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ilence of the fight
내가 정신적으로 허물어지는 순간에도
차마 놓지 못한 것은 **‘생존’**이었을까?
나는 그것을
‘dignity’, 존엄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생을 지탱해 주는 건 결국 그것이었다.
이런 생각도 컸다.
내 인생이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지면,
내 부모의 인생이 너무 가엽지 않나.
극도의 번아웃 상태에서
다시 나를 추스리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히 돌아보면,
평범한 회사원의 속사정이 참 치열하기도 했다.
서른 후반에는 목디스크가 생겨서
거의 매일 한의원에 다녔다.
어느 날은 침을 맞고 집에 돌아와서도 통증이 멈추지 않아 밤새 영업하는 마사지샵에서 관리를 받고
아침에 회사로 출근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아프다고 해서 병가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해 여름,
출근하다가 지하철 계단에서 기절한 적도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 끌어주었다. 덕분에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종아리 앞이 계단에 주르륵 긁혀서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났다.
놀란 사람들이 119를 부르겠다고 했는데,
내가 말렸다. 출근해야 한다고.
부축을 받으며
비틀비틀 출근하는 나를 도운 사람들은 어쩌면
내가 회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나의 자존심이었다.
아프다는 걸 이유로 결근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게 싫었다.
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도 싫었다.
종아리에 남아 있는 선명한 상처는
내게 하나의 증거가 되었다.
나는 게으르거나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야.
나에게는 그런 게 필요했다.
그런 거라도 있어야,
내가 무용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극도의 번아웃은
어지러움이라는 몸의 증상으로도 나타났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샤워하고 머리 헹구고 쉬고,
옷 한 벌 입고 또 쉬고.
그렇게 준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10분 동안도
몇 걸음 걷다가 벤치에 앉고,
또 몇 걸음 걷다가 쉬고를 반복하면서 출근했다.
먹고산다는 건 그만큼 엄중한 일이었다.
회사는
나에게 힘들면 그만둘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 힘듦을 넘어야 할 이유는,
역시 **‘dignity’**였다.
회사 안이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라는 걸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