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L279. On Relationships

Principles of Distance and Energy

by Mira



돌아보면

성공적으로 유지한 관계보다

단절된 관계가 더 많다.


거리 조절을 못해서였을 수도 있고,

서로의 민낯에 질려서였을 수도 있다.


관계를 끊는 쪽은

대개 나였다.


크게 싸운 적은 없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맞출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관계는

잘해보려고 애쓸수록

나를 소진시켰고,

적당히 하자니

그건 또 나답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리’하는 사람이 되어 왔다.



나는

친구가 많은 편도 아니었고,

사람과 스스럼없이 잘 사귀는 재주도 없다.


소셜 네트워크라고 부를 만한 것도 거의 없다.

어쩌면 나는

이 고립된 상태를

의식적으로 유지해 왔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에게 호감을 표현하면

반갑기도 하지만

곧바로 이런 생각이 따라온다.


뭘 보고 이러나?


상대의 진심을 의심해서라기보다는

그 호감이

기대나 요구로 바뀌는 순간을

이미 여러 번 겪어봤기 때문이다.


관계는

친밀해질수록

역할을 요구한다.

그 요구에 응답하지 않으면

실망이 되고,

실망은 관계의 문제로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관계가 깊어질 수 있는 곁을

의도적으로 두지 않거나,

아예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왔다.


이게 나에게 맞는 삶의 구조인지,

상처를 피하기 위한 회피인지는

아직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사람이 많을수록 안정되는 타입은 아니라는 것,

관계가 적을수록

내 삶의 리듬은 더 선명해진다는 사실이다.



반복된 경험을 통해

매뉴얼처럼 익힌 감각이 하나 있다.


누군가 내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면

관계는 늘 잠시 어색해진다.


너무 많이 노출한 쪽이

자기 상태를 불편해하는 듯한

공기가 생기고,

그 공기가 관계 전체를 바꾼다.


그럴 때 나는

더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거기서 멈춘다.


친밀함이 깊어질 기미가 보이면

한 발 물러난다.

거절이라기보다

상황 종료에 가깝다.


어느 모임을 가도

내가 불편한 사람이 있고,

나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다.


말은 많지 않지만

호기심과 질문은 많다.

그 질문들이

때로는 날카로운 공기를 만든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동시에

어느 자리에서든

나를 도와주는 사람도 꼭 한 명은 있다.


어딘가 모자라 보여서일 수도 있고,

경계가 분명해 보여서일 수도 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나는 늘

사람들 사이에서

완전히 섞이지도,

완전히 밀려나지도 않는 위치에 있었다.




투자나 쇼핑처럼

내가 직접 겪어본 일에 대해서는

하루 종일도 이야기할 수 있다.


실수했고,

회복했고,

숫자로 확인했고,

시간을 통과해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충분히 살아보지 못한 영역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관계가 그렇다.


그래서

관계 문제로 고민하는 후배들 앞에서

나는 종종 벙어리가 된다.


괜찮을 거라는 말은

너무 무책임하게 느껴지고,

버티라는 말은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나는

관계를 잘 해낸 사람도 아니고,

정답을 찾아본 적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가 나의 한계인지,

어디부터가 무리인지는

비교적 정확하다.


그래서 나는

조언 대신

내가 지키는 두 가치 원칙에 대해서만 말한다.


첫째,

나에게 무례한 사람에게는

가차 없이 돌아선다.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거나,

무리한 요구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

존중과 배려 없이

관계를 소비하는 사람.


그런 관계에

더 이상 쓸 에너지는 없다.


관계가 깊어진다는 말은

함부로 말해도 되고

매너를 내려놓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둘째,

고마움을 느낄 때

바로 표현한다.


내 마음을 알겠지라는 가정은

관계에서 가장 무책임한 태도다.


그래서 나는

“이래서 고마웠다”라고 말하고,

커피 한 잔이라도 건넨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고,

그 일에서

미련 없이 빠져나올 수 있다.


그리고

자기 필요할 때는

쪼르르 달려와

내 시간을 가져가고,

문제가 해결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는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사절이다.


그건 친밀함이 아니라

사람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나는 친구가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이 두 가지 원칙 덕분에

타인에게 상처받고

허우적거리는 일은

많지 않았다.


상처를 받을 만큼

감정적으로 깊이 연결된 관계는

연애 상대 몇 명이면

충분하지 않나 싶다.


나는

많은 관계에서 안전해지는 사람이라기보다,

적은 관계에서

덜 다치는 쪽을 선택해 왔다.


이게 관계를 잘 사는 방식인지는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나에게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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