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ciples of Distance and Energy
돌아보면
성공적으로 유지한 관계보다
단절된 관계가 더 많다.
거리 조절을 못해서였을 수도 있고,
서로의 민낯에 질려서였을 수도 있다.
관계를 끊는 쪽은
대개 나였다.
크게 싸운 적은 없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맞출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관계는
잘해보려고 애쓸수록
나를 소진시켰고,
적당히 하자니
그건 또 나답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리’하는 사람이 되어 왔다.
나는
친구가 많은 편도 아니었고,
사람과 스스럼없이 잘 사귀는 재주도 없다.
소셜 네트워크라고 부를 만한 것도 거의 없다.
어쩌면 나는
이 고립된 상태를
의식적으로 유지해 왔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에게 호감을 표현하면
반갑기도 하지만
곧바로 이런 생각이 따라온다.
뭘 보고 이러나?
상대의 진심을 의심해서라기보다는
그 호감이
기대나 요구로 바뀌는 순간을
이미 여러 번 겪어봤기 때문이다.
관계는
친밀해질수록
역할을 요구한다.
그 요구에 응답하지 않으면
실망이 되고,
실망은 관계의 문제로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관계가 깊어질 수 있는 곁을
의도적으로 두지 않거나,
아예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왔다.
이게 나에게 맞는 삶의 구조인지,
상처를 피하기 위한 회피인지는
아직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사람이 많을수록 안정되는 타입은 아니라는 것,
관계가 적을수록
내 삶의 리듬은 더 선명해진다는 사실이다.
반복된 경험을 통해
매뉴얼처럼 익힌 감각이 하나 있다.
누군가 내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면
관계는 늘 잠시 어색해진다.
너무 많이 노출한 쪽이
자기 상태를 불편해하는 듯한
공기가 생기고,
그 공기가 관계 전체를 바꾼다.
그럴 때 나는
더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거기서 멈춘다.
친밀함이 깊어질 기미가 보이면
한 발 물러난다.
거절이라기보다
상황 종료에 가깝다.
어느 모임을 가도
내가 불편한 사람이 있고,
나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다.
말은 많지 않지만
호기심과 질문은 많다.
그 질문들이
때로는 날카로운 공기를 만든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동시에
어느 자리에서든
나를 도와주는 사람도 꼭 한 명은 있다.
어딘가 모자라 보여서일 수도 있고,
경계가 분명해 보여서일 수도 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나는 늘
사람들 사이에서
완전히 섞이지도,
완전히 밀려나지도 않는 위치에 있었다.
투자나 쇼핑처럼
내가 직접 겪어본 일에 대해서는
하루 종일도 이야기할 수 있다.
실수했고,
회복했고,
숫자로 확인했고,
시간을 통과해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충분히 살아보지 못한 영역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관계가 그렇다.
그래서
관계 문제로 고민하는 후배들 앞에서
나는 종종 벙어리가 된다.
괜찮을 거라는 말은
너무 무책임하게 느껴지고,
버티라는 말은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나는
관계를 잘 해낸 사람도 아니고,
정답을 찾아본 적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가 나의 한계인지,
어디부터가 무리인지는
비교적 정확하다.
그래서 나는
조언 대신
내가 지키는 두 가치 원칙에 대해서만 말한다.
첫째,
나에게 무례한 사람에게는
가차 없이 돌아선다.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거나,
무리한 요구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
존중과 배려 없이
관계를 소비하는 사람.
그런 관계에
더 이상 쓸 에너지는 없다.
관계가 깊어진다는 말은
함부로 말해도 되고
매너를 내려놓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둘째,
고마움을 느낄 때
바로 표현한다.
내 마음을 알겠지라는 가정은
관계에서 가장 무책임한 태도다.
그래서 나는
“이래서 고마웠다”라고 말하고,
커피 한 잔이라도 건넨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고,
그 일에서
미련 없이 빠져나올 수 있다.
그리고
자기 필요할 때는
쪼르르 달려와
내 시간을 가져가고,
문제가 해결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는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사절이다.
그건 친밀함이 아니라
사람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나는 친구가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이 두 가지 원칙 덕분에
타인에게 상처받고
허우적거리는 일은
많지 않았다.
상처를 받을 만큼
감정적으로 깊이 연결된 관계는
연애 상대 몇 명이면
충분하지 않나 싶다.
나는
많은 관계에서 안전해지는 사람이라기보다,
적은 관계에서
덜 다치는 쪽을 선택해 왔다.
이게 관계를 잘 사는 방식인지는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나에게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