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도망쳤던 아이는 어떻게 예순둘의 섬이 되었나

by 양지욱

제주에서 나고 자란 내게 바다는 낭만이 아니라 거대한 벽이었습니다. 사방이 물로 가로막힌 그곳이 답답해 견딜 수 없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던 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섬을 떠났습니다. 육지로 향하는 배 위에서, 다시는 이 좁은 섬으로 돌아오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나의 첫 번째 '탈출'을 감행했습니다.

그렇게 뭍으로 나와 교단에 섰습니다.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라고, 더 큰 바다로 나가라고 가르치며 37년 넘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누군가의 등대가 되어준 시간들


교사로 산다는 건 어쩌면 스스로 등대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거친 파도에 흔들리는 아이들의 마음을 다잡아주고, 어두운 밤길을 비춰주는 일. 정작 나라는 섬이 깎여나가고 파도에 젖는 줄도 모르고, 나는 늘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어야 했습니다.

때로는 바람이 세게 불었고,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파도가 내 밑바닥을 사정없이 갉아먹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섬이라는 사실을 잊으려 애썼습니다. 어디론가 연결되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저 멀리서 반짝이는 빛 하나가 손을 내밀곤 했습니다. 멀리 있는 또 다른 동료가, 혹은 제자가 보내는 "선생님, 괜찮아요."라는 신호. 그 작은 깜빡임 덕분에 나는 묵묵히 내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예순둘, 다시 섬이 되기로 했습니다


이제 나는 작년에 예순이 되었습니다. 정년퇴직과 함께 다시 그 섬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젊은 날 그토록 지긋지긋해하며 버렸던 나의 고향, 나의 섬으로요.

아이들을 세상 밖으로 떠나보내던 내가, 이제는 나 자신을 나의 시작점으로 데려가려 합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섬이 누가 위로해 주지 않아도 그저 존재하는 이유를. 바람을 맞고, 햇빛을 견디고, 밤이 오면 조용히 어둠을 받아들이는 그 무심함이 얼마나 단단한 평화였는지를 말입니다.

지난 세월, 나를 무너뜨리려 했던 부서지는 파도도 나였고, 폭풍이 지나간 뒤의 고요한 해변도 결국 나였습니다. 대단히 잘한 것은 없어도, 그렇다고 완전히 무너진 것도 아닌 38년이 되어가는 교직 생활. 그저 '오늘'이라는 파도 하나를 무사히 넘기며 살아온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단단해졌습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내 자리를 지키는 일

내일 아침의 빛이 다시 섬을 비추듯, 나는 또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젊은 날의 '탈출'이 세상을 배우는 여정이었다면, 예순둘의 '귀향'은 비로소 나 자신과 화해하는 안식입니다.

어제처럼 오늘을 살고, 다시 내일을 맞이하며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진 섬이 되어갑니다.

이제는 압니다. 어디에 있느냐보다, 내 마음의 자리를 어떻게 지키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교실의 소란스러움 대신 파도 소리를 배경 삼아, 이제 나는 나의 섬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만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갈 것입니다.

마지막 한마디


이제는 당신도 당신만의 섬에서, 오로지 당신만을 위한 햇살을 준비하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작가의 이전글<어쩔 수 없다>는 말 뒤에 숨은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