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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열 Jan 03. 2024

10화 아버지의 진단

민간요법

몸이 아파 큰 병원에 못 가면 동네 돌팔이 의사한테 가지만 여기도 공짜는 아니었다. 감기나 몸살 같은 간단하다면 닭 한 마리 묶어가 병원비로 대납하지만 통원치료라도 한다면 돼지 한 마리 팔아야 한다. 그래서 웬만한 병은 은 울아버지가 직접 진단을 내리신다. 가끔 오진도 하시어 사망사고도 일어 난다. 내가 태어나기 전 누나 한분은 홍역을 감기로 오진하여 끙끙 앓다가 사망하였다. 유아 사망률이 많아 100일 넘기면 한고비 넘겼다고 잔치를 해주고 1년이 지나면 성대하게 돌잔치를 해주면서 정식 호적에도 올린다. 그만큼 돌을 넘기기 힘들었다.

오진도 내리시지만 정확한 진단도 많이 내리셨다. 열이 나고, 노랑 코가 들쑥날쑥하면 아버지는 이마를 만져 보시곤 “담백찔 갤핍인 갑다”하고는 논에 가셔서 삽질 몇 번에 미꾸라지 한 바깨스 잡아 와 산초와 푹 삶아서 몇 그릇 먹인다. 그러면 열도 내리고 기침도 없고 침도 안 흘리고 코가 깨끗해진다.

냉장고가 탄생한 것은 최근일이다. 세상에 전기밥통과 세탁기가 나오리라고는 생각을 못하였다. 온돌방 아랫목에 이불로 덮어놓은 뜨끈 뜨근한 밥그릇이 보온밥통이고, 차디찬 깊은 우물 속에 보관된 통이 냉장고였다.  상온에 보관된 음식은 배고픈 시절이라 유통기간이 없었다. 어머니가 한번 쩝쩝 시식하고 괜찮다 하시면 먹어야 한다. 이것저것 먹어도 위장도 튼튼하여 배탈 나는 경우가 드물었다. 풀뿌리는 물론 나무껍질도 소화시키는 대단한 내장을 갖고 있었다. 식중독에도 면역이 되어있다. 거의 짐승 수준이었다. 그래도 한여름에 부패한 음식에 전염병이 돌면 설사는 피할 수 없었다. 수업 중 참을 수 없어 삐질 삐질 빠져나와 똥쟁이라는 별병이 한둘이 아니었다. 

배탈에는 울아버지 뜸쑥이 최고라고 하신다. 처마 밑에는 늦가을 약성이 많을 때 뜯어다 말린 뜸쑥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엄니는 한 다발을 약 단지에 집어넣고 숯불에 푹 삶는다. 쑥향이 집안을 진동한다. 한 사발을 코를 막고 마시라 한다. 소태나무처럼 쓰디쓴 쑥물은 사약과 같다. 눈을 찔끔거리며 안 먹는다고 도망 다니면 엄니는 마약처럼 숨겨놨던 사카리 두서너 개 넣고 저어 먹으면 달짝지근한 쑥 향기가 난다. 거짓말처럼 설사가 뚝 멈춘다. 

    비실비실하여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거나, 코피가 터졌다 하면 울 아버지 맥을 짚어 보시고 매가리가 없다면서  “앵양 실쪼 잉갑따” 하시면서 개구리 몽땅 잡아다 뒷다리 잘라서 찹쌀, 창출, 산도라지 넣어 푹 고아 먹인다. 진단과 병명 그리고 약제조는 같은 증상이라도 그때그때 아버지 기분이다. 어쩔 땐 " 바이 따 민 씨 갤핍"이라고 하신다. 처음 듣는 의학용어라 아버지가 대단하신 분이라고 생각하였다.  장에 가시어 능금 한 줄을 사 오신다. 능금은 비타민C 덩어리다. 산에서 나오는 재래종 사과이다. 산삼과 같다.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멸종위기의 과일이다. 능금 열개를 먹고 나면 눈에는 총기가 생기고 아침에 벌떡 벌떡 일어난다. 

개복숭아, 개살구, 꾸지뽕, 칡, 산딸기, 하수오, 창출, 어성초, 도라지, 더덕이 수많은 약초들이 들판에 널려있었다. 계절에 따라 약성이 달라서 아버지의 진단이 다르게 나왔나 보다.

우리 동네 서낭당 돌아가는 길모퉁이는 상여 저장하는 창고가 있었는데 거기서 도깨비와 귀신을 본 마을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얼마 전까지도 있었다. 울 아버지는 “바이따민에이갤핍” 걸리면 헛것이 보이면서 귀신도 보인다고 하셨다. 이럴 때는 당근이 보약이라면서 일주일정도 삶아 먹고 갈아먹고 밥에 비며 먹으면 감쪽같이 헛것이 보이지 않는다. 정말로 당근은 눈에는 특효약이었다.

안전한 어린이 놀이터가 없는 시골들판과 비포장길은 지뢰밭이고 상처를 줄 수 있는 흉기였다. 오솔길에는 독사가 똬리 틀고 있고 풀밭에는 유리와 돌부리들이 숨어있다.

이런 곳에서 뛰고 넘어져 깨지고 싸우다 코피가 철철 날 때는 쑥을 이 깨어 닦아내고 콧구멍을 막으면 바로 지혈이 된다. 쑥은 곰이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명약이고 만병통치약이다. 외과 내과 모두 효과가 있었다. 부잣집 애들은 비타민제 원기소 배 아플 때 가스활명수, 타박상에 아까징기와 안티프라인 멍들었을 때 물파스가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사치였다. 배 아플 때 아까징기나 안티프라민을 배에 바르는 오용도 있었지만 신통하게도 기분이 상쾌해지고 배 아픈 것도 시원하게 낫는다. 의학계에서 발표한 “플라세보 효과(심리적 요인에 의해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를 우리는 어렸을 때 경험한 것 같다. 

화면캡처: 쑥,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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