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과 균형 사이
금요일 오후, 조용했던 홍보팀 사무실이 갑자기 활기로 넘쳤다. 김주연 대리가 조심스럽게 결혼 소식을 알렸기 때문이다.
“김 대리님 진짜 대단해요. 부산에서 혼자 와서 5년 만에 이렇게 자리 잡고, 이제 결혼까지.” 박진수 주임이 감탄하며 말했다.
이에 질세라 문성태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러니까 말이야. 처음에는 예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성격도 털털하면서 좋잖아. 배려심도 많고. 또 일은 얼마나 꼼꼼하게 하는지.”
“그러게요. 누군지 김 대리님이랑 결혼하는 분은 복 받은 거죠. 김 대리님, 어떤 분인지 궁금해 죽겠어요.” 오혜진은 김주연에게 바싹 다가가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호기심 가득 어린 눈빛을 발사했다.
김주연은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유니크플랜트 최 이사님인데, 사람도 좋고 너무 잘 맞아요. 내가 좀 꼼꼼하게 따지는 스타일인데도 잘 받아줘요.”
그러자 박진수 주임이 옆에서 거들었다. “최 이사님? 저도 예전에 거래처 미팅에서 한 번 뵌 적 있는데, 진짜 모델처럼 생기셨더라고요. 키도 크고, 깔끔한 슈트핏이 딱 어울리는 분이셨어요.”
오혜진이 놀라며 물었다. “정말요? 그렇게 멋진 분이면 김 대리님이랑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런데 김 대리님 결혼 소식에 우리 회사 남자 직원분들 실망하시는 거 아니에요? 대리님 인기 많았잖아요"
이때 맞은편에서 팀원들의 대화를 말없이 조용히 듣기만 하던 윤태경 과장의 표정은 굳어졌다. 갑작스러운 김주연의 결혼 소식에 그는 적잖이 당황했다. 머릿속으로는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입사 첫날, 수줍게 웃으며 사무실로 들어오던 모습.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받으며 미소를 띠던 모습. 그런 그녀의 첫 모습은 지금도 선명했다.
그녀는 언제나 팀원들과 함께 했다. 사무실이건 회식 자리건 그녀가 있을 때는 항상 분위기가 좋았다. 선배들의 장난도 즐겁게 받아주고, 술잔을 기울이며 쏟아내는 실없는 농담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업무 중에도 가끔 그녀를 몰래 바라보던 순간들이 있었다. 전화를 받고 메모를 하며 응대하는 모습에 진심을 느꼈고, 협조를 요청하러 왔을 때의 차분한 말투도 좋았다. 따스한 말투와 감정이 온전히 전해지는 듯했다. 그런 모습에 자연스레 끌렸지만 그는 한 번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다.
윤태경은 차마 입으로 한숨을 내뱉지 못하며 속으로만 곱씹었다. '내가 진작에 다가갔어야 했는데... 왜 항상 뒤에서 바라보기만 했을까.'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변의 축하 분위기에 맞춰 억지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런 윤태경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주연은 햇살에 살포시 물든 벚꽃 잎 마냥 환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그 사람과는 2년 정도 만났는데, 사람도 좋고 너무 잘 맞아요. 내가 좀 꼼꼼하게 따지는 스타일인데도 잘 받아줘요.”
“사실 처음에는 완전 최악이었어요.” 김주연이 말을 이었다. “계약했던 자료와 샘플이 계속 엉망으로 오길래 직접 항의하러 갔거든요. 근데 제가 막 따졌더니, 그 사람도 화가 났는지 갑자기 ‘왜 그렇게 까칠하냐’고 한 거예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처음엔 완전 싸웠어요.”
“헉, 그럼 어떻게 친해지신 거예요?” 오혜진이 놀라며 물었다.
“그 싸움이 계기였죠. 나중에 제가 너무 심하게 말한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사과했거든요. 그랬더니 그 사람도 자기가 잘못한 부분을 인정하면서 오히려 밥을 사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도 많아지고, 서로 성격이 의외로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 드라마 같은 상황이네요. 티격태격하다가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 “영화 한 편 찍으셨네요!” 오혜진이 감탄하며 말했다.
김주연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때, 지역개발사업팀의 조민서 대리가 홍보팀에 들어섰다. 그녀는 홍보 관련 서류를 전달하러 왔다가 김주연의 결혼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됐다.
“김 대리님, 결혼하신다고요? 완전 축하드려요!” 조민서의 목소리 톤이 갑자기 높아졌다.
김주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조 대리님도 꼭 오세요. 청첩장 드릴게요.”
조민서는 홍보팀 직원들과 함께 대화에 자연스럽게 섞였다.
문성태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최 이사님이 최근 우리 사무실에 몇 번 다녀갔지? 이걸 왜 눈치를 못 챘을까. 그때 우리 사무실에만 오면 그렇게 기분 좋아서 싱글벙글이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네.”
윤태경 과장을 제외한 홍보팀은 그렇게 기분 좋은 금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조민서도 홍보팀에 들고 온 서류를 건네고는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조민서가 지역개발사업팀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자마자 말을 꺼냈다. “여러분, 홍보팀 김주연 대리님 결혼하신대요!”
그 말을 들은 팀원들이 궁금한 표정으로 하나둘씩 조민서 주위로 모여들었다.
“진짜요? 상대방은 누구래요?” 이하준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조민서는 웃으며 말했다. “유니크플랜트 최 이사님인데, 잘생긴 데다가 슈트핏은 모델 같대요. 성격도 좋아서 김 대리님이랑 정말 잘 어울린대요.”
이때 강도윤이 농담처럼 말했다. “유니크플랜트면, 왜 예전에 거래하던 중소기업 맞죠? 우리 김 대리님은 대기업 임원쯤 되는 분이랑 결혼해도 충분할 텐데.”
정기훈 팀장이 고개를 젓으며 말했다. “그런 선입견은 좀 버려요. 요즘 탄탄한 중소기업 이사는 연봉도 꽤 높고, 오히려 열정과 책임감이 강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그런 분들은 실무 경험도 많아서 배울 점이 많아요. 아마 연봉도 강 과장보다 많을 걸요.”
나정원이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맞아요. 결국 사람 보는 게 제일 중요하죠. 김 대리님은 그런 부분에서 정말 잘 선택하신 것 같아요.”
이준혁 과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결혼 준비는 잘 되고 있대요?”
조민서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홍보팀 분위기가 완전 축제 같았어요. 다들 신나 있었어요.”
지역개발사업팀 사무실은 금요일 오후 특유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김주연의 결혼 이야기를 중심으로 화기애애한 대화가 이어졌다. 팀원들은 각자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을 터트렸다.
“결혼이라니 부럽네요.” 나정원이 살짝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도 언젠가는 저런 날이 올까요?”
그러자 오혜진이 웃으며 말했다. “결혼이요? 나 주임님은 아직 여유 있지 않으세요? 저는 나중에 회사에서 찾으라는 말만 안 들으면 좋겠어요.”
강도윤이 장난스럽게 끼어들었다. “회사에서 찾는 것도 괜찮은 방법 아닙니까? 매일 볼 수 있고, 서로의 입장도 잘 이해할 테니.”
그러나 나정원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회사에서는 일만 해도 충분합니다.”
이하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김 대리님처럼 좋은 사람 만나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죠.”
그렇게 지역개발사업팀은 업무의 긴장감을 잠시 내려놓고, 훈훈한 결혼 이야기에 즐거운 금요일 오후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