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도 되기 전, 나는 눈을 떴다. 7월부터였던가.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곶감 빼먹듯 하나씩 음미하며 책을 읽는 습관이 생겼다. 그때마다 다른 책들을 곁들여 읽곤 했는데, 우연인지 운명인지, ‘조르바’를 이야기하는 작가들을 연이어 만나게 되었다.
첫 번째는 고명환 작가였다.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 《고전이 답했다》에서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이야기하는 대목에 깊이 끌렸다. 주인공의 입을 빌려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인용한다.
성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내 삶을 완성하기 위해 남을 위해 살라는 뜻이었다.
나는 곧바로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다가, 아예 구입 했다. 8,800원, ‘열린책들’ 출판사. 번역은 내가 존경하는 이윤기 작가였다. 군더더기 없이 심플한 책. 언젠가 내 책을 낼 때도 이렇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처음에는 443쪽짜리 장편이기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저 눈에 띄는 페이지만 슬쩍 읽었을 뿐.
그러다 오늘 새벽, 드디어 결심했다. 9월 둘째 주 금요일에 예정된 독서 모임에 그냥 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잠결에 뇌가 먼저 반응했다. 새벽 2시 45분에 일어나 책장을 펼쳤고, 오후 3시 25분에야 책을 덮었다. 중간중간 눈에 안 들어오는 부분은 넘기기도 했지만, 밑줄을 그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달린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이후 처음으로 하루 종일 책만 읽은 날이었다. 작은 성공의 기쁨이었다.
책 속의 표현 하나가 오래 머물렀다.
“별이 빛났고 바다는 한숨을 쉬며 조개를 핥았고 반딧불은 아랫배에다 에로틱한 꼬마 등불을 켰다. 밤의 머리카락은 이슬로 축축했다.”(p.83)
밤과 바다와 하나 된 주인공. 바다가 한숨을 쉰다는데, 문득 내 안에서도 한숨이 흘러나왔다.‘왜 나는 이런 표현을 할 수 없을까.’하고.
두 번째 만남은 유영만 교수였다. 네이버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2013년부터 무려 15회에 걸쳐 ‘그리스인 조르바 필사하기’를 기록해 두고 있었다. 30년에 걸쳐 102권의 책을 낸 그를 보며, ‘이런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세 번째는 법정 스님이었다. 《스스로 행복하라》를 펼쳤더니, 스님의 글 속에서도 조르바가 들어 앉아 있었다. 비 오는 날 오두막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며 밥까지 굶어가며 빠져들었다는 대목이었다. 늘 꼿꼿할 것만 같던 스님이 소설을, 그것도 ‘조르바’를 읽고 있었다니. 밥 한 끼 잊을 만큼 빠져드는 독서의 기쁨을, 나도 오늘 조금은 따라한 셈이다.
네 번째는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님의 강의였다. 자유란 두려움과 충동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떠올랐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나는 자유로운가? 문득 돌아본다. 아직도 나는 먹는 것, 돈 쓰는 것 앞에서 충동을 절제하지 못하고 있다. 갈 길이 멀다.
다섯 번째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라는 책에서.
"나는 또 한 번 행복이란 포도주 한 잔, 군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 소리처럼 단순하고 소박한 것임을 깨달았다. 필요한 건 그것뿐이었다."는 문장을 인용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지금 여기에 있다고 '카르페 디엠(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을 이야기하고 있다.
행복이 자꾸 바뀐다. 어제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과 책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느꼈다.
여섯 번째는 장석주 시인이었다. 그는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의 에필로그에서, 크레타 섬 언덕 위 카잔차키스의 묘 앞에 무릎 꿇었던 기억을 썼다. 그의 글에서 “글쓰기와 인생에 대해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웠다”는 고백은 부럽기까지 했다. 언젠가 나도 그 크레타 섬에 가보고 싶다. 지도를 들여다보다, 혹 딸과 함께 갈 수 있을까 하는 상상까지 했다.
오늘 하루, 나는 책과의 긴 여정을 마쳤다. 조르바와는 잠시 이별하자. 읽어야 할 책은 여전히 많다. 하지만 오늘처럼 책에 몰입하는 설렘을 날마다 이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