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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보리 May 03. 2024

숲길에서

25. 자기부정

  자기부정(自己否定)은 왜 필요한가? 기존(旣存)의 생각이나 정체성을 부정하고 더 나은 생각이나 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다. 자기부정은 힘들다. 마치 다른 사람을 관찰하듯이 현재의 자기 모습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객관화(自己客觀化)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비판도 감내(堪耐) 해야 한다. 새로운 관점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기부정은 등산과 비슷하다. 힘들지만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시야가 넓어지듯이, 자기부정을 하면 할수록 인식지평(認識地平)은 확장된다.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는 한 대개 사람들은 단순한 것을 좋아하고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 인지적(認知的) 구두쇠(Cognitive miser)다. 자기 객관화를 통한 자기부정은 귀찮은 일이다. 반성적(反省的) 사고(思考) 없이 그냥 막살아도 괜찮다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산자락에서 노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산 위에서 바라보는 열린 풍광을 굳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성장하지 않는다. 자기부정은 성숙(成熟)의 지표(指標)다.

  대개 자신의 생각이나 정체성을 ‘나’ 또는 ‘나의 것’라고 믿는다. 나의 생각은 ‘나’가 아니다. ‘나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때는 자신의 생각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고집한다. 어떤 생각을 맹목(盲目)적으로 고집하는 사람은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인 것을 어리석게 고수(固守)하는 사람이다. 텅 빈 성(城)을 완강하게 지키려는 자폐아처럼. 

  고집하던 생각을 벗어나기 전에는 그 생각이 자기를 구속(拘束)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채기 어렵다. 오로지 그 생각만이 전부인 것처럼 느낀다. 그 생각을 벗어나야 비로소 자신이 좁은 생각의 틀에 어리석게 묶여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누구나 자기 생각을 존중받고 싶어 한다. 자연스러운 기대다. 때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자기가 사라진다고 느낀다. 생각은 자기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다.

  “네 생각은 네가 아니야.”

  “내 생각이 내가 아니라고?”

  “너는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어.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을 무조건 지키고,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뿐.” 

  “그럼 내 생각은 내가 아닌 어디서 온 거지?”

  “어쩌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

  “내 생각이 나가 아니라면,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지금 내 옆에 있잖아.”

  설령 인지적으로 어떤 생각이 자기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고 해도, 그 생각을 내려놓기 힘들다. 그 생각을 버리면 마치 자기를 잃어버린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그 생각의 노예로 사는 데 익숙해진 것이다. 

  셀리그만(Seligman)은 이런 상태를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이라고 표현하였다. 피할 수 없는 힘든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게 되면 그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와도 극복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자포자기(自暴自棄)하게 된다는 것이다.

  셀리그만은 개를 세 집단으로 나누어 실험을 하였다. 개들을 상자에 넣고 전기충격을 주었다. 제1 집단은 코로 조작기를 누르면 전기충격을 스스로 멈출 수 있었다. 제2 집단은 코로 조작기를 눌러도 전기충격을 피할 수 없게 묶어 놓았다. 제3 집단은 비교 집단이어서 전기충격을 주지 않았다. 24시간 이후 이들 세 집단을 다른 상자로 옮기고 전기충격을 주었다. 세 집단 모두 상자에서 뛰쳐나오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었다. 제1 집단과 제3 집단은 상자에서 벗어나 전기충격을 피했다. 그러나 제2 집단은 전기충격을 계속 주어도 피하려 하지 않았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전기충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억지로 끌어낸 뒤 다시 상자에 집어넣어도 전기충격을 피하지 않았다. 제2 집단은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무기력(無氣力)을 학습한 것이다.(계속해서 도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 도피 성공 경험을 반복하게 해 주면, 나중에는 도피할 수 있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생각에 익숙해지면 설령 그 생각이 유용하지 않을지라도 쉽게 버리지 않는다. 버릴 수 있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반복하면서 그 생각의 틀을 못 벗어나는 것이다. 기존의 생각을 버리면 자신의 정체성이 와해될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사는 것이다.  

  어떤 생각을 고집하는 것은 자유인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생각을 때로는 쥐고 때로는 놓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생각 바꾸기가 남에게는 쉬워 보이지만 자신에게는 죽을 것 같이 어려울 수 있다. 이 어려움을 어떤 수행자는 ‘절벽에서 한 걸음 내딛기’라고 표현하였다.

  강한 신념(信念)과 맹목적인 집착(執着)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신념에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도 설득(說得)할 수 있다. 때로 공익(公益)적 신념은 유익(有益) 하기도 하다. 반면에 맹목적인 집착은 자신과 타인의 원만(圓滿)한 삶을 파괴(破壞)한다. 고집에는 고집 이외의 합리적인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신념은 여러 생각 중에서 합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자율적으로 선택한 것이라는 자각이 수반된 생각이다. 신념은 필요하면 언제든지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은 ‘나’도 아니고 ‘나의 것’도 아니라는 분명한 자각이 있다. 만약 더 좋은 생각인 있다면 기존의 신념을 기꺼이 버릴 수 있기에 신념일 수 있다. 신념을 가진 자는 더 좋은 대안(代案)이 보일 경우 쉽게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 자기부정을 할 수 있다. 신념에서 자유롭다. 신념에서 자유로운 자만이 신념을 가질 수 있다.

  반면에 어떤 생각에 대한 집착은 주체를 옭아맨 덫과 같다. 집착은 생각의 주체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어떤 생각에 집착하는 사람은 자기부정이 어렵다. 대안을 보여주어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기 정체성이 무너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나에게 묻는다. 나는 내 생각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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