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는 내가 제일 잘 알아요. 내가 설마 우리 남편을 모를까, 우리 와이프를 모를까.
난 남편과 교제를 시작하기도 전, 아프간 파병 3일 전 바에서 만난 싱글맘과 혼인신고를 하고, 바로 파병을 나가 3개월간 서류상 혼인을 유지하다 사기와 위자료로 그때까지 모아둔 전 재산을 날린 이야기와 남편이 입양아였단 얘기를 들었다.
교제를 시작한 후에는 생모의 남자친구에게 만 2세 때까지 당한 학대를 아직 기억하고, 그래서 사람과 눈을 잘 안 마주치는 버릇이 있다는 걸 알았다.
결혼 3년 차 정도, 남편에게 있는 ADHD가 정확히 어떤 것들인지를 알았고,
결혼 5년 차, 늘 꾸벅꾸벅 조는, 이해되지 않는 남편의 수면부족이 파병 시 PTSD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만하면 남편을 다 안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전역 후 먼저 스스로 생을 마감한 동기들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그들의 이름을 새긴 기념품 같은 것들을 사서 지갑이나 가까운 곳에 가지고 다니는 걸 보며 '내가 먼저 가도 그렇게 열성으로 할 거야?'라는 좀 바보 같은 질문을 했고,
천사 같은 시부모님에게 왜 그렇게 쌀쌀맞고 잘해드리지 않는지 화가 났고,
경찰 직업상 간혹 거쳐야 하는 거짓말탐지기 테스트에 늘 며칠씩 긴장하는 남편을 보고 죄지은 것도 없는데 왜 그러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사랑해 를 하지 않으면 전화를 끊지 않는 남편이 귀찮은 날도 있었다.
나는 결혼 11년 차가 되도록,
남편이 먼저 간 동기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본인도 이해할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싶은 충동에 빠지는 걸 몰랐다.
자상하고 인자하신 시부모님이 남편이 어렸을 땐 그리 천사 같고 자상하지만은 않았던 걸 몰랐다.
거짓말탐지기에 늘 매뉴얼처럼 등장하는 질문 중 하나가 어릴 적 학대 트라우마를 자극한단 걸 몰랐다.
통화 끝의 마지막 사랑해를 필사적으로 들으려는 이유가 늘 무의식적으로 마지막을 대비하기 때문이란 걸 몰랐다.
사람은 사고를 하고, 환경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데, 어느 순간이 되면 우린 그냥 지금까지 아는 것이 전부라고 믿는다. 내가 만지는 코끼리의 부위가 전체 코끼리의 형상인 줄 아는 장님처럼.
11년을 알아왔어도 더 알아갈 부분이 앞으로도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지만, 그간 모르고 주었을 상처가 얼마나 더 있을지, 알게 되는 순간 내 마음은 얼마나 더 아플지 겁이 나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남편을 더 알고 싶다.