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L218. 퇴직서를 내고

나는 이제 뭐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by Mira


1. 나는 이제 ‘뭐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시작은 퇴직 프로젝트였는데, 하다 보니 인생 전반전을 되돌아보고

후반전에 임하는 컨셉이 바뀌었다.

오십이 넘어서도 노후에 대해서는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그 시기를 퇴직과 연관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치원 이후 늘 어딘가에 소속된 삶이었다.

그것이 안정감을 주고 보장해 주는 안락함이 있었다.

동시에 견딜 수없이 답답하고

벗어나고만 싶었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

작가가 되는 것도 책을 내는 것에도 큰 흥미가 없다.

만약 내 글을 세상이 필요로 한다면

내가 애달 복달 하지 않아도 기회가 찾아오겠지.


퇴직 전에는

퇴직하면서 회사 후배들에게 내 책을 돌리고, 폼도 좀 내고,

나를 좀 특별한 선배로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퇴직을 하게 되니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떠나고 싶다.

Say Goodby without words.



2. 돈의 위대함


내가 그냥 나로 존재해도 되는 조건을 머니트리로 샀다.

매달 25일이면 기존 월급만큼 배당금과 월세가 나를 먹여 살린다.

그 머니트리도 가동하고

회사에서 월급도 받으면 더블 인컴이다.

희망퇴직을 받긴 하지만, 누구도 나가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아직은)


하지만 나는 더블 인컴대신

그냥 나로 살 수 있는 시간을 사버렸다.

돈만큼이나 그것이 중요했다.

아니, 그것을 위해 돈이 필요했다.

아무에게도 지시나 컨펌을 받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3. 마이 럭셔리 라이프


명품 가방도 좋고 시계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타인의 인정도 눈치도 보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지금

내 인생은 충분히 럭셔리하다.



4.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가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

내 컴퓨터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음악을 듣는 시간이 짜릿하다.

거기에 맛있는 커피와 갓 구운 토스트가 있으면, 끝.


이제 생산성은 머니트리가 담당하고

나는 존재성의 가치를 얻는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하고 싶은 걸 한다.

원하는 만큼 산책을 하고

자고 싶을 때 잔다.

알랑 없이 깨는 아침이 얼마나 달콤 한지.



5. 자유의 값


나로 살 수 있는 한 끗이 감각이 곧 자유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힘은 역시 돈에서 나온다.

그래서 돈은 위대하며,

럭셔리 라이프는

삶에 대한 태도이자 방식이다.


그리고 지난 4년 동안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나를 응시했던 시간들도

이 결심을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나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6. 전하고 싶은 말


산수 저능아에

우울증 진단까지 받은 여자가 해낸 일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나는 그저

죽어라 버티다 보니

운이 좋아졌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LIFE] L217. 새로운 시대를 새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