 3년도 훨씬 지나 여행지에서 만났던 사람이 연락을 해줘서 깜짝 놀랐다며 신기해 했다. 그 때는 학생이었고 마냥 웃고 떠들며 순수했었는데 사회로 막 나오게 되니까 답답한 일이 많다며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언제 한번 부산의 골목에서 그 때처럼 함께 사진을 찍어보자고 했다. 그 때의 그곳만큼 소박하고 아름다운 곳이 많다고 한다.
한적한 시골에서 만난 그 남자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당시 가지고 있던 연락처는 이미 이름 모를 어느 아주머니가 주인이 된지 오래고, 저장했던 이메일 주소도 휴면 계정으로 나타났다.
진작 찾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 아쉬워져 당시의 일기를 다시 살펴보니 그 남자가 했던 다른 말이 적혀 있었다.
바이어로 일했을 때 거래처가 코스타리카여서 처음으로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비행기를 오래 타고 겨우 도착했기에 인상을 쓰며 내렸는데 그 당시 그곳의 느낌이 너무도 평화로워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왔었고 누굴 위해서 경쟁 속에 스스로를 밀어넣고 있는지를 그 남자에게 물어보는 듯, 코스타리카의 모든 것들은 천천히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귀국한 뒤에 한 달을 고민하다 직장을 그만두고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이 곳에 내려와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결혼을 앞두고 있다던 그 남자의 눈에서 행복을 본 것 같다는 것이 그 당시 일기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여수에서 만났던 간호사 누나는 현재 다른 병원에 취직한 상태였고 나와 헤어졌던 몇 년 동안 무려 7개국을 여행하고 왔다.
특히 방콕의 시끄러웠던 카오산 로드가 기억난다고 꼭 가보라고 추천해줬다. 그 때 함께 부산을 여행하던 도중 만났던 형과도 연락이 닿아 셋이서 오랜만에 다시 모이기로 했다.
오는 토요일, 신촌의 어느 술집에서 다시금 과거를 떠올리며 단절된 시간동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산에 올라가서 만난 누나중 한 명은 몇 년 전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당시 나와 만났을 때는 직장에서의 일도 안 풀리고 세상에 혼자인 것 같아서 우울하고 답답했는데, 이제 영원히 본인의 편에 서줄 수 있는 남편을 만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이가 있으니 어떤 답답함도 오래가지 않는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누나를 보고 웃어주는 아이의 얼굴이 주는 행복은 30년 가까이 되는 인생 속에서 처음 겪는 기적이라고 말해줬다.
양떼목장에서 만난 한 친구는 최근에 의경을 전역하고 테니스 강사일을 하고 있다. 나머지 친구도 태권도 전공을 살려 도장에서 일한다고 했다.
여전히 그 때의 양떼목장을 잊지 못했던 테니스 강사 친구는 현재 카카오 스토리의 배경도 그 때의 사진이다. 아무것도 없던 순백의 그 세계는 그 이후의 어떤 풍경으로도 대체될 수 없었나 보다.
군 입대 전에 봤던 동생은 현재 안동에서 졸업을 앞두고 있는 학생이다. 공학을 공부하며 지역 하천의 수질검사까지 도맡아 하며 열심히 살아왔다고 한다.
최근에 하회마을에 있는 부용대에 올라서서 강물이 휘감고 있는 옛 마을을 돌아보다가 갑자기 내 생각이 났다고 한다. 그 때처럼 자전거를 끌고 전국을 누빌 여유는 없지만 그 때의 경험과 만났던 사람들은 여전히 내면에 살아있어 힘들 때마다 용기를 북돋아 준다고 했다.
모처럼 되돌아본 과거의 조각들이 되살아나는 듯 해 신기한 하루였다. 여행 속에서의 나는 참으로 홀가분한 기분으로 자유로웠구나. 저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 속에 있었구나. 하고 느끼며 현재가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 자유로움이 여태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쌓아온 것들을 잠시 덮어버리고 그 순간의 나로만 존재할 수 있는데서 느껴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설렘이 너무도 매력적이라 매번 기회만 있다면 떠나곤 했었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도 나와 같은 기분 속에서 그 순간을 즐겼을 것이다.
어느덧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도 쌓이고 쌓여 나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
스무살의 나는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남겼었다.
‘언제든 떠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이다.’
당시의 나는 20년 가까이 지속된 나의 과거를 잠시 덮어두고 어디든 새로운 곳에 가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자유가 곧 현실 속에서의 나를 옭아매는 모든 감정들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에 궁극적인 행복을 불러올 것이라 믿고 있었나 보다.
그런 마음으로 떠났던 길목에선 늘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이야기들이 너무도 다양하고 재밌어서 잠시 취했다가 돌아오는 길목은 항상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자유롭기 위해서 떠났던 여행 속에서 나를 취하게 했던 그 이야기 속의 세상엔 항상 ‘정착’이 있었다.
사람들을 위해 불길을 잡고 싶다던 그 형의 이야기에서도, 사랑하는 여자와 천천히 살아가고 싶다던 그 남자의 이야기에서도, 아이가 웃는 얼굴 속에서 여태껏 겪어보지 못했던 행복을 얻는다던 그 누나의 이야기에서도 궁극적인 ‘떠남’은 없었다.
잠시 떠났다가도 현실로 돌아와 원래 그랬던 것처럼 다들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행복의 순간은 항상 현실에서 나왔다.
내가 취했던 것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였던 것일까 아니면 자유를 통해서 소중함을 알게 된 현실이었던 것일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것이 자유로운 것이라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행복의 본질이라는 믿음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의 현실을 바라보았을지 모르고, 그들의 꿈에서 내 꿈을 느꼈을지 모른다.
잠시 거친 현실에 너무도 지쳐 이건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며 떠났지만, 무의식 속에서 진정한 여행은 이미 살아가고 있던 삶이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나는 돌면서 만난 저들의 이야기에서 정확히 무엇을 건져야 할지는 모르겠다.
함께 바라보던 그 파도와 계곡, 바람과 기차 속에서 어떤 지도를 찾아 아직 페달이 돌아가지 않고 있는 내 인생의 경로를 정해야 하는지 여전히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자유와 행복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유적지에도 도착하고 시원한 바다에도 도착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생각이 많아지는 만큼 다시금 과거의 나와 그 때의 사람들이 궁금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