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예찬
교실 책상 위, 비닐 태워 만든 공 하나에 까르르 웃음꽃 피던 그 시절 소년은 어느덧 백구(白球)의 궤적을 쫓는 인생의 승부사가 되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라켓은 작아 보여도 그 속엔 깎고 치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있고 네트 너머 오가는 짧은 호흡 속엔 국경도 이념도 녹여낸 사랑이 흐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푸른 탁구대 앞이면 세상의 시름은 금세 땀방울로 씻겨가고 나이도 체격도 계급장도 떼어버린 채 오직 정직한 반사신경으로 마주하는 시간.
강하게 때론 부드럽게, 회전하는 공은 말해줍니다. 넘어질 듯 무너져도 다시 일어서는 멘털이 진정한 승자의 무기라는 것을.
오늘도 핑퐁, 심장 소리에 맞춰 작은 공이 그리는 무지개를 따라갑니다. 이 좁은 탁구대 위가 바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넓디넓은 우주입니다.
탁구의 역사는 유럽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졌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며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스타가 탄생했다. 하지만 탁구의 진짜 위력은 외교와 사랑에서 나타났다.
1971년 '핑퐁외교'가 냉전의 벽을 허물었다면, 1989년에는 안재형 선수와 중국 자오즈민 선수가 이념을 넘어 결혼에 골인했다. 서슬 퍼런 안기부의 감시와 국교 단절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작은 탁구공이 무너뜨린 셈이다.
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코리아'는 기적처럼 중국을 꺾었다. 한반도기가 올라가고 '아리랑'과 '고향의 봄'이 울려 퍼질 때 온 국민은 눈물을 흘렸다. 스포츠는 전쟁보다 강했고, 남북이 하나 되면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는 교훈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