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고유한 성질, 비열을 결정하는 세 가지 변수

전직 검사가 알려주는 화학의 스모킹건

by 박진현 변호사

물질마다 열을 수용하는 능력이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비열의 크기를 결정하는 데에는 크게 세 가지 화학적 요인이 작용한다.


1. 분자 간 인력과 결합 에너지


액체 상태에서 분자 사이에 강한 인력이 존재할 경우, 외부에서 가해진 열에너지는 온도를 높이는 데 즉각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에너지가 분자 간의 결합을 느슨하게 하거나 끊는 데 우선적으로 소모되기 때문이다.


인력이 강한 물질일수록 입자들을 진동시키거나 이동시키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즉, 에너지가 '온도 상승'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기 전에 '인력 극복'이라는 과정에 분산되므로, 결과적으로 온도를 1℃ 올리는 데 더 많은 열량이 필요하게 되어 비열이 커진다.


2. 분자의 자유도 (내부 에너지의 분산)


비열은 분자가 에너지를 어떤 방식으로 나누어 저장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이를 물리적으로는 '자유도(Degrees of Freedom)'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분자가 외부에서 열을 받았을 때 그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용도'가 얼마나 다양한가의 문제다.


헬륨(He)이나 네온(Ne)처럼 하나의 원자로 구성된 기체는 흡수한 에너지를 주로 병진(직선) 운동에 사용한다. 온도는 입자의 평균 병진 운동 에너지에 비례하므로, 이들은 에너지를 받는 즉시 온도가 빠르게 상승한다.


반면 구조가 복잡한 분자는 에너지를 병진 운동뿐만 아니라 분자 내부의 회전이나 진동 에너지로 나누어 저장한다. 에너지를 분산할 수 있는 경로(자유도)가 다양할수록 온도를 결정하는 병진 운동으로 할당되는 에너지 비율이 낮아지며 비열은 커지게 된다.


3. 물질의 상태와 '미시적 상태의 수'


동일한 성분의 물질이라도 상태에 따라 비열이 달라지며, 일반적으로 액체 > 고체 > 기체 순의 크기를 보인다. 이는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미시적 상태의 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시적 상태란, 분자들이 가질 수 있는 위치와 운동 상태의 모든 가능한 조합을 의미한다.


고체 상태에서는 분자들이 격자 구조 안에 강하게 구속되어 있다. 분자가 에너지를 받아도 정해진 위치에서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 외에는 다른 상태를 가질 수 없다. 즉, 에너지를 배치할 수 있는 '경우의 수(상태의 수)'가 매우 적고 단순하다. 에너지를 넣는 대로 곧장 진동이 격렬해지며 온도가 빠르게 오른다.


반면 액체는 고체의 규칙적인 결합이 깨진 상태다. 분자들은 서로 자리를 바꿀 수 있고, 회전하거나 미끄러지듯 움직일 수 있다. 에너지가 들어왔을 때 분자들이 취할 수 있는 위치와 운동의 조합이 고체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아진다. 대표적인 예로 액체 상태인 물의 비열은 고체인 얼음의 약 2배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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