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를 보고
어떤 말은 너무 익숙해서 의심하지 않는다. 그중 하나가 바로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이다.
우리는 이 말을 참 쉽게 사용한다. 상황이 복잡할 때,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혹은 책임을 조금 덜고 싶을 때.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말한다. “어쩔 수 없었어.”라고.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바로 그 말에서 시작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말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숨기고 있는지 천천히 드러낸다.
이 영화를 연출한 사람은 박찬욱 감독이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인간의 욕망과 도덕 사이를 파고든다. 선과 악을 명확히 나누기보다는, 그 경계가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1. 우리가 스스로를 설득하는 방식
영화 속 인물들은 거대한 악인이 아니다. 오히려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특별한 범죄를 계획하지도 않고, 거대한 음모 속에 있지도 않다. 다만 어떤 순간에 선택을 하게 된다. 아주 작아 보이는 선택이다. 누구라도 그 상황에 있었다면 비슷하게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선택이 이어질 때다. 작은 선택 하나가 또 다른 선택을 부르고, 그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람들은 같은 말을 반복한다.
“어쩔 수 없었어.”
영화는 이 말을 반복해서 들려준다. 그리고 관객은 점점 불편해진다. 정말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그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2. 박찬욱 영화의 침묵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종종 강렬한 이미지나 충격적인 장면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더 인상적인 것은 오히려 침묵이다.
카메라는 인물의 얼굴을 오래 바라본다. 말이 없는 순간들이 이어지고, 그 사이에서 감정이 서서히 드러난다.
설명은 많지 않다. 대신 관객이 스스로 채워 넣어야 하는 공간만 남는다. 그 공간 속에서 우리는 인물의 마음을 추측하고, 동시에 자신의 기준을 돌아보게 된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지도 단정하지 않는다.
다만 질문 하나만 남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의 무게
영화를 보고 나오면 제목이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처음 들었을 때와는 조금 다르게 들린다.
“어쩔 수 없다.”
이 말은 때로는 체념이고, 때로는 변명이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일지도 모른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그 말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설득하고, 어떻게 선택을 정당화하는지.
그래서 이 영화는 어떤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사람이 책임을 피해 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3. 영화가 끝난 뒤 남는 것
어떤 영화는 엔딩과 함께 끝난다. 하지만 어떤 영화는 끝난 뒤에 시작된다. <어쩔 수가 없다>는 분명 후자에 가까운 영화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생각이 남는다. 그리고 문득 일상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자주 그 말을 사용하는지 떠올리게 된다.
“어쩔 수 없었어.”
정말 그랬을까.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걸까.
영화는 그 질문을 조용히 남겨둔 채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